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전태일과 나, 청년활동가
② 살아 있는 전태일의 오늘
③ 시다, 2020년 노동자

스물두 살 청년은 보았다. 평화시장에는 골방에서 하루 14시간 넘게 일해도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일당 50원을 받는 여공들이 있었다. 배운 적 없지만 무언가 잘못됐다고 직감했다. 뜻이 맞는 친구들을 모아 청계천 피복공장 노동자들의 노동실태를 조사했고 언론사에 알렸다. 한자가 가득한 근로기준법을 밤낮 가리지 않고 읽었다.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현실의 장벽은 두터웠다. 청년은 제 몸에 불을 붙였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죽어 가며 외쳤다.

2020년 전태일 열사의 뜻을 이어 받은 청년활동가들은 50년이 지났지만 아직 완성되지 못한 열사의 꿈을 이루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전태일이 사랑했던 노동자이면서, 전태일이 간절히 원했던 대학생 친구이기도 한 청년노동활동가는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며 살아갈까. 앞으로 노동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매일노동뉴스>가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2020년 청년활동가의 목소리를 들어 봤다.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 모임방에 20·30대 청년 활동가 네 명이 한 자리에 마주 앉았다. 2013년 맥도날드 알바를 하다 처음 노동운동에 뛰어든 이가현(27) 관악구노동복지센터 조직팀장, 대학원에서 사회복지정책을 공부하다 우연한 기회로 한국노총에 발을 들이게 됐다는 이효원(31) 금속노련 홍보차장, 언론노조에서 희망연대노조까지 비정규직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이어 온 이만재(33) 희망연대노조 정책국장, 참세상 기자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최근에는 민주노총 선전홍보부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성지훈(34)씨가 주인공이다. 김미영 <매일노동뉴스> 노동사회팀장이 좌담회 사회를 봤다.


“어쩌다 노동운동에 뛰어들다”

사회 : 언제·어떻게 노동운동을 하게 됐나요. 활동가가 되기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해요.

이가현 : 고등학교 때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었어요.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인생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느껴서예요. 부모님이 오랜 시간 일했는데, 일하고 온 뒤 집에서도 일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 이가현 관악구노동복지센터 조직팀장

대학생 때인 2013년 알바노조 활동을 하면서 노동운동에 발을 들였어요. 주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알바하는데 근로계약서도 안 쓴다고 하더라고요. 맥도날드 같은 글로벌 대기업은 좀 더 나을 거라고 막연히 기대하고 지원했죠. 그런데 그 안에도 불합리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사실, 알바야 다들 최저임금 받으니 그만두고 다른 데 가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혼자만 힘들어하는 것 말고, 함께 어려운 환경을 해결해 보자는 (알바노조) 이야기에 동감해 노조활동을 시작했어요.

이만재 : 대학교 다닐 때 학생운동을 했어요. 졸업하는 시기가 되면 다들 고민하잖아요. 취업을 준비하거나, 시험을 준비하거나, 저는 활동가가 되고 싶었는데 사실 당시에 노조 말고 선택지가 많지 않았어요.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요. 언론노조에서 바로 일을 시작했고, 주로 방송산업 비정규사업을 담당했어요. 지금은 희망연대노조에서 정책국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방송·통신·콜센터업종 노동자들이 많아요. 대부분 간접고용·특수고용 비정규 노동자였는데, 이후 노조활동을 통해 고용형태가 개선된 분들도 많습니다.

성지훈 : 어려서부터 TV나 영화를 보면 기자가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신문방송학과에 가서 기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학생운동도 했었고, 내 운동 가치와 직업으로서 가치를 절충하면서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참세상 기자로 일했고요. 이후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옥천신문·철강전문지 여기저기 전전하다 지금은 민주노총 선전홍보 업무를 하고 있어요.

이효원 : 저는 활동 이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했어요. 노동운동가(활동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게 맞나 싶어 좌담회를 고사할까도 고민했죠.

