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잡고와 민주노총이 11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2020 노동자 손배가압류 현황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회사가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소송 대상이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 노동자들로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와 민주노총은 11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손잡고는 이날 사용자와 국가가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손배·가압류 현황을 공개했다.

2020년 이날 기준 사업장 23곳(국가 포함)에서 58건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집계됐다. 누적 청구금액은 658억1천여만원이고, 가압류 금액은 18억1천여만원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공식 집계다. 손잡고는 2017년 6월28일 기준 사업장 24곳에서 65건, 1천867억원 규모의 손배 소송이 제기됐다고 밝힌 바 있다.

택배노동자·톨게이트 수납원 손배 소송 시달려

누적 청구금액 규모 자체는 줄었지만 오히려 범위가 비정규직·특수고용직처럼 취약한 노동자로 확대됐다. 손잡고는 손배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도 교묘해졌다고 했다.

울산의 택배노동자들이 2018년 7월 CJ대한통운의 ‘물량 빼돌리기’에 항의하자 회사는 업무방해로 손배를 청구했다. 톨게이트 수납원 노동자들의 경우 대법원 판결에 따라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지난해 한국도로공사 김천 본사에서 점거농성을 했는데 공사는 현관문·화분·집기 등을 훼손했다며 손배 소송을 냈다. 일진다이아몬드 노동자들은 일진그룹 본사가 위치한 일진디앤코 건물 입주민 146명에게 쟁의행위시 소음 발생 등을 이유로 손배 소송을 당했다.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소송 대상의 범위가 정규직에서 비정규직과 특수고용 노동자로 넓어졌다”며 “일진다이아몬드 사례처럼 쟁의행위에 따른 업무방해·영업손실뿐만 아니라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까지 하는 등 이유도 다양해졌다”고 지적했다.

손잡고는 이날 기자회견 이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 관계자에게 △정부 차원의 손배 청구 사건 실태조사와 해결 △노동탄압 목적으로 악용되는 손배·가압류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 △국가가 청구한 손배 소송 즉각 철회 △피해 노동자 생존권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 같은 내용을 담은 대정부 요구안을 전달했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도 권고했는데

이날 오후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손배·가압류로 피해를 받은 노동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노동자들은 손배·가압류가 노조 무력화와 노동 3권 침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손잡고는 “문재인 정부는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를 비롯해 각 정부부처에 적폐청산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했고, 2~3년간 조사활동도 진행했다”며 “이 과정에서 노조무력화 시도나 국가폭력 등 진상규명이 이뤄졌지만 손배 소송 처리에는 진전이 없다”고 밝혔다.

쌍용자동차 사례가 대표적이다.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는 2018년 쌍용차 진압 당시 국가폭력을 인정하며 경찰이 제기한 손배사건에 대해 소송 취하를 권고했다. 권고가 발표된 이후 경찰은 가압류를 해제했지만 손배 청구는 철회하지 않았다. 지난 7월 김창룡 경찰청장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회사와 국가가 낸 손배 소송에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청구금액은 100억원을 훌쩍 넘는 상황이다.

김정욱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은 “10년 만에 어렵게 공장으로 복귀해서 일상을 회복했는데, 다시 (손배·가압류로 일상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이 힘들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으로 부르는, 무분별한 손배 소송을 막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은 19대·20대 국회에서 잇따라 발의됐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쟁의행위를 비롯한 노조활동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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