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단 중대재해로 산재 예방에 대한 관심이 높다. 산재를 줄이기 위해서는 법·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법과 제도를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소속 전문가들의 제안을 연속 게재한다.<편집자>

 
이영순 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공동대표(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이영순 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공동대표(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정부를 비롯한 안전보건 관련 기관·기업 등의 총체적인 산재예방 노력에도 올해 4월 이천 물류창고 지하공사장 화재사고(38명 사망, 10명 부상)나 8월 레바논 베이루트 항구 질산암모늄 창고 폭발사고(135명 사망, 5천명 부상)와 같은 끔찍한 소식이 그치지 않는다. 왜 이러한 사고가 예방되지 않는 것일까.

화재는 유류·가스와 같은 인화성 물질이 연소 분위기(농도)에서 불씨와 만나야 발생한다. 화재를 막으려면 화재 발생 원리와 연소 분위기가 어떻게 조성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사업장을 운영·관리하거나 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은 어떤 물질이 어느 조건에서 화재를 일으킬 수 있고, 무엇이 불씨로 작용하며, 이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잘 모른다. 이러한 사항은 난해한 기술이 많고 안전관리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안전은 사용하는 기계설비·방호장치의 건전성이나 안전성뿐만 아니라, 이들 설비를 운용하는 인간의 정신·심리적인 행동특성, 주변 환경, 경영여건 같은 종합적인 상황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안전보건 문제는 단순한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이뤄지는 총체적인 경영활동의 문제다. 따라서 안전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업장에서 수행하는 작업과 그 주변에 어떤 위험이 있고,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며, 이에 대한 대책이 무엇인지를 소상하게 알아야 한다.

최근에는 이런 문제 해소에 인공지능(AI)·빅데이터 같은 첨단기술을 활용한다. 문자나 음성으로 인간과의 대화를 통해 특정 작업수행에 도움을 주도록 제작된 챗봇이나, 히어러블 어드바이저(hear+wearable+AI adviser 합성어)가 활용된다. 안전 챗봇은 스마트폰이나 AI 스피커에 탑재해 사전에 작업을 수행할 때 있을 수 있는 위험요인이나 위험 해소 방안, 준수해야 할 법규나 안전수칙 등을 질문해 그 해법을 안내받는 전문조언자로 활용된다. 히어러블 어드바이저는 블루투스 이어폰에 AI스피커 기능을 더한 것으로, 듣고 말하는 형식으로 전문적인 조언을 받아 안전작업 수행에 이용된다. 이 외에도 AI·사물인터넷(IoT)·센서·로봇·드론 기술을 활용해 위험물질 누출이나 기계의 결함을 파악하고, 때로는 이를 스스로 진단해 처치하기도 한다. 다만 이러한 기술은 개발·활용에 비용이 들고, 관련 지식이나 경험 부족으로 아직은 그 사용이 제한적이다. 연구 개발·보급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는 위험하거나 위급한 상황에 이르면 이를 회피하거나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위급한 상황에서는 당황해 대응을 못하기 쉽다. 다만 인간은 익숙해진 상황에는 주저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특성이 있다. 얼마 전, 어느 공동주택 외부에서 불이나 주택화재로 확산할 즈음, 그 옆을 지나던 소방관이 주변 약국에서 비상소화기를 가져와 화재를 진압했다는 방송을 들었다. 소방관의 재치 있는 활동이 막대한 피해를 가져올 뻔한 주택화재를 막은 것이다. 소방관의 행동은 소화활동에 익숙해져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사업장에서는 예기치 못한 위급상황이 발생하기 쉽다. 따라서 그 구성원들은 이러한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 이러한 능력은 경험이나 훈련에 의해 길러진다. 이들 훈련은 AR(증강현실)을 이용한 실습이 효과적이다. 생산 공정·작업별로 정교한 AR교육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안전보건은 기업경영에 당장 영향을 주는 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기업에 치명상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사업장의 모든 업무에는 항상 위험이 내재돼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 위험파악과 위험의 사고전이 과정을 분석해 그에 합당한 대책을 소상히 알고, 이를 익숙해지도록 한 후 본연의 업무를 수행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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