대학교 때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는데, 공부가 좋아서 대학원에 갔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주변 친구들이 취직하는 것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공포심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해요. 이후 한국노총에 들어가 건강보험 관련 사업을 했어요. 건강보험은 전 국민이 혜택을 받는 제도인데, 정작 저는 우리 조합원들의 생각을 들을 길이 많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현장과 가까운 금속노련에서 현재는 일하고 있어요.

“저는 민주노총이란
회사에 다니는 직원이에요”


사회 : 내가 활동가인가 고민을 하신 분들도 있는 것 같네요. 활동가에 대한 각자 생각이 궁금해요.

이가현 : “오늘부터 나는 활동가다” 이렇게 무 자르듯이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남이 규정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 스스로가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을 하면 활동가라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활동가와 노동자 사이 정체성을 더 고민해요. 사실 노동자인 게 당연한 건데, 옛날에는 노동자 하면 신념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내 노동에서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 삶을 낫게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빨리 퇴근하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아야 다른 사람에게도 가족의 소중함을 말할 수 있는 거고요.

성지훈 : 활동가라는 말 자체가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말이 있으니 자꾸 그것을 규정하려고 하는 건데, 저는 그냥 민주노총이란 회사에 다니는 직원이에요. 이 회사의 일이 운동이 잘 되게 하는 거고, 제가 열심히 일하면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게 되는 거고요. 쉬운 문제라고 생각해요.

최근 민주노총 팝업스토어 사업을 하면서 여러 사람과 인터뷰를 했는데 어떤 분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세상에 어떤 일이 자아실현은 ‘0’이고, 월급만 ‘100’이겠냐. 또 어떤 일이 자아실현은 ‘100’이고, 월급만 ‘0’이겠냐. 다 중간 어디쯤에서 늘 왔다 갔다 하는 것”이라고요.

그분 말처럼 사람은 늘 변동하는 것이라서 활동가의 정체성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 이효원 금속노련 홍보차장

이효원 : 지금도 내가 활동가일까 아닐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활동가는 최소한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지 그런 방향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자기신념이 될 수도 있고, 집단신념일 수도 있겠지만, 자기가 정의한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가도록 하는 사람들이 활동가 아닐까 생각해요.

“청년활동가, 공동체는 없고 각자도생”

사회 : 취재하면서 만난 활동가들을 보면 참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헌신’이 바탕이 되니까요. 어떻게 보면 적당히 일하고, 자기 삶을 누리고 싶어 하는 요즘 세대와는 맞지 않은 가치관 같기도 하고요.

이가현 : 신념이 현실을 이기는 기간은 별로 길지 않다고 생각해요. 모든 현실을 이겨 내고 신념으로 활동하시는 분들도 있긴 하지만요.

처음 알바노조를 했을 때는 인정받고 싶기도 하고, 다른 운동에 대한 경험도 많지 않으니 헌신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세대는 과거와 다른 것 같아요. 옛날에는 활동에 헌신하면 명예나 자리가 돌아오곤 했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잖아요. 선배들은 아프면 같이 운동하던 의사 친구가 도와주고, 뭐 그런 상황도 있었다던데 우리 세대는 그런 공동체적인 게 없고 각자도생인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신념만으로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성지훈 : 청년세대의 니즈나 욕망을 규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불온하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규정되지 않음’이 이 세대를 규정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라고 생각하고요.

쉽게 세대를 규정하고 계층을 규정하려고 하다 보니 개인은 삭제되고 단체만 남고, ‘386은 이래야 해’ 이런 생각 속 유대감이 아니라 카르텔만 남게 되는 것 같아요.

