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어제 출근해 보니 책상에 토론회 자료집이 놓여 있었다. 지난 15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국제노동기구(ILO) 노동자활동지원국과 공동주최한 국제토론회였다. ‘노조할 권리와 ILO 핵심협약 비준: 코로나 위기 대응의 주춧돌’이라는 토론회의 제목에 나는 그만 열이 뻗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촛불대선 공약의 이행을 위해서 국회에 제출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노조법) 개정안을 검토하는 토론회였는데, 그 발제와 토론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자료집 표지에 쓰인 제목만 보고 그랬다. 오래 전부터 반복해서 나는 ‘노조할 자유’라고 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만큼 ‘노조할 권리’라고 하는 데 불만이다.

2. 권리는 권리고 자유는 자유다. 자유가 권리로 추락하면, 더는 자유는 없다. 이 세상, 즉 근대 이후 세상이고 노동에 대해서는 자본의 세상인 이 세상에서 권리는 자기결정(계약)과 권력(법)에 의해 비로소 보장되는 것인데 대해, 자유는 타인과의 계약이나 국가의 법률에 의하지 않고 처음부터 인민에게 보장된 것이고 그 자유는 국가가 법률로 제한하지 않는 한 제한받지 않는다. 자유는 국가의 법률인 국적법과 헌법에 의해 국민의 지위를 갖기 전부터 사람에게 보장된 것이다. 18세기 말 프랑스혁명·미국독립전쟁 등 혁명과 전쟁을 통해 시민의 자유는 본래 그런 것, 즉 사람이 이 세상에 갖고 태어나는 것이라고 선언했고, 그것으로 이 세상은 태어났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라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1789) 1조는 자유를 선언함으로써 이 세상의 탄생을 선언한 것이었다. 그 선언의 4조는 자유는 “타인에게 해롭지 않은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5조는 국가의 “법은 사회에 해로운 행위가 아니면 금지할” 수 없다고 규정해서 자유와 법의 관계를 분명히 밝혔다. 이로써 시민, 즉 당시에는 자산계급인 부르주아지는 권력에 압제와 수탈에서 벗어나 자유의 세상에서 살 수가 있게 됐다.

노동자에 대해서 그렇지 않았다. 당시에는 시민계급이 노동자를 고용해서 사용할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사업장에서 노동자에겐 자유를 보장하지 않았다. 프랑스혁명 시기에 르 샤플리에법은 노동자가 단결해서 사용자인 시민계급 부르주아지를 상대로 행동할 자유를 금지했다. 1800년초 영국에서도 단결금지법이, 프로이센(독일)에서도 그러한 법이 존재했다. 이렇게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해서 교섭과 쟁의 등으로 활동할 자유를 금지하는 법질서를 두고서 바로 단결금지법체제라고 부른다. 이후 이 세상에서 노동운동사는 이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노동자투쟁의 역사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1870년대 영국·프랑스·독일 등에서 국가법으로 노동자가 단결해서 사용자를 상대로 활동하는 것을 더는 형사처벌하지 않게 됐다. 여기서 노동자의 단결 활동이란 교섭과 파업 등 단체행동을 말하는데, 무엇보다도 그것은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노무제공을 거부하는 파업을 국가권력이 법으로 범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가 그 계약상 의무인 노무제공을 하지 않은 것을 법으로 범죄로 규정해서 처벌한다면 국가권력이 노동자에게 사용자에 대한 노동을 강제하는 것이고, 거기서 노동자의 자유는 없다. 일해야 할 강제만 있을 뿐이고 일하지 않을 자유는 노동자에게 없다. 단결금지법이라고 해서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해서 활동하는 모든 것을 범죄로 불법으로 규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주체, 목적(대상), 시기와 절차, 수단과 방법 등을 정해 놓고서 그걸 위반하게 되면 처벌하는 법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노무제공을 거부하는 것인 파업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며 그 단결금지법제를 폐지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단결금지법 폐지는 노동자의 자유를 선언한 것이었다. 노동자에게 노조할 자유를 선언한 것이었다.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일하지 않을 자유가 노동자에게 있음을 확인한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대단한 권리의 선언이 아니었다. 이 세상의 자유를 선언한 근대 시민의 인권선언과 헌법전에서 마땅히 포함해야 했던 노동자 자유의 선언이었다. 한 노동자가 일하지 않는 걸 처벌해서는 안 되는데 어째서 여러 노동자가 일하지 않는 파업은 다른 것이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노동자의 자유로 찾아 선언한 것이었다.

