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현장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다 보니 전혀 와닿지 않는 지원이 이뤄지고 있어요.”

“봉제업의 경우 어마어마한 규모의 (정책 지원으로) 교육과 환경개선이 이뤄지고 있지만, 종사자들의 처우나 복지(개선)은 하나도 없어요.”

서울 도심지역에서 일하는 제조업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관련 조사에서 응답한 내용이다.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정책을 펴고 있지만 실질적인 노동조건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은 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면접조사 내용을 공개했다. 조사는 서울에서 일하는 봉제·제화·인쇄·주얼리를 비롯한 제조업 노동자 4명과 노동단체 활동가 2명을 대상으로 9~10월에 총 4회에 걸쳐 실시했다. 이날 토론회는 서울도심제조노동조합연석회의와 서울노동권익센터가 ‘도심제조업 노동조건 실태 및 지원정책 개선방향’을 주제로 열었다. 이주환 연구원에 따르면 서울시 제조업 사업체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다. 2018년 기준 전국 제조업체 중 9명 이하 사업체는 84.2%였다. 서울시는 그 비율이 93.4%였다. 자영업자나 특수고용 노동자·무급가족 종사자·무등록 노동자를 비롯한 비공식 노동자도 상대적으로 많다.

“서울시, 신규일자리 창출에만 초점
일자리 질 그대로니 쉽게 이탈”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시는 중소기업 육성계획이나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통해 도심제조업을 대상으로 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노동의 질 개선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응답자들은 “서울시의 중소기업 육성정책이 신규일자리 창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기존 일자리 질 제고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 같은 정책 방향이 신규일자리 창출에조차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인력이 새로 들어와도 열악한 노동조건 탓에 쉽게 이탈하는 현상도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지원이 행정 편의에 따라 이뤄져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 응답자는 “주얼리센터는 인력(지원예산)은 꾸역꾸역 넣지만 꿈을 갖고 대학 졸업한 뒤 온 분도 (막상 일하면 열악한 노동환경에) 다 도망간다”고 답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제화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아도 현장에 들어가면 다시 배워야 한다”며 “교육생수에 따라 예산이 분배되다 보니 요즘은 교육생도 ‘돌림빵(돌림매)’ 한다는 말도 있다. 이름만 채워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각 센터마다 패션·디자인·미싱 같은 교육을 하지만 현장에 이익이 되는 교육이 아니다. (센터에서 교육받은) 디자이너들이 현장에 온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봤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사업주협회 위주로 전달되는 지원혜택
영세사업주는 ‘브로커’ 작업 대상 되기도”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지원사업 기획과 전달체계에 사업주협회를 비롯한 사업주대표단체만 참여하는 것이 문제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이주환 연구원은 “사업주단체에는 주로 규모가 있는 기업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가장 지원을 필요로 하는 중소·영세 기업 사업주나 노동자가 정책 대상에서 제외되는 역설이 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응답자는 “지원을 잘 받고 정책과 밀접해 있는 협회는 사업주 중에서도 영향력 있는 사업주들, 돈 좀 낼 수 있는 규모 있는 사업주들로 구성된다”며 “정부는 (중소영세기업들을 위해) 인프라를 지원하고 싶었을 텐데 영세기업 노동자들은 (지원 효과를) 느끼기 어려웠다”고 답했다. 또 다른 응답자도 “영세사업주들은 연령도 높고 정보력이 취약하다”며 “진짜 도움이 되는지 의심하고 과정이 번거로우면 관두는 것 같다”고 전했다.

사업주단체 위주로 정부 예산이 전달되는 구조에서 일부 기업이 중복 수혜를 받고, 정보·지식이 부족한 영세사업주들은 정책지원 사업 신청을 매개로 한 ‘브로커’들의 작업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 응답자는 “900만원, 500만원, 300만원짜리 서로 다른 정책 지원 사업이 있다면 900만원짜리 사업을 지원받는 업체가 500만원짜리도, 300만원짜리도 받고 있다”며 “(비영세) 업자들끼리 담합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정부 지원금을 받으려면 서류를 작성해야 하고 스토리를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런 걸 대신 해 주겠다고 하면서 브로커가 접근한다”며 “이들은 행정적 업무 등을 처리하고 과도한 중간 이득을 챙겨 간다”고 말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당사자들 목소리가 반영된 지원이 이뤄져야 정책이 실효를 거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조나 공제회를 비롯한 노동자대표조직이 지원사업 기획·전달체계에 참여하도록 해 사업주협회를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응답자들은 “(정보력이 취약한 영세사업주들을)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거나 “‘찾아가는 동사무소’ 같은 종류의 서비스를 통해 지원사업 신청서류 작성 같은 것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노동자들은 그 밖에도 △고용보험을 비롯한 법·제도를 적용받지 못하는 비공식노동 해소를 기본 정책방향으로 삼을 것 △노사정 협의로 단가와 노임을 표준화할 것 △집적지에 맞춤형 쉼터와 상담공간 만들 것 △노동이력증빙제도 도입을 모색할 것을 요구사항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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