신념으로 헌신을 강요하는 것도 너무 폭력적인 말 같고요. (청년들이)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청년세대를 어떻게 생각할지, 조직할지 이런 것들은 모두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효원 : 정말 청년 안에서도 사람들이 너무 다 다르다는 것을 느껴요. 만날 노조활동하는 사람들만 만날 수 없으니 취미 따라 사모임도 가는데요.(웃음) 살고 있는 집을 얘기를 하다 보니 다 다르더라고요. 저는 운이 좋아(?) 작은 기업에 다녀 저리로 중소기업 청년대출을 받아 전세를 사는데요. 저랑 비슷한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는 친구들한테도 저는 되게 운이 좋은 거예요. 기업 규모가 조금만 커도, 연봉이 조금만 높아도 이 제도는 적용이 안 되거든요. 소득이 좀 높은 친구들은 요즘 집을 저소득층한테 주니, 자신이 가질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계급이나 계층에 따라서 청년끼리 이해관계도 모두 다 다른데, 기성세대가 청년세대를 하나로 ‘퉁쳐’ 버리는 과정에서 나온 정책이 아닐까 싶어요. 기성세대는 청년들은 집을 살 수 없고 불쌍하니 원룸을 줘야 하고, 원룸만으로도 충분하다 뭐 이런 생각들을 하는 거죠. 그런데 청년들도 냄새나지 않는 쾌적한 환경에서 살고 싶거든요.

이만재 : 사람들은 모 아니면 도, 앞면 아니면 뒷면 (이렇게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공채로 입사한 정규직 노동자와 간접고용·특수고용 노동자 나이가 같지만 정체성은 너무 다르거든요. (청년) 하나로 퉁쳐서 설명하면 그게 쉽고 선명해 보이지만, 그것만으로 다 설명하거나 해결할 수 없거든요.

이효원 : 저는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 노동운동을 하는 청년들도 모두 다 다르다는 것을 항상 생각해 달라고요.

이가현 : 맞아요. 노조에 아무래도 20~30대가 많지 않다 보니 제가 말을 하면 모든 청년세대를 대변하는 것처럼 돼요. 되게 부담스럽더라고요. 내 실수가 내 잘못 하나로 끝나지 않고, 다른 청년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니까요.

“메시지 전달 형태나 채널 바꾸되
메시지 바뀌어선 안 돼”


사회 : 최근 공공기관 사업장의 경우 신규 입사자가 크게 늘어 노조 내 청년 비중이 40%에 육박하기도 해요. 그런데 노조 내 의사결정은 여전히 40~60대가 주도하죠. 청년들은 자연스레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같은 다른 플랫폼을 찾는 상황도 생기고요. 여러분은 노조가 혹은 노동운동이 청년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한다고 보나요.

이가현 : 청년들과 여성에게 실질적인 권한이 더 많았으면 해요. 행사 때 청년 발언 하나 넣어 주거나, 여성 이름 붙은 행사를 만들거나 여성위원장 자리 하나 만들어 주는 형식이 돼선 안 된다고 봐요.

가르치려고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노조를 하지 않으면 비겁한 사람이고, 정의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하고 죄책감만 심어 주는 설교 방식이 잘못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성지훈 : 청년세대 목소리가 노조활동에 담기지 않는다고 명제화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청년세대 목소리가 아니라 잘못된 목소리가 노조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보거든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불공정이라고 이야기하는 인천국제공항 같은 상황이요.

▲ 성지훈 민주노총 선전홍보부장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청년노동자처럼 공부 잘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판교의 IT 청년노동자들은 공공기관 청년노동자와 또 달라요. 판교 IT노동자들은 ‘블라인드’로 노조를 만들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으로 노조활동을 하며 회사와 단체협약도 맺었지만,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가 자신들만 바뀌어선 안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IT 비정규 노동자도 합세해 이 판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네이버(지회)는 손자회사도 묶어 교섭하려 해요. 결국 청년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경험’을 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민주노총 팝업스토어 기획 같은 리브랜딩은 청년에게 쉽게 접근하려는 시도였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메시지를 바꾸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비정규직을 없애야 한다’거나 ‘모두가 더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와 같은 거요. 메시지를 받는 사람이 바뀌었으니 채널을 바꿀 수 있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태를 바꿀 수 있지만 내용은 바꿀 수 없는 거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인 나의 태도를 바꾸는 것뿐이에요.

