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숙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올해 9월22일 오전 9시, 10만명의 국민동의 청원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됐다. 2004년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필요성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했으나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렇기에 15년이 흐른 지금, 노동자·시민의 직접행동으로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법사위에 상정된 지 한 달 보름이 지난 현재, 고용노동부와 더불어민주당의 행보는 어떠한가. 그동안 국회 연설을 비롯해 수차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필요하다던 이낙연 대표의 약속과는 다르게, 더불어민주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입장 표명을 미루면서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그러더니 결국 지난 16일 장철민 의원은 마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대안처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발의 계획을 밝혔다.

‘대표이사의 산업재해에 대한 예방책임 강화, 벌금 하한형, 다수 사망재해 가중처벌 및 과징금 부과로 산재 예방책임 강화’를 개정안 취지로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 개정안은 그러한 취지를 제대로 실현하기엔 너무나 부족하며, 심지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많은 언론과 노동계·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에서 개정안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했기에, 한 두 가지 문제만을 더 언급하겠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2조는 ‘중대재해의 범위’를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발생한 재해 △부상자 또는 직업성 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재해로 규정하고 있다.

대표발의안 보도자료에는 ‘중대재해시 100억원 과징금 부과’로 돼 있어,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1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처럼 표현됐다. 하지만 과징금 부과기준은 동시에 3명 이상의 노동자가 사망하거나, 1년 동안 3명 이상의 노동자가 사망한 사업장에만 해당한다. 그것도 100억원 이하(‘이상’도 아니고)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고 한다. 과징금 부과기준으로 정한 3명 이상 사망이라는 기준이 어떠한 근거로 정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현행법에서 규정한 중대재해 정의조차 협소하게 만든다.

또한 과징금 부과 여부와 과징금 규모의 적정성을 심의하기 위해 과징금 부과위원회를 구성하고, 구성과 운영 등에 필요한 사항은 시행령에서 정한다고 한다. 과징금 부과위원회 구성과 운영안이 어떻게 만들어질지 봐야겠으나, 하한기준도 없는 과징금에 대해서 기업의 책임을 얼마나 제대로 물을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스럽다.

16일 개정안 발표이후 반대여론이 빗발치자 장철민 의원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대체하는 법이 아니며, 두 법은 모순되는 내용이 아니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해명했다. 장 의원의 해명처럼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대체안이 아니기를 제발 바란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도 장철민 의원 해명처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당론이 아님을 명확하게 입장표명해야 한다.

물론 여전히 한계가 많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도 중요하다. 법 1조 목적처럼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안전 및 보건 유지·증진을 목적으로 한다’에 부합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개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루 6명의 노동자가 퇴근하지 못하고 있는 참혹한 현실을 지금 당장 바꾸기 위해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 중대재해와 사회적 참사 원인 제공자를 제대로 처벌해야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당론으로 채택해 하루바삐 법 제정에 힘을 쏟는 일이다.

이미 국민의힘에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21대 국회는 초당적 협력으로 국민의 엄정한 명령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즉각 처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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