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영 청년유니온 정책팀장

청년유니온 사무실은 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상권이 무너졌다’는 신촌, 그중에서도 가장 유동인구가 적은 쪽에 있다. 사무실을 오가며 ‘임대’ 표지를 마주할 때마다 저 ‘임대’ 딱지만큼이나, 혹은 그 몇 배의 서비스직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길 건너편, 나아가 그나마 유동인구가 많다고 생각했던 다른 길목에까지 ‘임대’ 스티커가 붙는 것을 봤다. 빈 가게가 늘어가는 만큼 무거운 마음도 퍼져 간다. 코로나19에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소매·숙박·음식·교육 등의 서비스업종은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으로 청년들이 가장 많이 일하는 곳이다.

최근 서울청년유니온은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실직한 청년 102명을 설문조사했다. 전체 응답자 중 실업급여를 받았다고 응답한 경우는 9.8%에 불과했다. 실직 이유를 기준으로 하면 38.3%의 응답자가 수급 조건을 충족했음에도 실업급여 수급률은 이에 한참 못 미쳤다.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 이유는 “고용보험 미가입”(39.2%), “최소 노동일수 미충족”(29.4%), “자발적 퇴사”(14.7%) 순이었다. 실업급여 존재를 몰랐다는 응답도 있었다.

설문조사의 응답 조건을 ‘코로나19로 인해’ 그만둔 경우로 했는데도 자발적으로 퇴사했다고 응답한 14.7%의 실직자가 궁금해졌다. 설문조사 결과보고에는 막연하게 ‘형식상 자발적 퇴사여도 불합리한 노동조건 때문에 퇴사를 선택한 경우를 포괄하기 때문’이라고 써 뒀지만, 숫자 너머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7명의 아르바이트 실직 청년 당사자와 온라인 집담회를 열어 실제 실직 과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설문조사와 달리 참여자 대부분이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었는데도 실업급여 신청을 하지 않거나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충족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집담회는 순간 수급조건을 설명하는 노동상담이 되기도 했다. 이들은 분명 자발적으로 그만두지 않았지만, 자발적 퇴사자였다.

파트 인원 중 한 명은 무조건 해고돼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왔다. 다른 사람들의 간절한 사연을 아는 A는 손을 들었다. A는 자발적으로 퇴사했는가? 4시간씩 3일, 일주일에 12시간 일하던 B는 출근 2시간 후 “오늘은 일찍 들어가도 된다”는 말을 듣거나 출근 준비를 마친 상황에서 “오늘은 일이 적으니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반복되는 상황에 버는 돈 없이 나가는 에너지가 아까워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이것은 자발적 퇴사인가? C는 코로나19로 매출이 줄자 지속해서 퇴사 압박을 주는 사장님을 견디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이들은 모두 “제가 그만두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자발적 퇴사자인가?

고용주는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이직확인서를 발급해 줄 의무가 있지만, 해고나 권고사직으로 인한 실업급여가 발생하면 일자리안정자금을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이를 회피한다. 집담회에서 만난 당사자들은 실업급여의 존재는 알지만 내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거나, ‘사장님도 어려운데…’라고 생각하거나, 서류를 요청해도 주지 않을 것 같아서 아예 시도하지 않았다고 했다. 단어는 명확하지만 현실에서는 하나도 명확하지 않은 ‘자발적 퇴사’를 대체할 새로운 조건은 없을까? 노동자가 ‘자발적 퇴사’를 하지 않았다는 입증을 하는 게 아니라 이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퇴사했다는 증명을 사업주가 하게 하는 방법, 최저임금이나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퇴사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방법, 현재 같은 재난 상황에서 한시적으로나마 자발적 퇴사자에게도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방법 등 떠오르는 대안은 상상하기 나름이다. 우리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에 합의하기만 한다면.

* 참여자 익명화를 위해 사례는 내용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일부 각색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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