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50년에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이 같아 순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를 만들겠다는 얘기다. 환경단체가 잇따라 환영 성명을 내는 것과 달리 노동계는 침묵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에 동의하면서도, 탄소제로가 노동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가 노동시장 핵심이슈로 떠오른 지 오래됐지만 노동과 노동조합의 대응은 걸음마 수준, 아니 걸음마도 떼지 못한 게 사실이다. 기후위기 대응이 노동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게 위해 노동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정의로운 전환 위한 노사정 대화 필요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

▲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친환경차로의 전환은 우리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노동자들이 추진을 함께 논의하고 그 속도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다만 친환경차로 전환 과정에 줄어드는 일자리 문제가 노동자의 희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면서 가야 한다. 친환경차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재교육도 이뤄져야 한다. 자동차산업에서 줄어든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퇴로를 마련하는 일도 필요하다. 이러한 대책들이 뒷받침된 상황에서, 천천히 사회가 전환해 나갈 수 있도록 속도조절이 이뤄져야 한다. 노동자들과 같이 고민하겠다는 자세도 중요하다.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선제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독일의 사례를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으로 삼을 수 있다. 물론 독일의 사례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독일은 오랜 산별교섭과 다양한 사회적 합의 경험이 축적돼 있다. 노조가 직접 직업훈련이나 교육을 해온 경험도 많다. 회사 의사결정에 노동자 참여가 보장돼 있고, 튼튼한 사회안전망과 복지 시스템도 마련돼 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독일이 고용을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 임금을 올리지 않는 합의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정부가 노동자들의 임금손실분을 보전하는 제도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경험과 역사의 차이가 존재하고 사회안전망 부족 등으로 한국은 독일과 같은 방식으로는 진행하기 어렵다. 정부, 사용자 단체와 독일과 같은 수준의 합의를 이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선언에 그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한국 실정에 맞게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지향점을 어떻게 관철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한국에 맞는 현실적 대안들을 찾아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통하지 않는 정책, 고용불안으로 나타날 것
이태성 발전노조 한전산업개발발전본부 사무국장

▲ 이태성 발전노조 한전산업개발발전본부 사무국장

기후변화에 따른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는 것까지 결정한 시기는 1년 채 남짓이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간에 고용의 불안을 느끼는 감정들은 커지고 있다.

특히 연료·환경 설비 노동자나 청소, 경비, 시설 노동자와 같은 발전소 내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용불안이 더욱더 심하다. 정부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하지만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관련해서는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하려면 전환으로 인한 피해자가 없어야 한다. 지금대로면 우리 사회 고용구조 속 가장 약한 연결고리인 비정규직이 피해를 볼 수 있다.

최근 충청남도는 정부에 수명이 30년 된 발전소는 바로 폐쇄하고 가동 수명 연장을 해선 안 된다고 건의했다. 충남에는 석탄화력발전소만 30여개가 있다. 거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발전기가 멈추어 설 때마다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당장 태안 1·2호기가 2023년, 3·4호기가 2025년에 운행을 멈춘다.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발전소 폐쇄와 함께 삶의 터전이 흔들리게 된다. 정부와 발전사는 신규 설치 발전소에 노동자들이 적응할 수 있게, 에너지 전환 관련한 교육을 해야 한다.

물론 정의로운 전환의 가장 큰 전제는 “지구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을 대전제로 두되,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중 하나인 노동 문제에 대한 고민도 함께 풀어가야 한다. 재생에너지, 친환경에너지로 갈 수 있는 고민도 같이 해야 한다.

