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과 한국가사노동자협회가 지난달 4일 오전 국회 앞에서 가사노동자 고용개선에 관한 법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경기도 인천에서 올해로 9년째 가정관리사로 일하고 있는 이윤미(61·가명)씨는 올해 수입이 반토막 났다.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4시간씩 가정을 방문해 청소와 빨래를 해 주던 일이 코로나19로 끊겼기 때문이다. 감염자수가 늘고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이씨는 “내일부터는 그만 나와도 된다”는 말 한마디로 실직했다. 하지만 이씨는 실업급여는커녕 정부가 프리랜서와 특수고용직에게 지급한 ‘긴급 고용안정지원금’도 받을 수 없었다. 9년간 가정관리사로 일했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이씨가 일한 사실을 증명해 주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동자로 일했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없는 그는 가사노동자다.

코로나19로 실직, 수입 감소 직격탄 맞아
10명 중 9명 “정부 지원 못 받았다”

이씨뿐만이 아니다. 13일 한국가사노동자협회에 따르면 가사노동자 10명 중 8명이 코로나19로 수입이 크게 줄었다. 협회가 지난 11월 113명의 가사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까지 월 평균 112만3천원을 벌었던 가사노동자들은 코로나19 이후 월 평균 수입이 63만9천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가사노동자 82.4%가 코로나19 이후 수입 감소를 경험했고 69%는 일방적 방문 취소로 하루아침에 실직한 것으로 조사됐다. 수입이 줄어든 가사노동자들은 다른 가족 수입에 의존하거나(32.6%), 파트타임 일자리를 알아보거나(18.8%), 저축한 돈을 찾아 썼다(17.4%).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지인에게 빌렸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중 10.6%만 정부의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받았다.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받지 못한 이들은 대부분 지원 대상에 해당되지 않거나(31.3%) 신청했지만 지급 대상이 아니라는 통보를 받거나(22.9%) 소득 감소를 증명할 수 없어 신청하지 못한 것(22.9%)으로 드러났다.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는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될 때 가사사용인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70여년간 가사노동자는 사회적 보호 전반에서 배제되고 있다”며 “가사노동자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안·이수진안·강은미안 3건 발의, 논의는 실종

21대 국회에는 가사근로자 고용개선에 관한 법률 제정안 3건이 계류 중이다. 정부가 지난 7월 발의한 것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9월 각각 발의한 법안이다.

정부가 발의한 제정안은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이 가사노동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인증기관은 손해배상 수단을 갖추고 가사서비스 제공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했다. 제공기관과 가사노동자는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제공기관과 이용자는 이용계약서를 통해 이용조건을 명시하도록 했다. 고용노동부는 서비스의 종류, 시간, 요금, 근로자 휴게시간, 안전 등을 포함한 표준이용계약서를 마련할 예정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직업소개소를 이용해 가사노동자를 사용할 경우 제재할 방법이 없다.

20대 국회에서 제출된 이정미 전 정의당 의원안을 이어받은 강은미 의원안과 이수진 의원안은 큰 차이가 없다. 제공기관이 인증을 받지 않으면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정부안보다 노동조건 규정이 엄격하다.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근로기준법 면탈을 피하기 위해 주 15시간 이상 최소노동시간을 지키도록 했다. 또 공익적 제공기관을 정부가 육성, 지원하도록 했다. 가사노동 중개기관이 이윤을 목적으로 수수료를 취하면 중간착취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협동조합 등 공익적 제공기관이 일자리를 중개하도록 한 것이다.

사실 이런 내용과 취지의 법안은 지난 10여년 동안 국회에서 꾸준히 나온 익숙한 내용이다. 정부도 20대 국회에 발의한 법안을 그대로 21대 국회에 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11년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에 관한 협약’을 채택한 이후 가사노동자법은 18대부터 20대 국회까지 매번 발의됐지만 후순위로 밀려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폐기되는 운명을 거쳤다.

가사노동자법 제정에 노사 간 이견은 없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보기 드문 ‘무쟁점 법안’으로 꼽힌다. 문제는 여야 양당이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 9월22일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이재갑 노동부 장관이 정부안에 대한 제안 설명을 하고, 이달 초 법안소위에 상정됐지만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생계 벼랑 끝에 선 25만명(노동부 추산)의 가사노동자가 국회를 바라보고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