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지연 변호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대법원 2020. 10. 15. 선고 2019두40345 판결 부당징계구제재심판정취소

1. 사건의 개요

철도노조는 2013년 임금 및 현안 교섭이 결렬되자 조정신청을 해 2013년 11월27일 조정중지결정을 받았다.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막판 조정을 앞둔 같은 해 11월20일 실시했다. 이후 노조는 2013년 12월9일부터 같은달 31일까지 ‘수서발 KTX 분리설립(이른바 철도민영화)’과 관련된 1차 파업을 진행했고, 2014년 2월25일 임금협약 체결 등을 목적으로 2차 파업을 했다. 철도공사는 지도부를 형사고발하는 한편, 대규모 징계를 단행했다. 위 형사사건과 징계사건에서 쟁의행위의 정당성이 여러 측면에서 다뤄졌는데, 특히 절차의 정당성과 관련해 쟁의행위 찬반투표 실시 시기가 쟁점이 됐다.

2. 쟁점 및 경과

검찰과 공사 측은 “쟁의행위에 대한 조합원의 찬반투표는 … 노동쟁의의 상태에 이르러야 할뿐만 아니라 조정절차에서 노동위원회로부터 조정안이 제시됐을 경우 그 조정안을 수용할지 여부에 관한 조합원의 의사 역시 반영돼야 함에 비춰 조정절차까지 거친 후 쟁의행위에 돌입하기 직전에 실시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대법원 2001. 9. 14. 선고 2001도53 판결을 근거로, 조정절차 종료 전 찬반투표를 실시한 것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조측 변호인은 다음과 같이 주장을 전개했다.

먼저 2001도53 판결은 찬반투표 실시 시점에서는 단체협약 갱신안에 대한 심의가 시작되던 단계에 불과해 노동쟁의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려웠는데도 사용자측에 심리적 압박을 가하기 위해 실시된 찬반투표로는 절차적 요건을 구비한 것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관리자가 파업참가를 만류했다고 하더라도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사안이었다. 즉, 위 사건은 부당노동행위 사안이어서 형사책임을 묻기 위한 엄격한 해석이 필요했다는 특수성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법원이 절차적 위법성을 인정한 주된 근거는 ‘찬반투표 당시 아예 노동쟁의(=근로조건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음에도 위 판결의 논지를 무제한적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둘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쟁의행위를 함에 있어 조합원 찬반투표와 조정 절차를 거칠 것을 규정하고 있을 뿐 양자 사이의 선후관계는 물론 찬반투표의 실시시기에 관해 어떠한 명문의 규정도 두고 있지 않다. 오히려 쟁의행위를 개시한 이후에도 당사자의 신청에 의해 조정절차를 개시하는 것(사후조정)이 가능하다. 따라서, 사후적으로 사법기관이 자의적으로 법 문언에도 없는 추가적인 요건을 추출해 민·형사책임과 징계책임을 확장할 수 없고, 죄형법정주의에도 반한다.

무엇보다도 조합원 찬반투표는 조합원들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노조의 내부적 장치로서 찬반투표 시기는 노조가 자주적으로 결정할 사항이고, 조정전치 절차는 분쟁을 사전 조정해 쟁의행위 회피 기회를 주려는 데에 있는 것이지 쟁의행위 자체를 금지하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쟁점은 형사사건에서 먼저 다뤄졌는데, 지도부 형사 항소심은 검사 주장을 배척했다. 대법원은 “원심 이유 설시에 일부 적절하지 아니한 부분이 있으나, 이 사건 파업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평가하기에 부족하므로 …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정당”하다고만 설시했다. 위 쟁점에 관해서는 명시적으로 판시하지 않았다(서울고등법원 2016. 1. 15. 선고 2015노191 판결, 대법원 2017. 2. 3. 선고 2016도1690 판결).

이후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간부들에 대한 형사사건에서 1심은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결하면서도, 2001도53 판결의 판시를 인용하며 “찬반투표는 조정절차를 거치기 전에 실시한 것으로서 부적법하고, 이 사건 파업 역시 정당한 쟁의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서울서부지법 2017. 8. 25. 선고 2014고단555, 2148판결). 결국 하급심이 엇갈린 채로 2차 파업에 관한 징계의 정당성을 다투는 행정소송에서 위 쟁점을 최종적으로 다투게 됐다.

3. 대상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근거를 제시하면서 “노동쟁의 상태에 이른 이후에 이뤄진 조합원 찬반투표가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절차가 끝나기 전에 실시됐다는 사정만으로는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첫째, 노조법은 조합원의 찬반투표를 거쳐 쟁의행위를 하도록 제한하고 있을 뿐(41조1항) 조합원 찬반투표의 실시 시기를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노조는 근로자들이 스스로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국가와 사용자에 대항해 자주적으로 단결한 조직이어서 국가나 사용자 등으로부터 자주성을 보장받아야 하므로{헌법재판소 2015. 5. 28. 선고 2013헌마671, 2014헌가21(병합) 결정 등}, 쟁의행위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의 실시 시기도 법률로써 제한돼 있다는 등의 사정이 없는 한 노조가 자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헌법상 노동 3권 보장의 취지에 부합한다.

둘째, 쟁의행위에 대한 조정전치를 정하고 있는 노조법 45조의 규정 취지는 분쟁을 사전 조정해 쟁의행위 발생을 회피하는 기회를 주려는 데에 있는 것이지 쟁의행위 자체를 금지하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쟁의행위가 조정전치의 규정에 따른 절차를 거치지 않았더라도 무조건 정당성을 결여한 쟁의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2000. 10. 13. 선고 99도4812 판결 등 참조). 이러한 노조법 45조의 규정 내용과 취지에 비춰 봐도, 쟁의행위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 당시 노동쟁의 조정절차를 거쳤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할 것은 아니다.

4.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노조가 요구사항과 교섭대상을 확정해 조정신청을 했다면, 조정기간 중이라도 조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미리 찬반투표를 하는 것도 허용된다고 명시적으로 밝힘으로써 그간의 논란을 해소했을 뿐만 아니라, 단체행동권의 본질을 재확인하고 쟁의행위 정당성에 관한 법률의 해석 원칙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쟁의행위는 노조가 사용자에 대항해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고, 조합원 찬반투표는 그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의사를 집약해 교섭력을 끌어올리는 과정이다. 따라서, 찬반투표의 실시 시기는 역동적이고 유동적인 주변 정세의 변화, 사용자의 태도 및 효과적으로 조합원들의 열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전략적 시기 등을 고려해 자주적 단결체인 노조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국가’와 ‘사용자’로부터의 자주성이야말로 단체행동권의 핵심이다.

헌법상 노동 3권은 법률로써만 제한이 가능하고, 법률의 명문 규정 없이 함부로 제한을 부과함으로써 단체행동권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 특히 쟁의행위에 관한 절차 등은 당사자 사이의 자주적 해결에 조력하도록 하는 입법정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제도일 뿐 쟁의행위에 대한 제한을 목적으로 설정된 제도가 아니므로, 이를 들어 오히려 파업을 불법화하는 것은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는 것이다. ILO가 밝혔듯 파업을 위한 절차가 파업을 불가능하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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