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트산업노조가 2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형마트가 배송기사들의 배송건수를 일방적으로 늘려 노동자들의 업무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소희 기자>

“불법 노동조합을 설립 또는 노동조합에 산발적으로 가입했거나 단체행동을 할 징후 및 단체행동을 했을 때 갑은 을에게 서면 또는 구두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홈플러스 상품 배송업무를 하는 업체가 온라인 배송기사들과 맺은 위수탁계약서 일부 내용이다. 홈플러스뿐만이 아니다. 신세계그룹의 에스에스지(SSG)닷컴 운송사는 “을은 어떠한 경우라도 단체행동을 유도할 수 없고 배송차량 차주 등의 단체행동을 선동하면 갑은 계약을 즉시 해지할 수 있다”고 계약서에 명시했다.

22일 매일노동뉴스가 대형마트와 운송계약을 맺고 있는 4개 운송사가 온라인배송기사들과 체결한 위수탁계약서를 입수해 살펴봤더니 위법한 내용이 다수 명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수고용 노동자로서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 3권을 제약하는 내용이거나 사업자로서도 불공정한 거래행위를 강요당하는 내용이다. 온라인배송기사들은 코로나19로 배송물량이 대폭 늘어 주 60시간 넘는 과로에 시달리면서도 ‘갑’에 맞설 방법을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다.

노동 3권도, 공정계약도 없어

운송사는 대형마트에서 배송업무를 도급받아 배송노동자와 업무 위수탁계약을 체결한다. 4개 운송사가 배송노동자에게 들이민 위수탁계약서에는 단결권이나 단체행동권을 금지하는 조항이 표현만 달리한 채 공통적으로 명시돼 있다. 노동자성을 확인하는 조항이나 개인사업자나 지입차주로 분류되는 배송기사들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물리는 불공정 조항도 상당수다. “배송능력 평가 또는 분기별 클레임이 3건 이상 발생시 퇴사 요구를 할 수 있다”거나 “운행기록을 열람할 수 있도록 1년간 GPS를 보존 및 비치해야 한다” “업무수행으로 인해 발생한 모든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조항이 대표적이다. “불법행위 또는 파업, 부당노동행위 등 계약불이행이 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겠습니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기도 한다.

조혜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한 온라인배송기사도 해당 내용을 근거로 계약을 해지당해 중앙노동위원회가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다”며 “노동위 공익위원들도 해당 조항은 ‘운송사가 배송기사를 사용자가 아닌 노동자로 대하고 있다는 반증이며 내용 자체도 헌법이나 법률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고 밝혔다.

주 60시간 일하는 온라인 배송노동자
“과로 방지 대책 절실”

온라인배송 노동자 노동시간은 브레이크 없이 폭증하고 있다. 마트산업노조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대형마트가 추가 배송과 장시간 노동을 강제하고 있다”며 정부에 실태조사와 과로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까닭이다. 이수암 노조 온라인배송지회장은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배송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 장시간 노동과 과도한 중량물에 시달리고 있지만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노동자 권리를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에 따르면 한 대형마트 온라인배송 노동자의 하루 평균 배송 건수는 40여건이다. 수백 건을 배송하는 택배노동자에 비해 적은 건수라고 여기기 쉽지만 배송상품당 무게가 수십 킬로그램에 육박한다. 서비스연맹은 지난달 ‘유통·물류산업 노동의 변화와 대응’보고서에서 홈플러스·이마트·에스에스지닷컴 온라인 배송노동자 63명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약 11시간이라고 밝혔다.

허영호 노조 조직국장은 “온라인 배송노동자들은 포장과 배송물품 수량 체크까지 하고 배송 권역이 넓어 노동시간이 길다”며 “계약서에 물량·건수에 관한 내용도 없어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하루 2시간가량 일을 더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지난 3월부터 홈플러스를 포함한 대형마트사에 주문 건당 중량물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특정 상품의 경우 정해진 무게가 넘으면 인센티브가 지급되기도 하지만 기준이 높아 노동강도에 비해 보상은 적은 수준이다.

김광창 연맹 사무처장은 “정부가 지난 14일 필수노동자 대책을 마련했지만 온라인 배송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은 내년에 검토하겠다고 했다”며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은 온라인 배송노동자들에게 정부는 보호대책을 즉시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 사무처장은 “올해 초부터 노조가 대책을 요구해 왔는데 과로사가 남의 일이 아닌 상황”이라며 “배송급증으로 과로에 시달리는 온라인배송 실태를 감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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