“2020년 세계 이슈는 환경문제
대응 어려운 노조 내 구조적 한계 있어
통증 자체 외면은 문제”


사회 : 메시지는 변해선 안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지금 노조가 제시하는 어젠다는 임금과 고용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어요. 청년들이 듣기에는 일방적이거나 협소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어 보여요.

성지훈 : 민주노총의 어젠다가 경직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요. 2020년 전세계 가장 주목받는 이슈는 기후문제지만, 아직 이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진행되지는 않고 있어요.

민주노총의 주요 산별은 금속노조, 그중에서도 완성차 공장이니까요.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하는 순간 내연기관 생산 중단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완성차 조합원은 물론 그 아래 수십 만의 2차 벤더 가족들을 어떻게 하느냐 문제가 남는 거죠.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당위가 명확한데 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그렇지만 고민과 토론도 외면하고 있는 것은 통증 자체를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만재 : 어떤 조직도 계속 변화를 해야 성장하는 것처럼 민주노조운동의 주체로 새로운 가치를 융합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게 사실이에요.

▲ 이만재 희망연대노조 정책국장

우리가 흔히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한테 기후·여성운동 같은 다른 운동을 이야기하면 ‘우리랑 직접 상관은 없는데 그것도 중요하니 연대하자’ 이런 식의 수준으로 생각해요. 어려운 문제지만 기후위기는 사회 구조의 문제이고, 나아가 에너지기업을 사회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아갈 수 있는 문제예요.

아래로부터 변화가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민주노총 총파업이 성공하려면 민주노총 사무총국 60여명만 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산별노조, 단위사업장 조합원들이 “무슨 총파업이야”하면 그 총파업은 실패하죠. 똑같은 거예요. 결국 현장·일반노동자들과 접점을 가지고 다른 이슈들을 고민하고 해법을 계속 찾는 시도들이 위로 퍼져 나가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 방식
작은 성과 충분히 누리지 못해 효능감 떨어뜨려”


이가현 :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신 뒤 노조가 해낸 일들이 되게 많잖아요. 그런데 만날 언론에서 보이는 노조 이미지는 엄청 기득권이라서 내 삶과 상관이 없거나, 노조하면 해고당하는구나. 이런 것이에요.

두 가지 그림밖에 보이지 않으니, 청년들이 노조의 필요성 혹은 노조하는 효능감을 느끼기 어려운 것 같아요. ‘전태일 3법’도 너무나도 좋은 내용이지만 활동가가 아닌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확 와닿기에는 한계가 있고요.

사회적 대화에서 민주노총이 불참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아쉬웠어요. 100% 얻어 내지 못하면 참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던져졌다고 봐요. 내 인생이 바뀔 것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대다수는 노조 없는 사업장에서 일하잖아요. 그들이 노조의 효능감, 존재감을 느끼려면 사회적 대화나 법 개정으로 내 사업장에 노조가 영향을 끼쳐야 하니까요.

이만재 : 민주노총은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 방식으로 투쟁하는 경우가 아무래도 많은데, 일하면서도 느껴요. 정규직으로 전환됐다고 해도 원청 정규직이 아니거나, 설령 원청 정규직이라고 해도 공채로 입사한 사람들과 임금이 같지 않으면 그건 정규직 전환이 아니다고 생각하는 경우들이요.

왜 투쟁을 해도 법·제도 개선이 안 될 수 있잖아요. 그래도 조그마한 성과라도 있다면, 그걸 가지고 홍보도 하고 다음 투쟁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하는데, 너무 ‘All or Nothing’으로 가는 것 아닌가 그런 고민도 들어요.

이효원 : 작은 성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실패로 여기는 경우가 있긴 한 것 같아요.

성지훈 : 없다고는 생각 안 하지만 일종의 레토릭이라고 생각해요. 교섭에 들어가서 원청 정규직이랑 똑같이 급여를 맞춰 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투쟁의 연속성을 부여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레토릭이죠. 다만 적정선을 잘 못 찾는 부분은 있는 것 같아요.

