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고은 기자

지난 8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준법감시위 위원들과 면담을 하며 ‘지난 5월 대국민 사과 당시 한 약속들을 지키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같은날 삼성전자는 자사 간부가 기자출입증을 이용해 국회에 출입한 사실에 대해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5월 무노조 경영 폐기와 4세 승계 포기 등을 선언하며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지만 경영 방식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주노총은 21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삼성그룹의 노조탄압 실태 및 대응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5월 대국민 사과 이후 삼성그룹의 노사전략에 변화가 있었는지 점검하겠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토론회에 참여한 노조간부들은 “달라진 게 없다”며 “노조 무력화 전략이 더 교묘해졌다”고 주장했다.

자회사 노조들 “달라진 것 없다” 한목소리

13년차 조리사로 일하고 있는 임원위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웰스토리지회장은 “지난 6월 파업이 끝나고 현장에 복귀하자 바로 발령이 났다”며 “조리업무와는 무관한 세척실로 가야 했다”고 증언했다. 기업·대학교·병원 등의 사내식당에서 일하는 조리원들이 주요 구성원인 삼성웰스토리지회는 4월 말 임금교섭 결렬로 파업에 돌입했다. 임 지회장은 “현재 삼성의 노조 무력화 전략은 더 치밀하고 교묘해지고 있다”며 “세척실 발령에 항의하자 한 달 뒤 기피부서로 꼽히는 장례식장으로 발령이 났다”고 말했다.

삼성 노사협의회가 회사에서 차량을 비롯해 운영에 소요되는 활동비·경비 등을 받으며 노조탄압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연승종 삼성에스원노조 위원장은 “한마음협의회(노사협의회) 대표는 차량과 주유비를 지원받고 있다”며 “노사협의회는 지배·개입과 부당지원으로 인해 자주성이 훼손되고 변질됐을 뿐만 아니라 노조탄압의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고 했다. 조장희 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 부지회장은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이미 시스템으로 정착돼 있기 때문에 (사과 이후에도) 교섭 무력화와 노조원에 대한 징계 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며 “노조와해 사건의 직접적 피해자인 삼성지회·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대해서는 어떠한 (후속)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와해 사건 재판받은 삼성 임직원 30명 중 29명 현직

이들은 삼성이 ‘노조파괴’에 공모·관여한 사실이 판결을 통해 드러난 임직원에게 인사상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을 비판했다.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법은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을 포함한 26명에게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와 관련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 등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같은달 삼성에버랜드 노조와해 사건 관련자 13명은 업무방해죄 등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민주노총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삼성 노조와해 사건으로 검찰이 기소해 재판을 받은 전·현직 임직원 30명 가운데 1명을 제외한 29명이 현직이다. 여전히 인사와 노무관리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들도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삼성은 노조파괴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임직원을 비롯한 관여자 그 누구에게도 인사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며 “부당노동행위 범죄 행위자에 대한 징계를 거부하는 것 역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취업규칙 등을 통해) 명시적인 징계규정이 존재하고, 이전의 징계사례와 비교했을 때 징계를 하지 않는 것이 이례적인 경우 징계를 거부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이거나, 이전의 범죄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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