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온다 소리에도 울음 그칠 줄 모르던 아이가 곶감 준다 소리에 뚝 그쳤다는 건 옛날 얘기다. 동네 책방 마당에 감 따러 가자고 아이를 꾀어 보는데 듣는 척도 안 한다. 초콜릿 맛 아이스크림과 넷플릭스 시청권 따위를 내밀고서야 나설 수 있었다. 곶감보다 맛있는 게, 감 따는 것보다 재밌는 일이 널린 시절이다. 어릴 적 곶감 하나 달라고 조르면 엄마는 딱 잘라 없다고 말했는데, 어느 밤 제사상엔 분이 뽀얗게 오른 곶감이 틀림없이 올라왔다. 부엌 창고 깊숙한 곳을 뒤지다 등짝을 맞곤 했다. 클릭 한 번이면 다음날 새벽에 무엇이든 받아 볼 수 있는 시절에 감을 따고 껍질을 깎고 실에 꿰어 내거는 일은 보통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잘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일도 익숙지 않다. 그 모든 과정을 돈으로 사는 게 지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중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 일이다. 요즘 아이들은 택배 왔다 소리에 우는 소리를 그친다.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곶감보다도 택배가 무섭다.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것이길래 택배노동자 과로사 소식이 잇따른다. 자식 앞세운 늙은 아빠가 아들이 생전에 꿰매 입고 다닌 작업복을 들고 길에서 운다. 로켓배송처럼 날아든 부고에 남은 가족 눈물 마를 날이 없다. 가을이라고 창가에 곶감이 마른다. 그 과정을 유심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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