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경향신문이 지난 20일 5면에 ‘야권 주자들이 마포로 가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기사는 첫 문장부터 “여의도 당사가 아니라 마포 문턱이 닳고 있다”로 시작했다.

보수 야권의 대선주자와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정치인들이 김무성 전 국민의힘 의원이 만든 ‘더 좋은 세상’(일명 마포포럼)에서 잇따라 출마를 선언했다.

이혜훈·이진복 전 국민의힘 의원은 19일 여기서 보궐선거 정책 구상을 발표했다. 원희룡 제주지사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태호 무소속 의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까지 여기 연단에 섰다. 유승민 전 의원도 26일 여기 강연자로 나선다. 덕분에 격주 한 번씩 하던 마포포럼은 주 1회로 늘었다.

광화문 촛불 때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무성 전 의원은 이번엔 킹메이커를 자처하는 모양새다.

기사는 여기에 그쳤으면 좋았겠지만, 더 나갔다. 과거와 달리 현재 보수 야권 주자 대부분이 원외 인사라 공간이 필요했다고 분석한 데 이어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차기 주자들에게 공간을 열어 주지 않아 이들이 마포포럼에 몰린다고 해석했다.

이처럼 정치부 기자는 기사 쓰기 참 편하다. 한 발도 안 움직이고 머리 굴려서 전화 몇 통 하면 이런 기사는 하루에도 수십 건 쓴다. 누가 이런 기사에 시비를 걸 일도 없다. 설사 다소 불편한 내용이라도 정치인은 언론에 노출만 되면 크게 문제 삼지도 않는다. 그 옛날 동교동계 김상현 전 의원은 비판 기사라도 좋으니 써 달라고 했다.

생업에 바쁜 시민에게 김무성은 잊힌 지 오래다. 김 전 의원의 마포포럼이 어떤 비전을 내걸었는지 진지한 분석도 없다. 이런 게 생략된 채 지면에 실리는 기사는 정치인의 생명만 연장할 뿐이다.

반대 편 집권 여당의 ‘양정철 역할론 재부상’ 류의 기사도 마찬가지다.

모든 걸 정치공학으로만 해석하는 언론의 지면 때우기 기사에 나라의 미래를 맡길 순 없다.

한겨레신문은 16일 1면 기사에 이어 8면과 9면을 모두 털어 프리랜서 웹툰 작가들의 고단한 삶을 파헤쳤다. 웹툰 산업이 10년 만에 10배나 성장했지만 정작 작가의 수익은 양극화해 작가 대부분이 최저임금도 못 받았다. 플랫폼과 에이전시 양쪽에서 뜯어가는 ‘이중 수수료’ 구조도 문제다. 유통을 책임지는 플랫폼이 마치 공장장처럼 자리를 꿰차고 앉아 불공정 거래를 일삼고 있다.

한겨레는 ‘플랫폼이 뗀 수수료, 에이전시가 또 한 번’이나 ‘하루 10시간 일해도 작가 몫은 매출 10%’, ‘생계 막막한데 … 창작자면 배고픔도 참아라?’ 같은 제목으로 웹툰 작가들의 현실을 드러냈다.

같은 날 중앙일보는 20면에 ‘화장으로 여신 등극, 웹툰 속 얘기 제 경험 아니에요’라는 제목으로 tvN 수목 드라마로 제작 중인 네이버 웹툰 ‘여신강림’의 작가를 인터뷰했다. 중앙일보는 데뷔작으로 곧바로 인기 작가가 된 그를 향해 “작품 속 여주인공과 비슷한 외모가 공개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고 썼다. 또 중앙일보는 “네이버 웹툰 작가의 평균 연 수익은 3억1천만원이고, 톱20 작가 평균 연 수익은 17억5천만원”이라고도 썼다. 중앙일보만 읽으면 웹툰 작가의 삶은 유토피아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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