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케이카

현대자동차가 중고차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현대·기아차가 국내 신차 시장 7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중고차시장에 대한 독점적 지배와 업계 종사자들의 생계 위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대·기아차의 시장 진출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상생방안 마련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는 대기업 진출 가능성을 열어둔 채 현대·기아차와 중고차 매매업계가 공존할 수 있는 상생협약을 조율하고 있다. 양자 간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소속 장세명 대구조합장은 단식농성을 벌이는 등 대기업 진출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11월 첫째주 중고차 매매업계와 박영선 중기부 장관의 면담이 예정돼 있다. 하지만 업계가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완강한 입장이어서 상생협약안 마련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할지는 미지수다.

중고차시장 매출액 2년새 55% 증가
“현대차가 알짜매물 다 빨아들일 것”


중고차 매매업은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대기업 진출이 제한됐다. 지난 2016년 한 차례 연장을 거쳐 6년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보호를 받고 지난해 2월 기한이 종료됐다. 중고차 매매업체들은 5년간 대기업 진출을 막는 ‘생계형 적합업종’ 선정을 추진했지만 같은해 11월 동반성장위원회는 부적합 의견을 냈다. 중기부 결정만 남은 상태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기존 중고차시장에 불만이 컸던 만큼 여론은 대기업 시장 진출에 호의적이다. 현대·기아차 진입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중고차시장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08년 180만건이었던 국내 중고차 거래 규모는 지난해 371만4천건으로 증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중고차 판매업 매출액 규모는 2016년 7조9천669억원에서 2018년 12조4천217억원으로 늘었다.

성장가능성도 크다. 정비·폐차·광택과 물류·금융분야 등 수익모델이 다양하고 시장이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자동차학)는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중고차시장이 신차 시장의 6배 정도 된다”며 “확장가능성이 높은 시장에 참여 의사를 보이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완성차 업계 입장에서는 중고차 관리를 통해 신차 가치를 끌어올리는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신차 가격은 중고차 가격이 결정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품질보증·관리를 통해 중고차 가격을 ‘방어’할 수 있게 되면 신차 판매 가격도 끌어올릴 수 있다. 직접 자사 중고차를 관리하고 보증하면 브랜드 전체 이미지가 좋아진다는 판단도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벤츠·BMW 같은 인증 중고차 매매업에 뛰어든 수입차업체는 현대·기아차에 비해 신차 대비 중고차 가격이 더 높은 경향이 있다.

문제는 현대·기아차가 국내 신차 시장점유율 70%를 넘게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고차시장 진출은 독점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지난해 현대차의 국내 점유율은 48.4%, 기아차는 33.9%로 현대·기아차 점유율이 80%가 넘었다. 중고차 업계는 대부분 영세업체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판매업 종사자, 일명 딜러들은 국내 4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폐차·광택 같은 주변 업계까지 고려하면 종사자는 6만명 정도다. 이들은 대기업 시장 진출에 따른 물량 독점으로 생계 위협을 우려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대리점에서 나오는 중고차 물량이 상당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대리점에 신차를 구매하러 온 고객이 자신이 타던 차를 대리점 판매사원를 통해 딜러에게 매매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진행되는 것이다. 현대차 대리점에서 특수고용직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A씨는 “최근 플랫폼의 등장으로 이러한 거래가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알짜 매물을 다 빨아들이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연식 제한 규정 실효성 의문
“일자리 포함 상생모델 현대·기아차가 제시해야” 


상생협약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주행거리·연식 제한 규정을 두자는 논의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중고차 업계에서는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중고차시장에서는 5년 미만 매물이 핵심인데, 완성차 업계도 5년 미만 연식의 인증 중고차시장을 중심으로 중고차 사업에 진출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인증 중고차란 연식과 주행거리 등 일정 기준에 맞는 자사 중고차만 가려내 매입한 뒤 소비자에게 되파는 차량이다. 자체적으로 마련한 항목에 따라 직접 차량을 점검하고 판매해 인증이란 단어가 붙었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미국과 유럽을 비롯해 캐나다·러시아·인도 등에서 신차와 함께 중고차를 판매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연식 5년 미만 차량을 중심으로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해성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사무국장은 “대기업이 상생과 소비자 후생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인증중고차 같은 5년 미만이 아니라 정말 노후차량을 잘 점검해서 중고차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픈 플랫폼’의 경우 실체가 불명확해 어떤 형태로 구체화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는 “대기업이 열린 장터를 만들고 장사는 개인이나 영세업체가 하는 방안, 즉 판매를 통한 이익보다는 산업적 경쟁력을 얻는 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대기업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일자리 문제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딜러와 같은 개인사업자뿐만 아니라 중고차 매매업체에 고용된 직원들도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국내 최대 중고차 거래 업체 케이카에서 중고차 매입·판매 업무를 하는 직원들은 업체 매각에 따른 고용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케이카는 SK엔카에서 떨어져 나온 뒤 사모펀드가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 대기업 시장 진출로 매각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구자균 금속노조 서울지부 케이카지회장은 “지금도 기본급이 적고 인센티브가 큰 임금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매각 과정에서 매입사원 규모를 줄이고 판매사원은 외주화하는 형태로 더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가 주도하는 시대에 ‘소비자 후생’을 내건 현대·기아차 시장 진출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상생모델에 대한 구체적 아이디어를 (현대·기아차가) 제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자리 문제, 서비스 인력 양성에 대해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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