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대전지역일반지부 소속 KB국민은행 콜센터 노동자들이 29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앞에서 실적경쟁 중단과 업무교육 및 휴게시간 보장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상담원들이 그래요. 아침 출근길 차도를 보며 한 발자국만 내디디면 죽을 수 있을 텐데, 그러면 고객들한테 사과 안 해도 될 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4년째 KB국민은행 콜센터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김지연(가명)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씨를 포함한 KB국민은행 콜센터 상담사들은 지난 12일부터 한 주 동안 ‘전쟁통’에 가까운 소란을 겪었다. KB국민은행의 전산교체 작업이 실시되던 날 시스템 오류로 고객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면서다. 김씨는 “그날 콜대기가 1천콜이 넘었다”며 “고객은 송금을 했는데, 상대는 입금이 안 됐다고 하니 어떻게 된거냐는 말에 그저 사과만 하고, 욕받이가 됐다”고 한숨 쉬었다. 당시 전산오류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링크되기도 했다.

공공운수노조 대전지역일반지부(지부장 김호경)가 2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콜센터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KB국민은행은 콜센터를 민간위탁업체 효성ITX·고려신용정보·제니엘·그린씨에스 네 곳에 맡긴다. 지부에 따르면 700여명의 콜센터 노동자들은 해당 업체와 근로계약을 맺고 일한다.

노동자들의 가장 큰 요구는 “적정한 교육을 받고 일하고 싶다”였다. 김지연씨는 “전산 시스템이 바뀌면서 서비스가 개편된 게 있는데, 오류코드는 물론 업무내용도 상담사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연실 지부 조직국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업무처리가 많아졌고, 다양한 시스템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변화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교육 없이 고객을 응대하는 콜센터 노동자들이 하루 종일 이유 없이 사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위탁업체 간 과도한 경쟁을 줄여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해 달라는 요구도 나왔다. 노조는 “용역업체 직원들은 끊임없는 경쟁에 노출돼 있다”며 “업체 간 경쟁, 조별 경쟁, 개인 경쟁으로 별도 휴식시간도 없이 전화를 받고 있다”고 개선을 촉구했다. 김호경 지부장은 “콜센터 노동자들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며 “누군가의 엄마이고 딸이니 사람답게 살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협력업체에 문서를 제공하면 협력업체가 자체적으로 매뉴얼을 제작해 직원들에게 공유하게 돼 있다”며 “(노동자가) 주장하는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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