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연남동 골목 어귀. 붉은 벽돌 건물 1층엔 한 손엔 커피를, 한 손엔 노트북을 든 파란 조끼를 입은 고양이 캐릭터가 창문에 크게 프린팅돼 있다. 또 다른 창문엔 역시 파란 조끼를 입고 택배 상자를 든 고양이 캐릭터가 서 있다. 1층 가게 입구에는 고양이 세 마리가 그려진 초록색 프린트가 붙어 있는데 고양이 머리 위에는 ‘NEW WORKER POWERUP’이라는 문구가 써 있다.

1층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향기로운 냄새가 물씬 풍기고 음악도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진 박스테이프·배지·룸스프레이·블랜딩 티·포스터를 비롯한 소품이 매대에 올랐다. 오른편 선반 위에는 책 몇 권이 전시돼 있다.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같이 돌봄·노동 등을 떠올리게 하는 책들이다. 조금 더 깊숙한 곳에는 민주노총 캐릭터 ‘민총이’가 새겨진 스티커·손거울·머그컵·쿠션이 전시됐다. 공간 맨 안쪽 끝엔 500원만 넣으면 아이템을 무작위로 뽑을 수 있는 뽑기 기계와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기가 놓였다.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찍은 노동자들 사진이 벽에 붙어 있다. 계산대 옆엔 <전태일 평전>의 문구가 담긴 무료 책갈피가 전시돼 있다.

“이미지 탓 맞는 말해도 메시지 왜곡”

민주노총이 지난 23일부터 사흘간 운영한 팝업스토어 <뉴워커 프로젝트 : 파워업스토어> 풍경이다. 팝업스토어는 짧은기간 일시적으로 문을 여는 일종의 임시매장이다. 민주노총은 올해 초 사업계획에 ‘리브랜딩’ 사업을 포함시켰다. 민총이 캐릭터를 만들거나 ‘NNN에네넨’이라는 새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2030 세대들에게 친근한 느낌의 영상물을 홈페이지에 업로드한 것이 리브랜딩 사업의 일환이다. 이번 팝업스토어도 리브랜딩 사업 중 하나다. 올해 2~3월 초부터 준비를 시작해 이날 문을 열었다.

팝업스토어를 기획했던 민주노총 선전홍보실 관계자는 “민주노총이라고 하면 거칠고, 빨간 띠 두르고, 길에서 술먹고, 이런 이미지”라며 “일정 정도는 사실인데 메신저 때문에 민주노총이 진짜 맞는 이야기들을 해도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나름의 방식을 만들자는 취지로 이 사업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타깃은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MZ세대(밀레니얼세대와 Z세대의 합성어)’다. 민주노총이 연남동을 팝업스토어 개점 장소로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선전홍보실 관계자는 “젊고 세련되고 힙한 사람들이 많은 곳,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수 있는 곳에서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는 “민주노총은 올해 1노총이 됐고 조합원 100만명도 넘은 데다,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을 표방하고 있다”며 “우리 조합원으로 인식되는 40~50대 중년, 제조업, 대기업·남성에 포함되지 못하는 노동자들과도 함께하는 것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소개했다. 비정규·청년·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정책적으로는 이른바 ‘전태일 3법’을 제·개정하는 것이고, 그걸 표현하는 방식을 고려한 것이 ‘리브랜딩 사업’이라는 설명이다. 팝업스토어 내부에는 ‘NEW ERA·NEW WORKER·NEWNION’(유튜브 채널 ‘NNN에네넨’의 이름도 여기서 따왔다)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 <파워업스토어>에서 판매된 민총이 캐릭터. <최나영 기자>


MZ세대 “소품숍·펫스토어인 줄 알고 들어왔어요”

팝업스토어에서는 어디서도 ‘민주노총’ 흔적을 찾기 어렵다. 수수께끼처럼 곳곳에 ‘노동’을 숨겨 놓았을 뿐이었다. 첫날인 지난 23일 오후 <매일노동뉴스>가 만난 방문객들도 “그냥 소품숍인 줄 알고 우연히 들어왔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20대 초반 여성 ㄱ씨는 “그냥 가게인가 보다 하고 들어왔다”며 “포스터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어서 펫스토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30대 여성 ㄴ씨와 ㄷ씨도 “(가게를 둘러본 뒤에도 민주노총과) 관련이 있다고는 ‘1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고양이 캐릭터가 택배·타투·IT업계에 종사하는 MZ세대 노동자들을 상징한다고 설명하자 그제서야 이들은 “그러고 보니 (고양이가 노조) 조끼를 입고 있네”라며 “저는 그냥 고양이 관련된 디자인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적당히 게으르고, 적당히 개인적이며, 적당히 당당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며, 예쁘고 귀여운 고양이의 특성이 MZ세대와 닮았다며 고양이 캐릭터를 ‘뉴워커’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홍보를 보고 시간을 내어 찾아왔다는 MZ세대도 적지 않았다. 노조 조합원은 아니지만 진보정당이나 단체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온 경우가 많았다. 21살 남성 ㄹ씨는 “민주노총을 잘 몰랐는데 몇 달 전부터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며 “SNS 홍보물을 보고 찾아왔다”고 했다. 배달 플랫폼에서 라이더로 일한다는 40대 남성은 “기사를 보고 왔다”며 “특정 노조 조합원은 아니지만 라이더유니온에 관심이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오토바이에 붙이려고 민총이 스티커를 샀다”며 스티커를 꺼내 보여줬다.

