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얼마 전 한 노동자의 사진이 여론을 뜨겁게 만들었다.

사진 속 노동자들은 얼굴을 비롯해 전신에 시커먼 분진을 뒤집어쓰고 있다. 작업장 전체에 분진이 눈송이처럼 흩날리고 있고, 마스크는 분진을 막기엔 애초부터 불량품이라 마스크로 가린 입 주변도 시커멓긴 마찬가지다. 마치 70년대 탄광처럼 보이는 이 작업장은 놀랍게도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이었다. 현대차 전주공장 집진 설비장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2018년부터 노동조건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한다. 임금이 삭감됐을 뿐 아니라 통근버스를 탈 수도 없다. 심지어 마스크마저 싸구려 불량품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사진을 보고 충격 다음으로 내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은 ‘어떻게 이제서야 이런 실태가 알려졌는가?’였다. 글로벌 대기업에다 보수언론이 입만 열면 물어뜯는 ‘강성노조’가 존재하는 현대차인데 말이다. 얼굴 전체가 새까매진 노동자들이 매일 공장을 출입하는 기괴한 모습이 눈에 띄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실태가 알려진 것은 이 노동자들이 지난 9일부터 하루 7시간50분씩 파업을 진행하면서부터다.

사실 비정규 노동자들이 겪는 차별과 인권침해는 이들이 노조에 가입하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는 일’이 흔하다. 청소노동자들은 옷을 갈아입거나 도시락을 먹을 휴게공간이 없어 화장실 구석에서 잠깐 쉴 수밖에 없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노조에 가입해서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고 외치며 최소한의 인권이 존중되는 일터를 위해 싸웠다. 원청이 휴게공간을 제공하도록 산업안전보건법도 개정시켰다. 수십 년간 노동법을 안 지키는 게 정상인 듯 운영됐던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노조로 뭉쳐 싸워서 일요일 휴무, 1일 8시간 노동제 준수, 임금체불 없는 현장을 만들어 왔다.

‘노동자’라는 이름마저 빼앗긴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택배노동자들이 무급 분류작업까지 떠안으며 하루 14시간 이상 중노동에 죽어 간다는 현실도, 플랫폼 배달노동자들이 알고리즘을 통한 살인적 업무지시와 통제에 시달리며 목숨을 걸고 일하는 현실도, 이들이 노조로 뭉치면서 알려졌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를 비롯해 가전 설치·수리 노동자들이 원청으로부터 분 단위 업무지시에서부터 두발·복장까지 통제받는 불법파견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도 노조 결성을 통해 알려졌다.

노조로 뭉쳐 목소리를 내기 전 이들의 노동은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이다. 우리는 매 순간 클릭 한 번으로도 이들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지만, 이들의 노동은 우리 사회가 매끄럽게 굴러가는 데 필수적 노동이지만, 이들의 노동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노조라는 확성기를 통하지 않고서는.

오죽하면 코로나19 위기로 정부가 이들 중 일부 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에게 긴급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고서도 지원금을 받을 대상자를 선별하지 못해 일선에서 애를 먹었을까. 누가 지원금을 받아야 할 특수고용 노동자인지 선정하는 일도, 이들의 소득 감소를 증빙하는 일도, 결국 당사자들을 조직한 노조가 개입해 해결책을 제시했다. 정부가 긴급지원금 신청을 위해 요구한 ‘노무제공계약서’ ‘노무 미제공확인서’ 등은 고사하고 하루아침에 일감이 끊긴 비정규직·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조를 통해 마스크를 지원받고 복잡한 긴급지원금 신청 절차에 관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 정부와 국회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 대책, 특수고용직 고용보험 적용,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보험 특례 규정 개선 같은 입법 이슈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중요성이 대두된 필수노동자 보호대책 마련에도 나선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침묵하고 있는 지점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근로자’와 ‘사용자’를 노동현실에 맞게 확대해 노조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일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결사의 자유, 즉 노동 3권을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가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 권리이자, ‘다른 권리를 실현되도록 하는 권리’(enabling right)라고 부른다. 노동 3권을 보장해야 차별이 드러나고 위험을 예방하고 노동법이 현장에서 지켜지도록 할 수 있다. 정부와 국회는 노조법 2조 개정 요구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labor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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