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네트워크 바람의 장애인노동권담론모임·서울노동권익센터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장애인노동권담론모임 발표회’를 열고 장애인 노동자가 노동현장에서 겪은 차별 실태를 밝히며 장애인노동권 담론과 정책 변화를 촉구했다. <정소희 기자>

장애인 노동자들이 취업준비 과정과 취업 이후에 채용거부·괴롭힘·저임금 같은 차별을 겪는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장애인은 비장애인만큼 (빠르게) 일을 수행할 수 없다”는 관점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장애인노동권담론모임·서울노동권익센터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 강당에서 ‘장애인노동권담론모임 발표회’를 열고 심층면접을 통해 드러난 장애인노동자 차별실태를 발표했다.

담론모임은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에게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하는 최저임금법 7조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연구를 시작했다고 했다. 인권활동가·연구자·장애인당사자 등이 참여했다. 담론모임은 직업·성별·고용형태·장애유형이 다양한 중증장애인 노동자 7명이 연구참여자로 함께한 심층면접 결과를 토대로 ‘장애인노동권 재구성’을 요구했다.

일자리 부족한데, 채용돼도 저임금·해고 위험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노동현장에서 장애인노동자가 겪는 차별 실태를 발표했다. 연구 참여자들은 취업 과정에서 △채용거부 △중증장애인 일자리 부족 △장애인 차별적인 취업시험 △정보 차별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취업 후 일터에서 겪는 어려움도 있었다. 이를테면 △낮은 임금 △비장애인 기준의 업무수행 평가 △괴롭힘 △해고 등이다.

우울증과 간질(뇌전증)을 앓는 정신장애인 A씨는 약을 복용하는 모습을 본 상사가 “거짓말을 했다”며 해고를 통보했다. 청각장애인 B씨는 구직 과정에서 어학시험 듣기평가 점수를 요구받아 이 부분을 제외하고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한 경험도 있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추진연대 부설 상담센터로 제보받은 사례를 공개했다. 비장애인 노동자와 달리 장애인 노동자에게는 휴가를 쓰지 못하게 하거나, 장애를 이유로 업무에서 배제되는 공무원 노동자 사례가 발표됐다. 김 사무국장은 “1년에 1천여건 넘게 상담이 접수되지만 고용 관련 상담은 매우 적은 편”이라며 “제보 당사자들이 문제제기했을 때 회사로부터 해고나 핍박당할 위험이 커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어려워한다”고 밝혔다.

“장애인의 존엄한 삶에서 노동이 가진 의미 크다”

노동권이 온전히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일이 장애인의 삶에서 가지는 의미는 비장애인이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명숙 활동가는 “연구 참여자들은 노동을 통해 자신감·성취감·즐거움 등을 느끼고 건강이 나아진 경험을 하기도 했다”며 “장애인이 인간의 존엄한 삶을 영위하는 데 노동이 큰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고태은 바람 활동가는 장애인 노동자가 경험하는 노동의 의미와 어려움을 발표하며 ‘세계 노동’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장애인 노동자는 ‘세계(사회)에 기여하는 노동’인 세계 노동을 통해 일을 하며 성취한 것을 타인과 나누고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으며 일의 의미를 찾는다는 의미다.

정신장애인 B씨가 인권문화제를 통해 장애인식개선 활동을 하거나, 발달장애인 C씨가 동료지원센터에서 일하며 얻는 만족감이 그 예다.

고태은 활동가는 “장애인 노동자들은 노동현장에서 자기가 겪는 어려움을 장애나 자기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자책해 스스로 일을 그만두기도 한다”며 “일터가 장애인 노동자를 받아들이기 위해 여러 부분을 조정할 수 있음에도 장애인 노동자가 극복해야 할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모든 시민 노동권 강화하며 장애인 특수성 고려해야”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중증장애인이 참여하는 공공일자리 사업을 비교하며 장애인 일자리 사업 취지가 성과에만 초점을 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 사업인 동료지원가 사업은 일을 하지 않는 장애인을 설득해 실적을 내는 성과 중심 일자리다. 반면 서울시가 올해부터 추진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은 “최중증 장애인도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권을 누릴 수 있도록 노동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사업 취지가 설정돼 있다. 이 일자리 사업에는 최중증 장애인과 탈시설 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데, 일자리 참여자는 △장애인 권익옹호 △문화예술 △장애인 인식개선 분야의 비영리기관이나 법인에서 주 14~20시간씩 일한다.

변 국장은 “동료지원가 사업은 규모가 크고 현재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단순히 없애자고 말할 수 없다”며 “실적급제로 진행되던 사업을 월급제로 바꾸는 등 사업 취지를 살리며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박정우 서울노동권익센터 연구위원은 통합적 노동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박 연구위원은 “기존 장애인 노동정책이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분리하는 데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이들을 ‘시민’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생각해 시민의 노동권을 향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장애인의 특수성을 고려할 수 있도록 노동상담·권리구제가 가능한 공인노무사 지원제도 등을 적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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