“젊은 감각의 요즘 홍보물들 좋아 … 세대교체 하나 생각했다”

MZ세대·비정규 노동자 방문객들은 민주노총의 팝업스토어를 어떻게 봤을까. 민주노총이 기획한 대로 이미지가 바뀌었을까. 가게 정보를 모르고 왔다는 ㄱ씨는 “(팝업스토어가) 사실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며 “민주노총 하면 빨간 띠 두르고 투쟁하고 그런 아저씨들, 노동하시는 분들만 생각했는데, 이거 보면서는 ‘우리랑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 있겠구나’ 하고 느꼈다”고 말했다.

관심이 있어서 부러 찾아온 이들도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진보당 학생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20대 여성 ㅁ씨는 “민주노총에서 요새 선전물들이 엄청 ‘센세이션’하게 나오니까 좋게 봤고, 영상도 젊은 감각으로 나와서 드디어 세대교체가 되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며 “(캐릭터들이) 너무 귀엽다”고 했다. ㅁ씨는 “(민주노총이) 젊은 사람의 말을 전적으로 듣지 않았으면 안 나왔을 기획이라고 생각한다”며 “아직 민주노총에 상근자는 50대 남성들이 많은 것 같은데, 젊은 사람들이 상근으로 많이 들어갔으면 좋겠고, 선배들이 요즘 감성에 거부감을 덜 가지고 말을 잘 들어주면 이런 시도가 많이 나오지 않겠냐”고 기대했다. 무엇이 인상 깊었냐는 질문에는 “저 사실 민총이 되게 좋아해요. 욕 많이 먹어서 슬퍼요. 너무 귀여워요”라며 밝게 웃었다.

정의당 당원이라고 소개한 30대 여성 ㅂ씨는 “(민주노총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는 모습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궁금해 찾아왔다”며 “저는 그냥 굿즈만 있는 줄 알았는데 소소하게 책이 선정된 이유 같은 것도 있고 해서 (민주노총이) 어떤 온도로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은지 느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 한 방문객이 <파워업스토어>에서 산 소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최나영 기자>


“뉴워커·고양이 … 의미 전달 잘 안 돼 아쉽다”

민주노총 정보를 너무 드러내지 않은 것이 오히려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ㄹ씨는 “(팝업스토어가) 친근하게 느껴지고 그림은 귀엽게 잘 나왔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노조(와 관련된 내용이) 포스터에 좀 덜 쓰여 있는 것 같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MZ세대도 노동이슈를 충분히 공감·이해할 수 있고 필요해서 찾아 왔는데, 실제 노동에 대한 홍보가 부족해 아쉽다”는 목소리다.

ㄴ씨도 “뉴워커를 영어로 썼다고 ‘새로운 노동자’라는 의미가 (우리 세대에) 와닿지 않는다”며 “알려 주기 전까지는 ‘뉴요커’라고 생각했지 ‘뉴워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뉴워커 단어가 그냥 포스터 장식으로 느껴졌고 (일하는 고양이라고 하지만) 고양이 캐릭터도 전혀 와닿지 않았다”며 “오히려 이런 것들의 (의미를) 좀 더 강조(하고 설명)해 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가게에서 만난 ㄷ씨는 “평소 어떤 면에서는 민주노총에 공감하고 힘을 실어 주고 싶은 부분도 있는데 어떤 부분에선 이기적인 측면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며 “이미지 개선보다는 좀 더 내용적인 부분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젊은 세대들이 민주노총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ㅂ씨는 “지금 시대에 젊은 세대들은 정말 불안 속에 산다”며 “그런 불안을 좀 더 낮춰 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 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청년유니온 조합원이라는 30세 남성 ㅅ씨는 “스타트업에 다닐 때 구성원들이 더 나은 조직 문화를 원하면서도, 정작 그것을 하기 위한 노조에는 인식이 안 좋았다”며 “스타트업에 다니다 보니 일상적으로 민주노총을 만날 기회가 없었고 지켜보고만 있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선전홍보실 관계자는 “민주노총이 더 친해지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팝업스토어를 기획한 선전홍보실은 20·30대 비율이 가장 높은 민주노총에서 가장 젊은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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