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LG트윈타워 본관 로비에 청소노동자들이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농성 중인 모습. 길벗한의사회 오춘상 한의사가 노동자들의 몸 상태를 살피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밥도 안 들여 준 날에는 용역경비업체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겁이 났어요.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그날은 라면 하나에 초코파이 먹고 버텼어요. 자식들이 그거 알면 속상해 할 것 같아며 말 안 했는데…. 이제는 다 알겠죠.”

지난 1일 기억을 떠올리며 말하는 이미정(61·가명)씨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9년차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다. 그날 LG그룹쪽은 식사 반입과 전기 사용을 차단했고, 현장 노동자와 용역경비업체 직원이 대치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이후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여론이 일자 식사 반입과 전기 사용이 다시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용역경비업체 직원의 건물봉쇄는 여전하다. LG트윈타워 노동자 30여명은 본관 로비에 고립된 채 힘겨운 싸움을 이어 가고 있다.

3일 서울 영등포구 LG트윈타워 본관 로비 안에서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농성이 19일째 이어지고 있다. 청소노동자와 근로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지수아이앤씨는 원청인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이 계약을 종료했다는 이유로 지난달 31일 청소노동자 80여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용역업체 변경 과정에서 쉽게 잘리고 교체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현실은 2021년에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원청이 용역업체를 변경할 때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도록 강제하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연말연시마다 반복될 수밖에 없다. 용역업체 변경이 곧 노동자 해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고용승계를 의무화하는 법·제도 마련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울산 동강병원 조리원 20여명 1일 해고
오비맥주 경인직매장 물류노동자 복직 기약 없어

이미정씨가 일하던 지수아이앤씨는 구광모 LG회장의 두 고모가 운영하는 회사로 10년째 LG트윈타워 일을 맡아 왔다. 그런데 노조가 설립된 지 1년여 만에 돌연 업체가 바뀌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는 원청이 ‘서비스 질 하락’을 이유로 들며 하청업체에 계약을 해지한 것은 핑계일 뿐, 노조활동을 탄압하기 위한 계약해지로 보고 있다.

연말 해고된 노동자는 이들뿐만이 아니다. 울산 동강병원 영양실에서 일하는 조리원 20여명은 1일 해고돼 병원 안에서 출근대기 투쟁을 하고 있다. 동강병원 영양실 운영업무를 위탁받아 운영하던 용역업체가 1일부터 동원홈푸드로 변경됐다. 동원홈푸드는 기존에 일하던 조리원 20여명을 고용승계하는 대신 인력파견업체에 재하청 주는 방식을 택했다. 30년 가까이 일한 조리원도 ‘세밑 해고 한파’를 피하지 못했다.

간접고용 노동자가 해고된 이후 어렵게 원청과 대화의 장이 마련돼도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오비맥주 경인직매장에서 일한 20여명 물류노동자는 지난해 6월 도급업체 변경 과정에서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해고됐다. 오비맥주 직매장은 오비맥주에서 물류운송을 수탁한 CJ대한통운이 재하청 준 물류회사가 운영하는 구조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 부천지청 중재로 오비맥주·CJ대한통운·운영사가 참여하는 대화 테이블이 마련됐지만 복직 논의는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최근 CJ대한통운이 직매장 물류운송 업무에서 손을 떼기로 하면서 오비맥주가 새 위탁업체를 찾을 때까지 교섭도 기약 없이 연기될 전망이다.

‘업체 변경시 고용승계 의무화’ 대통령 공약 공수표?

이렇게 대량해고 사태가 반복되는 이유는 간접고용이라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간접고용은 원청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회피하고 손쉽게 노동자를 자르는 만능열쇠다. 비용절감 욕망 앞에 하청노동자를 새 용역업체가 고용승계하는 ‘관행’은 무시되기 일쑤다. 특히 하청 사업장에 노조가 생기면 계약해지는 노조와해 수단으로 변모하고, 한 업체에 위탁하던 업무를 여러 회사로 쪼개서 계약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제도 미비도 영향을 미쳤다. 용역업체 변경 때 고용승계를 강제하는 규정을 둔 법은 없다. 영업양도시 근로관계가 판례상 원칙적으로 승계될 뿐이다. 2017년 대법원은 종전 용역업체와 새 용역업체 사이 ‘묵시적 영업양도계약’이 존재해 고용·단체협약 승계의무가 있다는 전향적 판례를 만들었지만 간접고용 노동자가 매번 소송으로 사법부 판단을 받아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부·정치권이 개입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용역업체 변경이 노동자 해고로 이어지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이미 유럽에서는 용역업체를 변경할 때 고용승계와 근로조건 유지를 폭넓게 보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후보 시절 ‘용역업체 변경시 고용·근로조건 승계 의무화’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당시 청소·경비·급식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노동자를 위해 이러한 공약을 내놓았지만 제도화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 해당 공약을 “진전 없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1대 총선공약에 해당 내용을 포함했지만 관련 입법 논의는 가시화하지 않고 있다.

강예슬·어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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