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욱 변호사(사무금융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6다16054 등

1. 대상판결의 경위

주식회사 두산 소속 노동자 중 두산모트롤 사업부(BG, Business Group)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정기상여금·기능장수당·AS수당 등이 통상임금임을 주장하면서 적법한 통상임금을 전제로 재산정한 각종 법정수당의 차액을 청구했다. 1·2심 법원은 정기상여금·기능장수당·AS수당 등이 통상임금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으로 인한 법정수당 차액 청구에 대해서 1심은 신의칙 항변을 배척(즉, 청구 인용)한 반면, 2심은 신의칙 항변을 인정해 청구액 대부분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2심에서 신의칙 항변이 주요 쟁점이 됐는데, 2심 법원이 전문심리위원을 지정해 신문을 진행하는 등 신의칙 항변 자체에도 많은 쟁점(총 7가지 쟁점)이 있었다. 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6다16054 등 판결(이하 ‘대상 판결’)은 위 7가지 쟁점 중 두 번째 쟁점이었던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그 존립이 위태롭게 되는지 여부(이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등’)”는 사업부가 아닌 법인 기준으로 판단해야 함을 밝히면서 파기해 나머지 대부분의 쟁점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하지는 않았다. 다만, 원고들의 청구액은 2심 법원이 정한 기준 시점(2014년)에 의하더라도, 사업부 당기순이익의 133.3%이지만 법인 전체의 당기순이익의 0.4%에 불과하므로 신의칙 항변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법인 기준인지 사업부 기준인지 여부가 중요 쟁점이 된 것이었다. 본 평석에서는 대상 판결이 구체적으로 이유를 밝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등’의 판단 기준에 대해 살펴본다.

2. 1·2심 법원이 사업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본 이유

1·2심 판결 모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등을 판단하면서 법인이 아닌 사업부의 각종 지표를 근거로 판단했다.(다만 1심 법원은 일부 지표에 대해서는 법인 전체의 것을 사용해 신의칙 항변을 배척했다.) 2심 판결이 사업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제시한 근거는 아래와 같았다.

① 두산모트롤 BG는 피고가 2008년에 동명모트롤 주식회사를 인수하면서 탄생한 것인 점, ② 피고는 유압기기 및 방위산업용 유압부품을 생산하는 두산모트롤 BG, 전자제품의 부품과 OLED 소재를 생산하는 전자 BG, 지게차 부품 등을 생산하는 산업차량 BG, IT 시스템 및 인프라 운영사업 등을 하는 정보통신 BU 등 여러 자체 사업부문을 운영하고 있는 점, ③ 피고 내부의 각 사업부는 그 사업 영역이 다를 뿐만 아니라 각각 별도의 조직을 갖추고 어느 정도 독립적인 형태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④ 두산모트롤 BG만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노조가 존재하고 있어서 임금협상 및 인력구조조정도 두산모트롤 BG가 독립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가 원고들에게 추가 법정수당 및 퇴직금을 지급함으로써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발생하는지 여부는 이 사건 사업부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피고는 다른 사건, 예를 들어 대법원에서 신의칙 항변이 배척돼 파기환송된 한진중공업 사건에서도 조선사업부와 건설사업부가 있는데, 조선사업부의 각종 경영지표를 근거로 판단하였다고 주장했다.

