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왼쪽부터 최성근(46) 노조 부위원장·방웅(41) 전주지회장·정재원(48) 전주지회 조합원. <정소희 기자>

어느새 겨울로 접어들었지만 국회 앞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절박한 마음을 안은 노동자들은 차가운 길바닥에 자리를 편다. 여러 농성장 가운데 곡기를 끊은 노동자들이 있다. 지난달부터 단식농성과 파업을 결의한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티브로드지부 농성장이다.

지난 7월 SK브로드밴드 고객센터 운영을 맡은 하청업체 중부케이블은 전주센터에서 일하던 직원 8명을 아산센터(3명)·천안센터(3명)·세종센터(2명)로 보냈다. 이들은 최대 120킬로미터를 오가며 하루 4시간 넘는 시간을 출퇴근하는 데 쓰고 있다.

지부는 지난달부터 원청인 SK브로드밴드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파업과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현재는 필요에 따라 지명파업 형식으로 번갈아 가며 파업한다. 지난 16일 노동자 5명이 2차 단식농성에 돌입했고, 열흘을 넘긴 지난 26일 건강악화로 2명의 조합원이 병원에 후송됐다. 최성근(46) 노조 부위원장·방웅(41) 지부 전주지회장·정재원(48) 전주지회 조합원이 여전히 단식 중이다. 단식농성 12일째인 지난 27일 <매일노동뉴스>가 농성장을 찾았다.

“고용보장 약속도 없는데… 이사하기도 어려워”

티브로드 시절을 포함해 올해 8년차를 맞은 정재원 조합원은 “도 경계선을 넘은 파견은 전례가 없다”며 “이 같은 원거리 발령은 출퇴근 문제를 넘어서 생활이 불가능한 문제”라고 말했다. 전보 당사자들은 교통비로 매달 수십만원을 지출하는 데다가 고용보장을 약속 받지 못한 상황에서 가족이 모두 이사가기도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정 조합원은 “입사 8년차인데 사장이 네 번이나 바뀌었다”며 “전보 당사자들이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집을 팔고 박봉을 견디며 이사하기도 어렵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더군다나 올해 초 티브로드와 SK브로드밴드가 합병한 뒤 케이블 기반 티브로드 고객이 점점 IPTV 기반 SK브로드밴드로 이동하는 추세라, 티브로드부터 일하던 협력업체 기사들은 더더욱 고용불안을 우려한다.

중부케이블은 당초 발령 이유를 “센터별 업무량 불균형으로 인력 재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발령지에 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재 천안·세종으로 발령받은 직원들 중 발령 4개월이 지나도록 아직도 지역 할당을 받지 못한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업무를 맡은 기사를 돕는 역할이 배정됐다. 최 부위원장은 “일이 많으면 이들 기사에게도 지역 할당을 해야 하지만 발령지에 일이 없어 하루 한두 건씩 업무를 처리하는 상황”이라며 “인력이 필요했다면 한시적으로 지원 보내면 됐는데 관리자들이 기사들을 놓고 자존심 싸움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부케이블과 노조는 갈등의 골이 깊다. 중부케이블은 이들을 발령내기 전에 내근직 직원 2명을 발령하겠다고 했지만 노조가 반대해 무산된 바 있다. 지난해에는 임금삭감 문제로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받았다. SK브로드밴드의 다른 협력업체에서 12년간 일한 최 부위원장은 “조합원과 갈등은 몇 년째 중부케이블에서만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보장·불법업체 퇴출은 원청이 약속한 것”

방웅 지회장은 전주센터 노동자들의 업무강도가 높아진 점을 주목했다. 방 지회장은 “전주는 기사 1명당 관리 권역이 넓어져 일감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며 “업무가 지연돼 고객들은 7~10일씩 기다리며 민원을 제기하는데, 늘어난 이동 거리와 민원, 나빠지는 서비스 질 문제를 모두 현장의 기사들이 감당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부는 올해 초 인수합병 당시 SK브로드밴드가 정부에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고 승인을 받은 만큼 고용안정을 위협하는 협력업체 행위를 제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장거리 전보를 받은 8명 중 1명이 출퇴근 문제를 못 견뎌 그만뒀다. SK브로드밴드는 협력업체와 3년간 고용을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에 개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최 부위원장은 “SK브로드밴드는 합병 전에 노조와 대화할 때 ‘협력업체가 불법을 저지르거나 원청이 요구하는 서비스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퇴출시킬 수 있다’고 얘기했다”며 “원청이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협력업체에 대한 계약 유지는 노동자들 고용안정과 연관된 문제인데 원청이 이를 협소하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지부는 이 같은 불합리한 인사이동을 노동위가 인정해 주면서 다른 센터에 ‘잘못된 신호’를 줄까 봐 우려하고 있다. 전북지노위는 지난 9월 노조가 중부케이블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인사발령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최 부위원장은 “인사이동 가능성이 전주센터만의 문제는 아니다”며 “우리가 우려했던 문제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만큼 전주센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법인의 노동자들도 똑같은 문제를 겪을 수 있어 노조는 반드시 이 흐름을 저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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