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경사노위

정부와 공공기관 노동자가 직무급제를 포함한 임금체계 개편에 합의했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도 조속히 도입하기로 했다. 직무급제 도입을 밀어붙인 정부에 제동을 걸고 공공부문 노동자와 정부가 최초로 합의를 내놓았다는 사회적 의미가 크지만,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를 짚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겼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공기관위원회는 지난 18일 ‘공공기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합의’를 하고 25일 오후 발표했다. 공공기관위에 참여한 공공기관 노조 대표와 정부, 공익위원은 △참여형 공공기관 운영 △지속가능한 공공기관 임금제도 △후속 논의에 합의했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국회 건의
객관적 직무가치 반영한 임금체계 개편


우선 참여형 공공기관 운영을 위해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국회에 건의하기로 했다. 도입 이전까지는 공공기관 노사자율 합의에 따라 노동자 대표의 이사회 참관과 의장 허가시 의견 개진이 가능하도록 했다. 노조가 적합한 인사를 추천하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비상임이사에 선임하는 데에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공공기관의 윤리경영·경영투명성 확보에 공동 노력하고 채용비리와 직장내 성범죄, 협력업체 갑질 같은 부정부패와 비위행위를 근절하는 데 협력한다. 정부가 요청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 ‘사회적경제기본법안’ ‘사회적 경제 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특별법안’ 등 사회적경제 관련 3법 제정에도 노동계가 협력하기로 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과제로 지난 19·20대 국회에도 제출됐으나 무산됐다.

공공기관 임금체계는 객관적 직무가치를 임금에 반영하는 체계 개편을 위해 노력하고, 획일적·일방적 방식이 아닌 개별 기관 노사합의를 통해 자율적·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임금피크제 적용 인력운영 등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임금피크제 대상 인력을 활용한 중소·벤처기업 지원활동을 펼친다.

정부와 노조는 내년 중순께 2기 공공기관위를 출범해 임금제도와 관련한 대화를 이어 나가기로 했다. 공공기관위 위원장인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공공부문 노동자와 정부가 경영과 임금 문제에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지속적인 대화를 위한 신뢰를 쌓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임금체계 개편은 부족한 점이 많겠으나 후속 논의를 통해 잘 풀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 “직무급제 도입에 사회적 합의”
노동계 “직무급 포함한 개편 논의 물꼬”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합의는 그간의 논란을 끝맺었다는 의미가 크다.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과제에도 포함돼 도입 기대감이 컸지만 정부 출범 뒤 4년간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진척이 더뎠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조례를 통해 노동이사를 도입했지만 개별 공공기관 노조가 시도한 노동이사 추천은 재계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 합의에 따라 정부도 이견 없이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법 개정에 찬성하면서 국회 논의에도 동력을 얻게 됐다. 법 개정 전까지 노동자 이사회 참관제를 운용하고, 노조추천이사제를 도입하기로 못을 박은 셈이다. 현재 국회에는 김경협·김주영·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과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지배구조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임금체계 개편 방향에는 인식차가 있다. 정부는 독자적으로 추진하던 직무급제 도입을 노동계와 합의 아래 진행한다는 사회적 명분을 얻었다고 자평한다. 공공기관위 참여 노조는 정부가 요구한 직무급제를 포함한 임금체계 개편으로 범위를 넓혔고, 경영평가 등을 통한 획일적인 적용에 제동을 걸었다고 평가한다.

근로자 대표로 참여한 장욱진 금융노조 부위원장은 “합의문의 임금체계는 직무급을 포함해 연공급·역할급·직능급 등 다양한 체계를 다 포함한 것”이라며 “공공기관의 시중 임금체계를 직무급제로 일원화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임금체계 내에 직무급도 한 갈래로 포함시켜 논의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장 부위원장은 “정부는 경영평가를 통해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었다”며 “직무급제의 편입은 공감하되 이를 강제하지 않고 개별 노사의 합의를 통하도록 제동장치를 둔 합의”라고 강조했다.

공공기관위에 참여하지 않은 공공운수노조와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양극화한 임금격차를 해소할 원칙적인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했고, 기업별 임금 격차가 존속할 것으로 우려했다. 공공기관위 초기부터 노동계가 요구한 생애 총액임금 보장도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합의문에 ‘직무 중심 임금체계’라는 표현이 들어가 직무급제 도입에 노동계가 동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우려도 했다. 실제 우해영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장은 “노동계와 직무급제 도입의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공공기관위에 참여한 노조 대표들은 이런 지적에 공감하면서도 후속 대화를 통해 풀어 갈 문제라고 설명했다. 장 부위원장은 “임금체계의 개편이라는 큰 틀의 합의이고, 임금격차나 임금시장의 구조문제 등은 향후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해소해야 할 문제”라며 “게다가 이번 경사노위 공공기관위의 의제 자체가 임금체계 개편이었기 때문에 논의 테이블에 임금격차와 구조를 논하기 어려웠던 제약도 있었던 점을 감안해 달라”고 말했다.

내년 2기 공공기관위 출범 합의
임금격차 의제화, 노동계 역량 시험대


후속논의 채널을 확보했다는 것은 성과다. 공공부문 노조가 정부와의 교섭채널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요구를 전달할 수 있는 구조를 확립했다. 정부는 막판까지 후속논의 채널 합의에 거부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별도 대화채널 마련과 경사노위 연장 가운데 저울질하다 연장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후속논의 의제 설정 등에 임금격차 문제를 비롯한 현안을 올릴 수 있느냐는 노동계 역량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위는 지난해 11월 출범해 지난 21일로 활동을 종료했다. 노동계에서는 여인철 공공노련 사무처장과 김일정 공공연맹 사무처장, 장 부위원장이 참여했다. 정부위원으로는 우해영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장과 고기동 행정안전부 지역경제지원관, 양성필 고용노동부 공공노사정책관이 있다. 이상민 한양대 교수(경영학), 이원희 한경대 교수(행정학), 이종선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부소장이 공익위원으로 참가했다. 이 위원장의 주재로 12차례 전체회의를 열고, 임금체계 개편 관련 세미나 등을 별도로 개최하는 등 1년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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