3. 사업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부당한 이유

그러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등을 사업부가 아니라 법인 전체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 ① 원심(2심)이 근거로 삼은 것은 영업 및 노무 관리 등의 관점에서 독립성이 있다고 본 것인데, 신의칙 항변 판단은 영업이 아니라 재무적 부담을 누가 지는지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 그리고 재무적 부담의 법률적 주체는 사업부가 아니라 당연히 법인이다. ② 경영상 해고의 경우 대법원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법인의 어느 사업부문이 다른 사업부문과 인적·물적·장소적으로 분리·독립돼 있고 재무 및 회계가 분리돼 있으며 경영 여건도 서로 달리하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법인의 일부 사업부문 내지 사업소의 수지만을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법인 전체의 경영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결정해야 한다.”(대법원 2015.05.28. 선고 2012두25873 판결 등 다수)고 해 원칙적으로 법인 기준설을 확고히 하고 있다. ③ 경영상 해고 사건에서 ‘긴박한 경영상 필요’는 인적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정당한지 여부에 대한 것으로서 영업이익 등 영업에 관한 지표들이 상당히 중요한 반면, 부채 비율이나 유동성 판단 등 재무적인 부분은 상대적으로 부차적이다. 특히 대법원이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에 대하여 이른바 ‘합리성 필요성’ 내지 ‘장래 대비설’을 취하게 되면서 더욱 그러한 점이 있다. 그러나 통상임금 사건은 (전원합의체 판결 보충 의견에 의하면) 당기 순이익이 핵심적 지표다. 영업에 관한 지표들을 중시하는 경영상 해고 사건과 달리 통상임금 사건에서의 신의칙은 피고 회사가 재무적으로 일시적인 부담을 수용할 수 있는지 여부를 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기순이익 등 재무적인 지표는 법인 전체를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경영상 해고에 관한 대법원 판결에 의하더라도 법인 기준설이 원칙이지만) 통상임금 소송에서의 신의칙은 당연히 최종적으로 재무적 부담(법률적 부담)을 지는 주체인 법인을 기준으로 판단돼야 한다. ④ 한편, 주식회사 두산이 동명모트롤 주식회사를 합병하는 과정을 전후해 동명모트롤 주식회사 및 두산모트롤 사업부의 추정 영업이익은 200억~700억원대로서 이 막대한 영업현금흐름은 주식회사 두산이 사업지주회사로서 안정적인 구조를 갖추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달리 말하면 합병을 하지 않고 두산모트롤 BG가 독립법인으로 남았다면 경영실적이 더 양호했을 것이다. 그런데 두산모트롤 BG가 흡수 합병 과정에서 법인 전체에 기여한 영향은 과거의 것이라는 이유로 고려하지 않고, 계쟁기간 만을 따로 떼어 법인이 아닌 BG단위로 판단하는 것은 피고 회사에게 그때 그때 유리한 기준만 취사선택하는 것을 허용하는 셈이다. ⑤ 한편 법인 전체의 실적에 따라 법인세가 부과되는데, 적자가 나는 BG가 있고 흑자가 나는 BG가 있을 때, 그 적자 부문 BG 때문에 흑자 부문 BG에서의 이익에 대해서도 법인세를 내지 않거나 덜 내게 되며 이는 당연히 당기순이익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당기순이익을 고려한다면 법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더욱 명확해진다. ⑥ 한편, 영업 측면에서 보더라도 사무직의 경우에는 법인 전체가 통합해 운영되고 있는데 두산모트롤 BG에 관한 사무업무를 수행하는 사무직들의 인건비 수준은 BG가 아니라 법인 차원에서 결정되고, 이 인건비(판매관리비)는 두산모트롤 BG의 회계(당기순이익 등)에도 반영이 된다. ⑦ 그 외에도 주식회사 두산은 법인 단위는 물론이고 그룹 전체 차원에서 결정해 그 재무적 부담을 법인과 BG가 부담하는 경우가 많은 바, 이러한 유기적 상호관계를 무시하고 BG단위로 신의칙을 판단하는 것은 부당하다.

4. 대상 판결의 판단

대상 판결도 이러한 상고 이유를 받아들여서 “두산모트롤 사업부가 피고 내부의 다른 사업부와 조직 및 운영상 어느 정도 독립되어 있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재무·회계 측면에서도 명백하게 독립되어 있는 등으로 두산모트롤 사업부를 피고와 구별되는 별도의 법인으로 취급해야 할 객관적인 사정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해 원심을 파기했다.

5. 대상 판결의 의의

2013. 12. 18.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신의칙 항변이라는 당혹스러운 법리(?)가 도입된 이래, 한동안 노동현장에 많은 혼란을 끼쳤다. 이 기이한 법리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제 그로부터 상당한 기간이 경과해 위 법리가 적용되는 사건은 대부분 대법원에 계류 중이고, 최근에 신의칙 항변의 적용 범위를 제한하는 대법원 판결들이 선고되고 있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대상 판결도 신의칙 항변의 여러 쟁점 중 하나였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등의 판단 기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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