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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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앓는 것도 사치라 다시 길 위에 섰습니다. 연말까지 기다렸지만 답이 없어 청와대까지 가보려고요. 복직 없이 정년 없습니다.”

매서운 세밑 한파에 전국이 꽁꽁 얼어붙은 30일, 정년을 하루 앞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대장정의 첫발을 내디뎠다. 암 재발로 수술을 받고 1월 방사선 치료를 앞둔 김 지도위원은 본인 치료도 중단한 채 주변의 만류에도 ‘해고자 복직’ ‘고용안정 없는 매각반대’를 위해 길 위의 투쟁을 시작했다.

김 지도위원은 2명의 동지와 함께 이날 오전 11시께 부산 호포역에서 도보행진을 시작했다. 약 16킬로미터 거리인 부산 원동역까지 행진하고 31일 원동역에서 다시 출발한다.

낯선 모습이 아니다. 김 지도위원은 지난해 12월에도 암투병 와중에 도보행진을 했다. 대구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의 투쟁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였다. 2018년 10월 암 진단을 받은 김 지도위원은 항암치료를 이어가던 중 부산에서 대구까지 약 111킬로미터 거리를 꼬박 일주일을 걸어 도착했다.

김 지도위원이 연말을 또다시 길 위에서 보내게 된 이유는 정년을 하루 앞둔 시점까지 복직 논의에 진척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6월 김 지도위원이 복직투쟁에 나선 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병모 한진중공업 대표이사가 증인으로 나오며 의제로 다뤄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꼬인 매듭은 풀리지 않고 있다.

노사 대화는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한진중공업은 29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에 공문을 보내 재채용·위로금 지급하는 방식의 문제해결을 제안했다. 지회는 “(복직 형식과 같은) 쟁점이 아닌 것을 부각해 거부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회사가 지회와 실질적인 교섭을 하지 않은 채 ‘보여주기식’ 대응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중재를 시도했지만 노사합의는 결실을 맺지 못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이미 이명박 정부 때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김 지도위원의 노조활동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고 사측에 복직을 권고한 바 있다. 김진숙 복직 촉구 시민사회원로 선언에 참여한 조돈문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 부당해고였다는 것을 확인했고 회사에 복직을 권고했는데 아직까지 집행이 되지 않았다”며 “집행은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판단이자 대통령의 통치행위”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양대 지침을 폐기하고 노동문제를 바로잡았듯 대통령이 부당해고를 바로잡고 정치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김미숙·이용관씨 20일째 단식, 시민·노동자 1만명도 참여

“이제 너가 바라던 걸 하나씩 이루며 너를 지키지 못한 것을 속죄하며 살아가겠다. 비록 우리 아들은 원통하게 갔지만 아직도 아들 동료들은 위험에 노출돼 있는데 하루라도 빨리 위험에서 벗어나길 바랄 뿐이다. 다시는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나라가 책임 있게 행동하길 바란다. 돈이나 권력보다 인간의 가치가 존중받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2018년 12월 추모제에서 읽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아들이 목숨을 잃은 뒤 어머니는 주저앉지 않았다. 집회도 하고 기자회견도 했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대통령이 말했고, 국회도 동조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 논의가 시작했다. 김씨는 국회를 떠나지 못했다. 국회 환노위 앞에서 회의를 지켜보며 야당 의원들에게도 호소했다. 그해 12월27일 국회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됐다. 그렇게 될 때까지 그는 쉬지 않았다.

2020년 12월30일 김씨가 국회에서 20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다시는 아들처럼 노동자가 죽지 않게 하겠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면서다. 산재 사고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문재인 정부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너무 허술해 기가 막힌다”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단식 중에도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을 붙잡고 얘기한다. “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일하게 해 달라”고. 김씨와 함께 국회 본청 앞 천막에는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 강은미 정의당 의원,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가 단식을 한다. 김주환 대리운전노조 위원장 단식농성은 이날로 24일째다. 산재 유가족인 강석경씨·김도현씨·김선양씨와 김태연 변혁당 대표, 이진숙 충청남도 인권위원장, 현린 노동당 대표는 이날로 3일째,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당선자와 양재성 종교환경회의공동대표는 2일째 단식 중이다.

김미숙씨는 이날 정오께 건설노조가 연 온라인 결의대회에서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나고 사람들이 떨어져 죽는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용균이 사고 때처럼 터무니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유가족들이 저와 같은 심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했다. 이용관씨도 “밖에서 건설노동자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투쟁하고 있어서 단식 20일차이지만 저희들이 굳건하게 버티면서 국회 내에서 열심히 투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30일 국회 앞에서 올바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30일 국회 앞에서 올바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이날 정오께 건설노조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온라인 결의대회를 열고 조합원들과 단식 상황을 공유했다. 전국 각지에서 단식에 동참하고 있는 조합원들은 온라인을 통해 서로의 얼굴을 보며 결의대회에 참여했고, 국회 앞으로 나간 조합원은 단식 중인 산재 유가족·정치계 인사들에게 간단한 상황 공유를 요청했다.

이날 시민·노동자 1만명이 하루 동조단식을 했다. 민주노총과 천주교노동사목위원회, 민변, 반올림, 한국비정규노동센터를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여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가 지난 29일부터 국회 앞에서 시작한 2천400배도 이어지고 있다.

최나영·어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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