정부는 교육이나 기후위기 대응에 관해 노동자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함께 의사를 공론화할 수 있는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그래야 해외에서처럼 기후위기에 관한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하다.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대책은 어떤 것이든 사회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거스를 수 없는 전환의 물결, 헤쳐나갈 지도 마련하자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

▲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로 전환하거나 산업을 재편하는 것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변화가 노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고 대응 전략을 짜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노동계의 준비는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노동과 환경은 대립하는 개념으로 비쳤다. 공장가동을 늘리고 생산을 확대하면 화석연료를 많이 쓰게 되고, 온실가스 배출도 더 늘어난다. 이 문제에 노동계가 적극 대응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 같은 위기 속에서 노동과 환경은 손을 잡아야 한다. 환경단체들은 노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속속들이는 모른다. 환경단체와 노동단체가 협력해 기후변화, 환경변화가 노동시장, 일자리 질과 고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고 대안을 찾도록 연대해야 한다. 환경과 노동이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같이 나아가야 한다.

독일 금속노조(IG Metall)는 ‘전환지도’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전환지도는 개별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기술변화와 고용과 숙련 및 노동조건에 미치는 영향을 부서별 단위로 상세하게 그린 지도다. 부서별로, 공장 라인별로 어떤 기술이 들어왔는지 현장 노동자와 함께 파악하고 고용과 노동의 양과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는 것이 전환지도의 목적이다. 기술변화로 인한 일자리 변화를 추적하고 대응전략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만약 인력이 줄 경우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 이들에게는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부서 내지 공장은 어디인지, 아니면 기업 내 인력수요가 필요한 곳은 어디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은 사업장 차원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다. 지역 차원에서도 전환지도가 필요하다. 기후위기와 기술변화에 따른 흐름 속에서 전환에 따른 물질적, 인적 자원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와 울산지역에서 이런 논의들이 오가고 있다. 지역차원에서 자동차부품사에 대한 전환지도를 그린다면, 정부와 지자체에서 할 수 있는 지원이 무엇인지도 분명해질 것이다.

노조, 경영자에 맡기지 말고 시급히 나서야
김현우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

▲ 김현우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

한국의 경제성장에 가장 큰 역할을 해 온 제철·정유·반도체·시멘트·석탄화력발전은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업종이다. 이 업종의 10개 다배출업체 배출량이 한국 전체 배출량의 절반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들은 배출 감축 여지가 없다고 항변하고 정부는 이를 거스를 생각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고 밝힌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동안 한국은 소극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이행 부진으로 ‘기후악당 국가’로 불려 왔다. 올해 말까지 유엔에 제출하기로 2050년까지의 장기저탄소 발전전략(LEDS)에 탄소중립 명시 가능성도 높아질 것 같다. 그러나 향후 10년의 구체적인 감축 목표와 방법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정부가 단기 과제를 다루려 하지 않는 이유는 경제 구조와 관행에 엄청난 변화를 수반할 것이기 때문이다. 2050년 탄소중립으로 가려면 매년 7~8% 정도 국가 배출량이 줄어들어야 한다. IMF 사태 때인 1998년에 경제성장률이 5.1%를 기록하면서 배출량이 14% 감소한 실적이 있음을 감안하면, 그 절반 정도의 경기 후퇴 또는 코로나 사태와 같은 위기가 계속돼야 가능할지 모른다.

그래서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진정성과 실행 의지는 아직 믿기 어렵다. 코로나 사태 대응을 위해 발표된 한국판 그린 뉴딜에도 녹색일자리 확대와 ‘정의로운 전환’에 관한 이렇다 할 내용이 없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선언은 정부의 정책 방향이 바뀔 수밖에 없고 기업과 시민들도 변화해야 한다는 신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발 빠른 기업들은 탄소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기술과 제품 홍보에 나서고 있고, 세계 시장의 판도 변화도 생산과 일자리의 변화를 추동할 것이다. 코로나 위기 너머의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도전 앞에서 노동조합은 의제 설정과 대응 체제 갖추기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 노동조합의 조직을 새로운 녹색산업으로 확대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며, 줄어들어야 할 석탄화력과 내연기관차 생산 부문의 일자리를 녹색 일자리로 대체하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그것은 경영자들에게 맡겨둘 일이 아니라 이 지구 위에서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노동’을 만들고 나누기 위해 노동자 조직이 해야 할 일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