“연공급제와 직무급제
노조 내 토론 이뤄졌으면”


사회 : 생애임금 체계에 대한 고민도 많아지는 시기인 것 같아요.

이가현 : 연공급제에 대한 고민도 요즘에 많이 해요. 과거에는 평생직장이다 보니, 내가 버티면 내 연봉이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잖아요. 또 과거에는 일할수록 숙련도가 쌓이고, 생산물이 더 나오는 그런 형태의 노동도 많았고요. 그런데 최근에는 평생직장도 없고, 오래 일한다고 꼭 일을 더 잘하는 것도 아닌 경우도 많고요.

얼마 전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직무급제 도입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노조 안에서 많이 토론이 됐으면 좋겠어요.

저랑 비슷한 또래 친구들은 단순히 더 오래 버텼다는 이유로 급여 차이가 두세 배 이상 크게 나니 불만이 많더라고요. 이게 내가 하는 노동의 가치에 준하는 임금 보상이 따라오지 못한 이유 때문이기도 한데, 나아가 윗 세대가 너무 많은 임금을 가져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오는 거죠.

성지훈 : 연공급제도가 좋다고 생각해요. 임금은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게 옳다고 생각하거든요. 평균적으로 나이, 부양가족수, 건강상태 등에 따라 필요한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는 사회로 만드는 게 우리의 꿈이라면 연공급제는 그 꿈을 위해 스텝 바이 스텝 나아가는 거죠. 물론 대전제는 모두가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한다는 거죠.

이가현 : 연공급제의 전제는 청년 때 자기가 부양할 사람이 없고, 나중에 나이가 들면 결혼해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려면 집도, 차도 있어야 하고 교육비도 든다는 것을 가정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앞으로의 가족구조는 더 많이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그런 삶을 사는 게 아닌데, 이걸 하나의 기준으로 정해 버리면 ‘정상’이나 ‘모범’으로 정의하니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 노동의 가치를 상사가 노동하는 가치와 동일하게 인정받아 임금을 받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이효원 : 두 분 말이 모두 맞는 것 같아요. 결국에 내가 열심히 일한 만큼 충분한 대가를 받지 못하니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필요한 만큼 가져가야 한다는 말도 맞는데, 나보다 열심히 하는 않는 누군가가 더 많이 가져간다는 것 자체가 불평등과 불공정에 예민한 세대들을 건드린 것 같아요.

 


“전태일 열사가 2020년 살았다면,
공정보다 정의와 인간성 회복 얘기했을 것”


사회 : 전태일 열사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2020년 전태일 열사가 살아서 구호를 외친다면 어떤 구호를 외쳤을까요.

이효원 : “공정을 너머 정의로”가 아니었을까 해요.

최근 MZ세대(밀레이널세대와 Z세대를 아우르는)들은 무한경쟁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공정을 매우 중시해요. 그런데 어떤 교수님의 말처럼 우리가 어느새 공정의 덫에 빠진 것 같아요. 수년 동안 그 일을 해 온 사람들의 헌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공정을 뛰어넘어 정의로운 게 뭔지 다시 한번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이가현 : 구호는 떠오르지 않아요.

다만 차비를 아껴 여공의 풀빵을 샀던 행적을 생각해 보면 아마도 비정규직·청년·여성·성소수자 등을 위해 운동하지 않았을까 해요.

노조도 연대·희생, 사회 전체에 얼마나 잘하고 있나 고민해 보면 좋겠어요. 개별 사업장을 넘어 전체 사업장을 위한 이익을 고민하고 연대하는 일이요.

성지훈 : <전태일 평전>을 최근 여러 번 읽었는데요. 보면 ‘인간이라면 응당 이래야 해’ 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 같아요. 지금 살아 있다면 여전히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살지 않았을까 싶어요.

많이들 생각하는 게 ‘원래 인간은 이래, 세상은 약육강식, 잘난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는 게 당연해’인데, 저는 인간 본성은 상호부조론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전태일 열사가 이 시대를 살고 있었다면 회복해야 할 인간성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