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 구조조정을 둘러싼 노정간의 한판 힘겨루기가 끝이 났다. 노정 합의결과 노조는 관치금융 방지와 강제합병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정부는 금융지주회사법을 통한 구조조정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큰 물이 휩쓸고 지나가면 강의 지형도 변화하는 법. 이번 금융총파업 과정에서 형성된 역학관계는 향후 금융산업 구조조정뿐만아니라 노사관계 지형에도 여러 가지 변화를 남기고 있다.

* 노정간의 정책협상…정책 이해당사자로서 노조위상 확인
이번 금융노조 총파업 과정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금융노조와 정부가 교섭테이블에 마주앉아 정책협상을 통해 정책방향을 결정했다는 점이다. 노조대표와 정부 부처 장관들이 직접 정책협상을 한 것은 그자체로 노사관계의 새로운 모습이다. 물론 과거에도 양대노총 대표가 정부 당국자와 협상을 통해 합의를 도출한 적은 있다. 그러나 이번 금융노조와 정부의 협상은 산별노조 차원에서 임단협과 같은 경제적인 이해관계나 노사관계 쟁점이 아니라 경제정책 문제를 놓고 직접 협상을 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금융노조와 정부간의 협상은 노조가 정부 정책의 이해당사자로서의 위상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노조의 역할구도는 향후 노사관계에 새로운 가능성으로 남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역설적인 것은 애초에 정부가 노조를 정책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결국에는 더 강하게 인정하게 되는 결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 봄부터 금융산업 구조조정 정책을 추진하면서 노조를 정책 이해당사자로서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왔다.
금융노조는 금융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노사정위 금융특위에서 논의할 것을 여러차례에 걸쳐 촉구했지만 재경부는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 금융산업구조조정이라는 비중있는 정책 실무협의를 위한 자리에 사무관을 내보내는 등 실질적인 정책협의에는 무게를 싣지 않았다. 급기야 6월7일 정부의 금융산업 구조조정 정책이 발표되자, 금융노조는 6월8일 노사정위 금융특위를 탈퇴하면서 총파업이라는 힘을 동원한 투쟁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힘의 대결은 주무부처 장관이 참여하는 노정협상테이블로 이어졌다. 결국 이번 금융노조 총파업은 노사관계 주요 정책사안에 대한 노사정의 정책협의의 필요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 새로운 노정 역학관계, 향후 노사관계에 긴 여운
이번 금융노조의 파업은 정치력보다는 조직력과 투쟁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정치력을 통한 해법모색에 강점을 보여왔던 한국노총에서 이런 투쟁전술은 이례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나 금융노조와 같은 사무직 노조에서 투쟁력을 무기로한 전술을 택했다는 것은 그자체로 새로운 모습이다. 이것은 향후 한국노총의 활동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나 금융노조는 이번 한국노총 총파업에서도 주력을 담당함으로써 한국노총 내에서 금융노조의 위상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면 이번 투쟁과정에서 불법파업에 대한 언론의 비판은 앞으로도 부담으로 남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번 노정 합의에서 금융노조는 금융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고용문제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받는데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향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 문제는 또다른 불씨로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그것은 향후 노정관계의 또다른 과제가 될 것 같다.
11일 밤 연세대 노천극장에 모인 조합원 보고대회에서 이용득 위원장은 이번 투쟁에서 가장 값진 것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이 경험과 역학관계가 이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만큼 이번 총파업 과정에서 만들어진 경험과 전례는 향후 노사관계 물줄기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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