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숙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2017년 10월, 문재인 대통령과 당시 국민총리였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감축하고 2022년까지 산업재해 사고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약속한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 중 하나는 2019년 1월16일 전부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었다. 고용노동부가 입법예고안을 발표한 후 전부개정안은 1년이나 국회에서 머물러 있다가 ‘아들의 죽음을 다른 노동자에게 겪게 할 수 없다’며 투쟁에 나섰던 김미숙 어머님과 노동계의 요구로 겨우 통과했다.

그러다 보니 개정 과정에서 이미 누더기가 돼 버린 일명 ‘김용균법’은 김용균과 같은 하청 노동자와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위험의 외주화 중단 요구는 일부 유해물질만을 도급금지 대상으로 규정해 생색만 내는 수준으로 변질했다. 원청의 책임을 제대로 묻겠다던 법개정 취지는 협소해진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갇혀 버렸다. 산재사망에 대한 발주처와 원청의 책임은 여전히 제대로 묻지 못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38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10명이 다친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화재 참사 사건의 마지막 재판 심리에서 검찰조차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 TF팀장에게 업무상과실치사로 금고 2년 형을 선고하면서도, “국가가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야 불행한 일을 막을 수 있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필요성을 언급했을까.

그동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요구에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던 더불어민주당은 결국 이번 정기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지 않았다. 아들의 2주기에 법 제정을 희망했던 어머님은 결국 결사 투쟁의 각오로 산재 유가족들과 민주노총 간부들, 강은미 정의당 의원과 함께 법 제정이 될 때까지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생명보다 소중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에게 남아 있는 희망은 모든 삶이 부서져 버린 참사를 반복하지 않는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계속되는 죽음을 보면서 고통받지 않기 위해, 살아 남기 위해 마지막 선택인 단식투쟁을 선택했다는 산재 유가족들의 굳은 결의를 결국 외면하지 못했을까. 취임 100일이 되던 이달 13일 이낙연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임시국회 회기인 내년 1월8일 안에 통과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더불어민주당의 공식입장으로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낙연 대표 스스로도 이번 발표가 10번의 약속에 이어 11번째 해당하는 약속이라며 더 이상의 허언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취하는 보수적이며 반노동자적인 행보를 볼 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한 여당의 입장 변화가 있을지, 그리고 조정될 법 제정안의 내용이 어떠할지 우려스럽기만 하다. 특히 14일 박범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을 보면 여전히 50명 미만 사업장의 법 적용을 4년 유예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대부분 중대재해가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노동자의 생명보다는 기업의 입장을 먼저 반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늦었지만, 임시국회 내에 제정하겠다는 이낙연 대표의 약속이 산재 유가족의 단식투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닌 ‘약속’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법 제정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분명한 입장 표명과 연내 법 제정을 추진하는 실천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법 취지에 맞게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산재 유가족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연대 및 노동계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이번에는 2년 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 당시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는 차가운 날씨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요구를 막지 못하고 있다. 피눈물을 흘리며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산재 유가족들과 노동자의 요구에 이제라도 행동으로 답해야 할 때다. 이솝우화 ‘양치기 소년’의 교훈을 더불어민주당과 이낙연 대표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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