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30일 필리핀 노동자를 위한 글로벌 행동의 날 포스터. <국제노총>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국제노총)이 11월30일을 필리핀 노동자를 위한 글로벌 행동의 날로 선포했다.

국제노총은 2016년 6월30일 대통령에 취임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정권하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노조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다며 필리핀 정부를 비판했다.

국제노총이 매년 발간하는 ‘글로벌 노동권 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필리핀은 최악의 노동권 나라로 분류된다. 국가가 노조 간부와 노동운동 지도부를 범죄인으로 취급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사회 곳곳에 노조에 대한 차별 행위가 만연해 있다는 게 국제노총의 판단이다. 코로나19로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위협을 받는 가운데, 노조 활동의 자유는 물론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심각하게 공격받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노총이 특별히 관심을 쏟는 사안은 노동운동 활동가들에 대한 공권력의 살인 행위다. 두테르테 정권하에서 무려 46명에 달하는 노조 활동가가 살해당했는데, 피해자의 상당수가 언론 노동자들이다. 언론 자유 지수를 평가한 ‘국경 없는 기자단’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180개 나라 가운데 필리핀은 136위를 차지했다.

지난 7월3일 “테러 행위에 대응한다”는 명분하에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개인이나 집단을 국가의 ‘적’으로 낙인찍어 탄압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반테러법에 두테르테 대통령이 서명했다. 국제 앰네스티는 이 법에서 말하는 테러리즘의 정의가 모호해 인권운동가들에 대한 정부의 공격을 쉽게 만드는 새로운 무기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비판하고 있다. 두테르테 정부의 국가안보기구들이 인권단체와 노조의 정당한 활동을 반테러 범죄로 규정하고 탄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 6월4일 유엔인권고등판무관사무소(OHCHR)는 필리핀에서 국가안보를 이유로 자행되는 공권력의 인권유린 행위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데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두테르테 정권이 출범한 2016년 6월 이후 마약과의 전쟁을 빌미로 8천663명이 죽임을 당했으며, 이에 더해 208명의 인권운동가들이 합당한 법적 절차 없이 살해당했다. 필리핀의 인권 상황이 악화하자 급기야 9월17일에는 유럽연합(EU) 의회가 필리핀의 무역 특혜국 지위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2019년 연차 총회에서 결사의 자유 실태 점검을 위한 고위급 조사단 파견을 결정했으나, 필리핀 정부의 거부로 제대로 된 파견 조사가 아직까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국제노총은 11월30일 필리핀 노동자를 위한 글로벌 행동의 날의 요구로 △노조와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빨갱이-테러리스트” 낙인찍기를 중단하고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처형에 대한 책임을 규명할 것 △반테러법과 관련 규정을 폐지할 것 △국가안보가 아니라 사회보장과 일터의 안전 등 사회안보를 제공할 것 △공공고용 프로그램을 통한 일자리와 소득보호 정책을 펼칠 것 △ILO 고위급 조사단의 입국 조사를 허용할 것 △일터 폭력과 괴롭힘의 철폐를 내용으로 하는 ILO 협약 190호를 비준할 것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필리핀의 인권과 노동권 침해 상황에 대한 무역 제재 조사를 시작할 것을 내세우고 있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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