3. 대한민국에서 노조법은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해서 교섭과 쟁의 등으로 활동할 자유를 규제하고 있다. 일반 노동자뿐만 아니라, 교원과 공무원인 노동자들도 이 법률이 준용됨으로써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자유는 이 법의 통제 아래 있다. 어떻게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하고 운영해야 하며 사용자를 상대로 교섭하고 쟁의해야 하는지 세세하게 규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노동자 스스로 노조를 조직해서 활동할 자유는 금지됐다. 이 법으로 국가권력이 보장해 줘야 행사할 수 있는 것이 됐다. 이 노조법이 정한 대로 노동자는 노조를 조직할 수 있고, 그 법이 정한 대로 그 노조는 사용자를 상대로 교섭하고 쟁의할 수 있는 것이 돼 버렸다. 노동자끼리 노조를 조직하는 것도, 그 노조가 활동하는 것도 이 나라 노동자에겐 자유가 아닌 것이고, 국가권력이 법으로 보장해 줘야 노동자는 비로소 노조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대한민국에서는 노동자들은 노조할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오늘도 국가권력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겠다. 그런데 말이다. 어째서 노동자가 임금 등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단체를 만들어 그 활동을 하는 것을 이렇게 국가가 법을 통해 규제한단 말인가. 한번쯤은 이런 의문을 갖고 그 질문을 던질 만한데 없다. 사용자를 포함한 일반 국민이 자신의 경제적 이해를 위해 단체를 만들어 활동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노동자도 할 만도 한데 없다. 그저 오늘도 국가권력을 상대로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라며 노조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국민에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 것이니 노동 3권을 보장한 노동자의 경우와는 다르다고 당신은 말할지 모른다. 자유권목록이 아니라 사회권목록 한편에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노동자 기본권인 노동 3권을 감히 결사의 자유에 비교할 수 있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혹은 국가권력에 대한 자유와 사용자에 대한 권리를 혼동하고 있다고 내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노동자에게 노조를 조직해서 활동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단체를 조직해서 활동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국가가 법률로 보장해 주지 않아도, 국가가 법률로 제한하지 않기만 하면 할 수가 있는 자유라는 점에서 전혀 다르지 않다.

여기서 한번쯤 생각해 보자. 이 세상에서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해서 활동하는 걸 국가가 법으로 보장해 줬기에 비로소 할 수 있었던 것이겠는가. 그저 국민 일반이 결사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처럼 그렇게 노동자는 조직해 활동했던 것이고, 그걸 갖가지 이유를 대서 법으로 금지했다가 그 금지를 폐지했던 것이다. 만약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 노동자들이 국가에 노조할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면 그건 거기서 노동자들은 노조(활동)를 권력이 보장해줘야 한다고 믿는 것이고 아직 노동운동이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 수백만·수천만으로 조직된 단체가 활동한다면, 거기서 권력은 그런 노동자단체가 설립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해고자가 가입했다고 인정해 줄 수 없다고 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 단체를 인정해 주고 그걸 국가법의 통제에 두고자 할 것이다. 독일 등 노동선진국에서 노조는 그런 것이었다. 결코 국가가 법으로 조직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줘서 노동자가 노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국가가 법으로 노조에 대단한 권리 내지 권한을 보장해 주는 경우라면 다를 수 있다. 일정한 경우 노조가 사업장 경영에 관한 공동결정한다든지, 국가의 주요의사결정에 참여한다든지 하는 경우인데, 우리와는 너무 먼 이야기다.

4. 뭐 권리든 자유든 노동자가 노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인데 그게 그거 아니냐고 꼬투리잡지 마라 말할 수도 있겠다. 노조할 권리든 노조할 자유든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해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니 표현만 다를 뿐 다를 게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노조할 권리로 대하는 것과 노조할 자유로 대하는 것은 그걸 대하는 노동자의 자세는 같을 수가 없다. 국가의 법에 기대겠다는 것과 스스로 하겠다는 것은 같을 수가 없다. 그래서 ILO 핵심협약인 결사의 자유 비준을 위해 노조법 개정을 비판하는 오늘은 한번쯤 이 세상에서 노동자의 자유로서 노조할 자유를 새길 필요가 있다고 나는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노동법 타령하는 자의 넋두리라고 여길지라도.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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