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국토부의 화물차 적재함 지지대 단속 유예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화물연대본부>

국토교통부가 안전조치를 취한 경우 탈·부착식 판스프링(충격 흡수용 지지대) 단속을 유예하기로 하면서 ‘판스프링 논란’이 일단락된 모양새다.

18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본부장 직무대행 천춘배)에 따르면 본부는 탈·부착이 아예 불가한 기존 방식 대신 주행 중 떨어지지 않도록 볼트로 고정하는 방안 등을 제안하고 정부와 논의할 예정이다. 국토부·한국교통안전공단이 새로운 개조(튜닝) 기준을 마련하면 해당 기준에 맞춰 1월31일까지 화물차 개조를 완료하면 된다. 이 같은 조치가 완료되면 판스프링 낙하로 인한 사고는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번 조처로 안전해졌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버스·택시·화물차 등 사업용 자동차 교통사고 사망자는 2015년 904명에서 지난해 633명으로 줄었지만, 이 중 화물차 사고는 5년 전 대비 불과 3.2% 감소했다. 도로 위 안전을 위해 근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 불안정한 적재 상태 해결해야”

최근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도로공사에서 받은 고속도로 낙하물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차량 낙하물로 인한 사고는 217건으로 이 중 판스프링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는 5건이다. 판스프링 문제가 해결돼도 끝난 게 아니라는 의미다.

해결책은 없을까. 화물노동자는 인명피해를 낳은 판스프링을 ‘안전 운행을 위한 도구’라고 주장했다. 모순돼 보이는 주장 배경에는 애초 ‘불안정한 적재 상태’가 있다. 콘크리트 파일이나 연강선재 같은 원통 형태의 중량물은 카고트럭이나 트레일러처럼 옆면이 뚫려 있는 화물차에 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콘크리트 파일의 경우 길이 5~15미터, 지름 400~800밀리미터까지 제품 규격과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구르지 않도록 고정틀을 활용해야 한다. 대부분 화물은 날것 그대로 옮겨진다. 화물을 안전하게 적재할 책임이 화주나 운송사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화물 적재의 책임은 화물노동자가 오롯이 짊어지고 있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 11조20항은 “운송사업자는 적재된 화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덮개·포장·고정장치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화물노동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이대근 화물연대본부 대외협력국장은 “화물을 고정하거나 덮개를 씌우거나 하는 것은 화물노동자가 해야 하지만 안전한 상태로 포장되지 않은 채 운송의뢰가 들어오는 것이 문제”라며 “콘크리트 파일 같은 경우도 (화주가) 생산된 형태 그대로 운송을 의뢰한다”고 말했다. 이대근 국장은 “화주가 안전한 상태로 운송을 의뢰하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9월10일 한국서부발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화물차노동자가 스크루컨베이어에 깔려 숨진 사고도 스크루를 개별 포장 없이 적재해 발생했다. 원청인 서부발전은 사고 한 달 전 ‘시방서’를 통해 스크루 운반공정 때 지켜야 할 내용을 기재했는데, 이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원청은 당시 “정비를 마친 스크루가 손상되지 않도록 명시한 내용”이라는 입장을 냈다.

화주사들이 물품 손상을 방지할 때만 안전에 신경을 쓰지, 노동자들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다는 비판을 사는 이유다. 30년차 화물차기사 김수영(가명)씨는 “(화주사가) 수출할 때처럼 포장하는 방식으로만 해도 화물노동자에게 이득인데 물류비가 엄청나게 들다 보니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폐쇄형 적재함 형태로 모든 화물차를 변경하기도 어렵다.

▲ 화물연대본부


“과적 단속은 지지부진”

수열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국토부는 오픈형 카고를 없애고 탑차(택배차량으로 흔히 이용되는 1톤 화물차)처럼 화물칸을 박스(폐쇄형 적재함) 형태로 만들겠다는 입장”이라며 “물품 종류에 따라 박스 안에 넣기 어려운 물품도 있고, 박스 안에 넣는다고 해도 고정이 안 될 경우 더 위험할 수 있어, 여러 고민이 필요한데 그런 고민은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화물노동자가 자신이 주로 싣는 화물 특성에 맞게 차량을 개조하기도 쉽지 않다. 수천 만원이 들 수도 있는데 특수고용직인 화물노동자는 일감이 적어지면 언제든 다른 화주가 맡기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위험을 키우는 과적 단속도 지지부진하다. 이대근 국장은 “도로에서 안전을 지키려면 적재중량을 위반한 과적차량 단속을 해야 한다”며 “그런데 현재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날 때 도로법상 총중량 40톤 위반만 단속이 된다”고 꼬집었다. 40톤이 안 되는 차량은 적재중량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도로관리청은 도로법 시행령 79조에 따라 총하중 10톤을 초과하거나 총중량이 40톤을 초과하는 차량 운행을 제한한다. 40톤 미만은 경찰청이 도로교통법 시행령에 따라 단속한다. 화물자동차 적재중량 110퍼센트가 넘는 화물차 대상이다.

이 국장은 “경찰이 적재중량 위반단속을 해야 하는데, 장비가 없어 못한다”며 “국토부랑 경찰이 협의해서 하면 되는건데, 수년째 요구해도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열 정책국장은 “도로 안전을 더 강화하는 방안으로 가는 것은 맞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확 몰리는 곳에 땜질 처방을 하고 있다”면 “근본적으로 과적을 막고 화주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오늘은 판스프링이지만, 내일은 다른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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