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1일이면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목숨을 잃은 김용균 노동자 2주기다. 그새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됐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가시화했지만 우리는 작은 사업장일수록 산재에 취약하다는 비극을 여전히 목격하고 있다. 오늘 목재 가공공장에서 숨진 청년노동자 김재순을 보고, 내일 다른 김재순들의 사고를 접할 것이다. 12월7일 작은 사업장 노동자에게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주자는 취지로 노동자 건강권 단체와 활동가들이 워크숍을 연다. 이들의 제안을 네 차례에 걸쳐 들어본다.<편집자>

▲ 정우준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2017년 노동건강연대는 삼성과 LG 하청업체에서 핸드폰을 만들다 실명한 일곱 번째 노동자의 ‘발견’을 기자회견으로 알렸다. 알려진 것만 6명이던 2015~2016년 청년 파견노동자 실명사고보다 1년 앞선 2014년 3월, 같은 일을 하다 메탄올로 실명한 노동자가 뒤늦게 발견됐다. 기자회견에서 메탄올 실명 노동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시력을 잃었을 추가 피해자를 찾아 주세요” “제가 위험하게 일을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라는 피켓을 들었다. 피켓을 든 노동자는 실명 뒤 1년8개월이 지나서야 자신이 일할 때 사용한 메탄올이 실명의 이유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옆에는 8개월 만에 사실을 안 노동자가 서 있었다. “메탄올 실명 피해자 추가 발견”으로 시작되는 기자회견 제목처럼 실명이라는 큰 사고를 당했지만 그들은 방치됐고, 2년이 다 돼서야 발견됐고, 스스로가 또 다른 피해자를 찾아내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들은 문제가 지적됐지만 개선되지 않았던 ‘작은 회사’ 노동자였고, 4대 보험은커녕 회사에서 일했던 사실조차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 (불법)파견노동자였다.

메탄올로 인한 파견노동자 집단 실명사고는 국가 제도가 작은 하청업체, 파견노동자들을 배제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사고가 알려진 후 고용노동부는 메탄올 사용 회사들을 전수 점검했지만 같은 회사에서 또 다른 실명 노동자가 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고, 같은 회사에서 앞서 나온 피해자들을 찾아내지 못했다. 횡행하는 불법파견에 노출된, 4대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노동자들에게 국가 제도는 있으나 마나 했다.

국가의 무능력 속에 그들은 ‘발견’돼야 했고, 스스로 발견해야 했다. 가장 먼저 알려진 피해자는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고, 메탄올로 인해 실명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살아갈 노동자를 찾고자 TV에 출연해 사건을 알렸다. 국가가 역할을 못 하는 사이 당사자의 노력이 ‘필연적인 우연’을 만들어 냈다. 방송을 본 간호사가 트위터로 피해 노동자 소식을 알렸고, 뉴스를 본 친척, 노무사에게 상담받던 친척 등을 통해 피해자들이 만날 수 있었다. 피해자를 찾기 힘들 정도로 작은 회사의 노동환경은 안갯속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본인의 실명이 무엇 때문인지도 모를 노동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고 이후에도 작은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상황은 여전하다. 작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어떤 물질을 쓰는지 알지도 못한 채, 그것을 물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 상황에서 일한다. 그 결과 2017년 소화기를 만들던 20대 노동자는 소화약제에 중독돼 숨지고, 2018년에는 도금업체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 시안화수소에 중독돼 사망했다. 중독만이 아니다. 직원이 채 10명도 되지 않는 조선우드에서 일하던 김재순은 지난 5월 파쇄기에 끼여 사망했다. 지난해 전체 산재사망자의 61%, 전체 재해자의 77%가 50명 미만 회사에서 발생했다. 정부의 계속되는 방치 속에 작은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 건강권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또 메탄올 사고가 났다면서요?”라며 다급한 목소리로 온 전화를 받았다. 메탄올 피해자 중 한 분의 전화였다. 코로나19 속 메탄올로 소독을 하다 병원에 실려 간 해프닝성 뉴스에 가장 민감하고 민첩했던 이는 열흘 넘게 그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던 안전보건공단도, 노동부도 아니라 자신과 같은 피해를 입었을까 노심초사했던 메탄올 피해 당사자였다. 전화를 끊은 후 우리는 메탄올 사고와 같은 사고를 막을 수 있을까, 사고가 났을 때 다시 대응할 수 있을까를 되물었다.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젠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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