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노동법 문제가 사회·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

그 계기 중 하나는 전태일 3법 입법운동이다. 전태일 3법 입법운동은 전태일 동지 항거 50주년을 맞아 민주노총이 추진해 왔다. 잘 알다시피 전태일 3법은 노동자가 결사의 자유를 온전히 누리도록 ‘근로자’와 ‘사용자’ 정의를 확대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도 근로기준법에 따른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적용 범위를 넓히는 근기법 개정안, 중대재해에 대해 기업을 엄벌하는 법안이다. 이 세 법안은 하나같이 꼭 필요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로 비정규 노동이 폭증해 왔음에도 600만명에 달하는 간접고용·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동기본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해 왔다. 최저 노동기준이 적용돼야 하는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최저기준인 근기법에서 배제돼 왔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 발생이 끊임없이 언론에 보도되는데도 국회와 정부는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아 왔다. 심지어 2018년 연말 국회에서 이른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통과됐으나 김용균은 김용균법을 적용받지 못했다. 더 기막힌 일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대신하면서 동시에 3명 또는 1년 내에 3명 이상 사망한 산재가 발생한 경우에만 중대재해로 간주하며, 처벌은 징역형이 아니라 벌금이나 과징금을 조금 더 물게 하겠다는 여권의 움직임이다. 가진 거라곤 돈밖에 없는 자들에게 말이다. 자본가 계급 정당·정부는 전태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전태일 3법은 이렇게 깔아뭉개고 있다.

관련해 귀를 기울여야 할 지점이 하나 있다. 인도네시아 스다네 노동정보센터 연구원 파미 파님방 씨는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세 법은 … 모든 기업이 인권존중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재확인함으로써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해외의 모든 노동자들에게도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지난해 6월 홍콩에서 민중투쟁국제연맹(ILPS) 6차 대회가 열렸다. 이 회의에 한국에서 대표단이 참가했고, 인도네시아 대표단과 같은 숙소를 사용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대표단에서 한국 대표단장에게 한국의 삼성이 인도네시아 노동자에게 연장근로를 시키고도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등 노동착취와 탄압을 행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는 이 같은 삼성을 ‘우리 삼성’이라며 자랑스러워 할 것이 아니라 파님방씨의 말처럼 ILO 기본협약도 비준하지 않은 한국의 낙후된 노동법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계기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법 개악이다. 정부는 지난 6월 노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는 제안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국제노동기구의 핵심협약인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의 비준을 추진하면서 해당 협약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법률을 개정하기 위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 종사하지 아니하는 근로자에 대해 기업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노동조합의 업무에만 종사하는 근로자에 대한 급여지급 금지 규정을 삭제하는 등 근로자의 단결권 보장의 범위를 확대하는 등 현행 제도의 운영상 나타난 일부 미비점을 개선·보완하려는 것임.”

그러나 겉으로 내건 이런 이유와는 달리 정부는 노동법 개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걸 두고 양두구육이라 한다. 법안은 기본협약 비준에 따른 ‘보완 장치’를 마련하겠다면서 해고자의 기업단위 노조 가입을 허용하되, 대의원이나 임원은 그 기업에 종사하는 조합원에 한정하고 있다. 또 기업의 종사자가 아닌 조합원, 즉 해고자나 산별노조 간부의 사업장 출입을 제한한다. 이것은 해고 노동자의 기업별노조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는 법 개정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조항이다. 아니, 해고 조합원뿐 아니라 산별노조 간부의 사업장 출입을 제한하는 독소조항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다. 이번 법 개정안은 또 단체교섭 유효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한다. 이 또한 개악이다. 이 개정안은 또 “노동조합은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해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로 쟁의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쟁의행위 제한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는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라는 유럽연합(EU)의 무역분쟁 제기에 쫓겨 어쩔 수 없이 해고자 조합원 인정과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조항 삭제를 실시하는 대신에 노조활동에 족쇄를 채우는 개악 조항을 여럿 도입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ILO 기본협약 비준 취지인 현행 노동악법 대폭 개선에 역행한다.

사실 현행 노동법은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보호입법이 아니라 노조활동을 금지하고 통제하려는 목적을 가진 ‘치안경찰법’이다. 그러므로 노동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하려면 현행 노동법 개악에 반대하거나 이러저런 조항 몇 개를 개정하는 것으로는 큰 소용이 없다. 우리 노동법은 1953년 제정할 당시에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구색용이었다. 그 이후 노동법은 군사파쇼 정권에 의해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거듭 개악돼 왔다. 그 극치가 박정희의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과 전두환 정권 당시 ‘국가보위입법회의’의 노동법 전면 개악이었다. 이 악법은 87년 일부 개정돼 기업별노조 설립이 다소 용이해졌으나 기본적으로 국가가 금지·통제·처벌하는 노동악법으로 유지됐다. 96~97년 노동법개정으로 연합단체 복수노조가 허용돼 민주노총 합법화 길이 열렸으나 그 반대급부로 무노동 무임금,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비공인파업 금지 같은 악법이 여럿 추가됐다. 노조설립은 여전히 허가제이고, 파업이 합법으로 인정받으려면 조건과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연대파업과 정치파업은 기본적으로 불법이다.

그러므로 노동운동은 전태일 3법 입법이나 노동법 개악 반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일제시대 치안경찰법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현행 노동악법을 철폐하고, 노동기본권 완전보장 법률로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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