▲ 김민옥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2021년이 왔지만 코로나19는 여전히 우리 일상에 있고 언제 헤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20’은 원더키드·우주·미래를 떠올리며 거대한 변화를 알리는 숫자 같았다. 그리고 정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변화, 뉴노멀이 일상인 한 해를 보냈다. 비대면, 재택근무, 랜선, 손씻기, 마스크, 아프면 3~4일 쉬기…. “아프면 쉬라고?” 1년 내내 출근길 라디오에서 들었던 그 말. “아프면 삼사일 쉬기.” 종종 받는 상담 중 하나가 “아픈데 휴가가 있나요”라는 질문인데, 나는 라디오처럼 당당하게 “쉬세요” 하고 말하지 못한다. 취업규칙을 살피고 연차휴가를 사용하거나 등 구구절절 설명하다 결국,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개인 질병 치료를 위한 유급 상병휴가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열심히 친절히 설명했지만 누구도 만족하지 못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업무 외 질병 혹은 부상으로 회사를 다니기 어려운 노동자를 위한 유급병가 제도가 갖춰지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대기업에 다니고 노동조합이 있다면 병가제도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급병가는 극소수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아파서 쉰 비율은 9.9%로 유럽 국가들의 평균 50%에 비해 매우 낮다고 한다. 노동자의 병은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감염병 유행시 미국에는 유급병가가 없어서 다수 노동자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일터에 나온 결과 바이러스가 확산돼 700만명이 감염됐다. 반면 독일에서는 노동자들이 유급병가를 사용해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복지 이슈&포커스’ 388·391호 참조).

아프면 집에서 쉰다는 뉴노멀은 코로나19 같은 감염병과 무관하게 노동자의 일상에서는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 지난해 9월 직장갑질119 스태프는 아파도 휴가를 낼 수 없는 노동자를 대신해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정은경 청장은 기자회견에서 “아프면 집에서 며칠 쉰다, 생활방역수칙 1호였는데 이게 제도적으로 또는 직장문화 자체가 어렵다는 지적이 있으셨습니다. 업무 대체자가 없는 부분도 있을 거고 또 하루 일해서 하루 수당을 받는 분들도 있고 또 자영업자들께서는 그런 게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이 수칙이 잘 지켜질 수 있으려면 굉장히 많은 사회적인 제도가 좀 더 바뀌어야 된다고 얘기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중앙방역대책본부 중심으로 검토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정은경 청장의 말처럼 우리 사회는 쉬는 문화가 없다. 운 좋게 아플 때 쉴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고 해도 진짜 쉼으로 나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무급일 때는 공과금, 식비, 집세, 숨만 쉬어도 돈이 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안이라는 마음을 얻기 딱 좋다. 생존을 포기할 수 없어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을 선택한다. 다행히 유급병가라 해도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갑자기 일이 늘어난 동료에 대한 미안함과 업무에서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복직 뒤 적응할 수 있을까, 아팠다는 이유로 차별 또는 배제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무엇보다 몸이 부서져서라도 책임을 다할 때 주변에서 “장하다”고 하고, 아픈 이들은 “엄살”이라며 위축시키는 건강중심 사회에서, 아픈 직장인은 자기관리를 못한 문제아가 된다.

그런데 장시간 근로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근무에 업무를 맞추기 위해 채용 대신 노동강도를 높이는 곳에서, 아프지 않는 몸은 그 자체로 비정상이다. 기계도 사용제한에 따라 멈추지 않으면 고장 나고 망가진다. 인간의 몸도 그렇다. 아픈 몸으로 계속 출근해서는 안 된다.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더 큰 사회적 비용을 들이기 전에 말이다. 코로나19 경험 덕인지 정부도 새해에는 한국형 상병수당 도입을 연구하고 2022년부터 저소득층 대상으로 시범운영을 계획하고 있다. 아프면 쉬는 것, 일하는 모든 이들이 자신을 돌볼 수 있는 권리는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첫걸음이고 우리 모두의 권리다. 새해에는 당당하게 아프고 쉴 수 있는 사회로 한걸음 더 나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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