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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어시 근로감독 열차 출발했다문서희 청년유니온 기획팀장
▲ 문서희 청년유니온 기획팀장

“좋게 말해도 안 주길래 신고하러 왔습니다.”

지난달 17일 패션스타일리스트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제목이었다. 청년유니온이 만난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들은 월급이 밀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특히 일을 그만두는 경우 스타일리스트가 월급을 지급하지 않고 버티기도 한다. 이럴 때 어시들이 쓰는 최후의 수단은 “경찰에 신고하겠다”였다. 이렇게 하면 바로 월급을 받는다고 한다. 어시들은 무엇이 힘들고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말해 왔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청년유니온이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했던 건 이제는 관할 부처가 나서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이었다.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일주일 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으로부터 근로감독을 실시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실태조사 결과발표 이후 공론화가 이뤄지는 과정 속에서 일터에 있는 어시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많이 궁금했다. 어시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 기사를 공유해도 유의미한 리액션이 있진 않았다. 당연하다. 어시들은 일하느라 바쁘니까.

그런데 이번에 근로감독이 실시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양상이 달라졌다. 자기도 제보하겠다며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업계 구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짚어 주는 토론이 이뤄졌다. 어시에게 이번 근로감독 시행은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던 ‘그들만의 속사정’을 정부기관에서 귀기울여 듣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특별근로감독 대상으로 선정한 6인 스타일리스트에 관한 구체적인 제보를 받고자 오픈채팅 링크를 만들어 어시단톡방에 올렸다. 글을 올리자마자 채팅방 알람이 울렸다.

“체불임금은 안 받아도 되니 업계 문제개선에 도움을 주고 싶다.” “하루종일 일해도 월 50만원 받는 게 정상이냐.” “혹시 6인 외 다른 실장들 제보도 받는지.”

기본적인 상담부터 시작해 제보까지 다양한 문의가 들어왔다. 당사자들이 제보를 안 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다. 오히려 오픈채팅과 같은 당사자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미리 열지 못한 게 아쉬웠다. 익명으로 연락할 수 있는 오픈채팅은 피해 사실을 제보하는 당사자에게 안심을 줄 수 있는 장치로 작동했다.

청년유니온은 당사자와 근로감독관의 만남을 도와주고 있다. 대면하기 전, 당사자로부터 해당 스타일리스트와 일했던 당사자임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들을 받고 있다. 당사자 대부분 카드사와 은행에 연락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자료를 전달해 주고, 자신의 시간을 들여 자료들을 더 자세하게 정리해 주고 있다. 마치 이삭을 줍듯 필요한 자료 하나하나 모으고 있다.

최근 일주일 동안 당사자와 담당 근로감독관을 만나면서 이번 근로감독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무래도 근로계약서조차 작성하지 않은 업계이니 사업장 조사를 나갔을 때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근로감독관 입장에서는 조사를 나가기 전에 될 수 있는 한 증거자료를 많이 모으고자 한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피해사실에 대해 제보는 할 수 있지만, 아무리 그만둔 사람이어도 자신을 드러내고 진술서를 작성하는 것은 업계를 떠날 각오까지 필요한 일이었다. 해당 스타일리스트가 보복으로 자신의 이름을 소위 ‘블랙리스트’에 올릴 수 있다. 근로감독관을 만나며 당사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 이름만 실장에게 알려지는 건 괜찮아요. 다만 그때 당시 같이 일했던 혹은 지금 일하고 있는 어시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그게 걱정이에요.” 온갖 협박과 욕설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일했던 당사자는 자신의 이름이 실장 귀에 들어갔을 때 벌어지는 상황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듯 했다.

난항이 예상되는 근로감독이지만 실효성 있는 결과가 꼭 나와야 한다. 피해 당사자가 존재하기에 업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업계를 바꿀 수 있는 첫 단추가 근로감독이 돼야 한다. 이후에도 개별 구제가 이뤄질 수 있는 유인책이 되고, 업계에 만연한 노동착취 구조가 없어져야 한다.

문서희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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