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인력시장같이 매일 사측에서 ‘콜 지원 몇 명, 창고·매장 몇 명’을 요구해요. 샤넬이 직원을 저렴한 인건비로 굴리려고 하는 게 눈에 보이니까, 그런 것 때문에 직원들이 화가 많이 난 거예요. 충분한 협의가 된 것도 아니고, 일방적인 통보거든요.”

샤넬코리아(유)에서 근무한 지 13년된 A씨는 “젊음을 바친 회사에 배신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수도권의 한 시내면세점에서 샤넬 화장품을 판매하던 그는 지난 3월부터 면세점을 벗어나 서울·경기 백화점 곳곳에 간다. 파견되는 백화점은 매주, 매달 다르다. 사측은 3월부터 코로나19로 면세점 매출이 하락했다며 면세점 판매노동자들에게 인사이동을 요구했다.

노동자들은 처음에는 회사를 돕겠다고 생각했지만 무리한 일정이 갈수록 심해졌다. 본사 담당자가 메신저 단체대화방에 갑자기 초대해 하루 전에 근무지를 통보하기도 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A씨는 왕복 4시간 거리의 지점으로 파견돼 아픈 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하루 숙박한 적도 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다른 동료들은 대전·부산·인천 매장으로 파견됐다.

한 직원은 갑자기 물류창고에 가게 돼 높은 선반에서 물건을 꺼내다 허리를 다쳤다. 동료들이 “갑자기 물류 일을 어떻게 하냐”고 사측에 항의했지만 “(물류인력) 비용지원은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 A씨는 “동료들은 ‘회사에서 우리를 나가라고 하는 건가’라고 받아들이고 있다”며 “원하지 않는 노동을 하는 게 문제인데 사측은 자꾸 ‘고용유지’만을 이야기한다”고 비판했다.

하루 전 메신저로 타지역 근무 지시
판매노동자가 물류센터 근무까지


12일 <매일노동뉴스>는 샤넬코리아 면세점 노동자들의 10월 근무일정표를 입수했다. 부산 시내면세점에서 일하던 노동자 7명은 매주 2~4일씩 대구·울산·포항·마산·창원·광주로 각각 파견됐다. 이번주에는 대구·마산·부산에서 일하다 다음주에는 광주로 이동하는 식이다. 업무변경도 잦았다. 이번주에 고객에 신제품 출시를 알리고 매장 방문을 안내하는 콜업무를 하다가 다음 주에는 매장에 파견된다. 서울 시내면세점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이번달에 서울·경기 11개 백화점 매장을 돌아야 한다. 낯선 지역과 업무, 사람에 적응하는 것은 모두 노동자의 몫이다.

높은 외국어 구사 능력을 요구받던 면세점 노동자들은 갑자기 전문가 수준의 화장술이 필요한 로컬(백화점)·행사 현장이나 고객불만처리센터·물류센터로 배치됐다. A씨는 “2년차 동료 직원은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불만처리센터 근무 한 달 만에 퇴사했다”며 “행사 매장은 매출 목표를 매우 높게 잡아 파견된 면세점 직원들이 자비로 물건을 구입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면세점 노동자들은 인사이동 이후 수입도 줄었다. 월급의 20~40%를 차지하던 판매 수당이 사라져서다. 공항 면세점 근무자들은 공항수당을 받는데 이마저도 없어졌다. 매주 다른 지역·업무로 파견돼 차비와 식비 같은 지출도 늘었다. 당초 사측은 숙박비도 지원해 주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최근 면세점 노동자들이 대거 노조에 가입하자 숙박비와 약간의 이동수당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상식적 범주 벗어난 인사이동”
“사전협의해 실시, 노조와 대화 중”


경남의 한 공항면세점에서 일하는 14년차 샤넬코리아 직원 B씨는 “백화점 매장에는 ‘코로나19로 메이크업 서비스가 어렵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지만 직원들은 손님들에게 제품 시연을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계속해 왔다”며 “직원들이 전국을 돌며 고객의 마스크를 벗기고 제품 시연 업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B씨의 동료들은 광주·포항·대구·진주·마산·울산 백화점을 돌고 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사넬코리아지부(지부장 김소연)는 지난달 24일 메이크업 서비스 중단을 요구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지만 사측은 인사이동을 강행하고 있다.

박경수 서비스연맹 법률원장(공인노무사)은 “회사가 인사이동을 주장하려면 관행으로 성립된 범주여야 한다”며 “근무 지역에서 가까운 곳으로 발령하는 게 아니라 면세점 판매사원을 물류센터로 보내는 것은 상식적 범주를 넘어선 갑질”이라고 지적했다.

샤넬코리아 관계자는 “이번 인사이동 배치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도 직원 고용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함”이라며 “적법한 절차로 해당 직원들과 사전 협의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노조측 요구 사항을 충분히 검토하기 위해 진정성 있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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