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갔다 올게!” “다녀오겠습니다.”

일터로 출근하기 전에 가족들에게 하는 인사, 누구나 매일같이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매일 하는 말이 누군가는 지킬 수 없는 말이 되기도 한다. 연이은 노동자들의 죽음에 더 이상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와 국회에서도 중대재해를 줄이고 안타까운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한 방안을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후진적인 재래형 사고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은 전국에 200만곳이 넘는다. 그중에서도 5명 미만 사업장은 100만곳이 넘는데 산업안전보건법은 일부만 적용되고 있다. 50명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해 보면 전체 사업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사업장의 산업안전보건 관리를 하는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감독관은 600명도 되지 않는다. 1명의 감독관이 2천~3천개의 사업장을 관리·감독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실제 노동부가 사업장을 관리·감독하는 비율은 전체 사업장의 1%도 되지 않고 있다.

사업장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발에 차일 정도로 널려 있다. 이 때문에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노동부는 늘 인력부족을 하소연하고 변명만을 되풀이할 뿐이다. 사업장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을 확대하는 것은 진전하지 못하고 있다.

노조의 안전보건 점검은 정당한 활동

정부가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금속노조가 사업장 안전보건 점검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사업주의 시설관리권과 노조의 정당한 활동에 대한 다툼이 벌어진다. 심지어 사측이 물리력으로 출입을 저지하기도 하지만 노동부는 이를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최근 “산별노조 간부의 현장 안전점검을 위한 사업장 출입은 무죄”라는 대법원 판결(2017도2478)의 당사자다. 2011년 창조컨설팅과 공모해 노조파괴를 자행했던 유성기업은 노동부가 발표하는 산재 다발사업장 1~2위를 차지할 정도로 안전보건 관리가 부실했다. 그래서 2015년 3월 금속노조에서는 유성기업 영동공장에 대한 현장 안전점검을 진행했는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이 200여건 넘게 드러났다. 그럼에도 오히려 회사와 검찰에서는 현장 안전점검을 했던 금속노조 간부 2명에 대해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력행위처벌법) 위반혐의로 기소했다. 5년 만에 무죄로 확정됐다. 대법원 판결요지는 “현장의 안전보건 점검활동은 노동자의 노동조건 유지·개선을 위한 조합활동으로서 사업주의 시설관리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기 때문에 정당한 활동”이라는 것이었다.

대법원 확정판결에 의거해 산별노조의 사업장 출입과 관련한 불필요한 마찰과 논란은 종식해야 한다. 또한 노동부는 안전보건과 관련한 노조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안을 사업장에 안내해야 한다.

굳게 닫혀 있는 사업장의 빗장을 풀고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사업장의 안전에 대해 2중 3중으로 점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를 만들어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명예산업안전감독관 활동 보장해야

중대재해는 당사자 혹은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하고 방지해야 할 과제다. 따라서 중대재해 발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50명 미만의 중소영세 사업장,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 대한 안전보건 점검·관리 대책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노동부가 직접 전체 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지역사회와 노조·안전보건단체 관계자를 지역명예산업안전감독관으로 위촉하고 활동을 장려하고 보장할 필요가 있다.

“법을 다 지키면 누가 사업을 할 수 있냐?”는 말은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이런 생각이 쌓이면서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숨기고 은폐할수록 위험은 점점 확대·재생산될 뿐이다. 따라서 철옹성 같은 사업장의 빗장을 풀고 2중 3중으로 안전보건 점검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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