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과후강사노조

방과후강사는 매년 초·중·고등학교와 계약을 맺는다. 올해 초에도 전국 12만명의 강사들이 올해 수업을 하기로 계약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계약서는 무용지물이 됐다. 정규수업·돌봄교실과 달리 방과후수업은 ‘셧다운’ 되면서다. 방과후강사들은 고용보험에도 가입되지 않아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 채 위기에 내몰렸다. 지난 1월 국내에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확인된 이후 9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방과후강사들의 삶은 어땠을까. 11일 <매일노동뉴스>가 경기도 이천 방과후강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2주씩 연기된 희망고문 … 보람은 곧 후회로

한정희(46·가명)씨는 20여년 전 이천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플루트를 가르치는 방과후강사 일을 시작했다. 한씨에게 플루트를 배우던 교사가 초등학교 방과후학교에 플루트 과목이 개설되자 그에게 지원하라고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한씨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연주하고 음악회를 여는 일이 즐거웠다. 입시 준비 위주의 개인레슨보다 보람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교 수업이 안정적으로도 느껴졌다. 개인레슨 비중을 조금씩 줄이고 방과후수업 비중을 늘려 갔다. 코로나19 직전에는 계약을 맺고 일하던 학교가 5~6개씩 됐다. 학교 수업만 하루 6시간일 정도로 꽉꽉 차 있었다. 개인레슨은 거의 하지 않았다. 방과후수업은 한씨의 주요 생계수단이 됐다.

코로나19 사태로 수업을 못 하게 되자 보람은 후회로 바뀌었다. 처음에 학교는 수업을 2주 동안 연기한다고 했다. 2주가 지나자 재차 2주가 연기됐다. 또다시 연기되길 반복했다. 한 달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수업 연기는 몇 개월간 이어졌다. 희망고문이었다. 일이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몰라 개인레슨을 모집하거나 다른 일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그제서야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집안 경제상황은 악화됐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3~4월 수입은 ‘0원’이었다. 한씨 남편도 같은 방과후강사여서 기댈 곳이 없었다. 나갈 수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우울증이 왔다. 한동안 누워만 있었다. 목 디스크가 닥쳤다. 대학생인 첫째 아이 보험을 해약했다. 남편은 카드 대출을 4천만원 받았다. 한씨는 조만간 보험을 하나 더 깰 계획이다.

이번 코로나19를 겪으며 한씨는 더 이상 방과후수업에 “몰빵”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방과후수업은 적당한 정도로만 하고 생계유지는 사교육 수업으로 대체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음악교육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누구도 (고용을) 책임지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허무한 마음도 들고요. 후회가 막급이에요.” 한씨는 희망고문을 끝내고 개인레슨을 위해 학생모집을 시작하려 한다고 했다.

“코로나19 상황에 정규직·비정규직 가르나”

방과후학교는 초·중·고등학교에서 정규 교육과정 이외 시간에 운영한다. 다양한 학습 욕구를 해소하고 사교육비를 경감하고 교육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1995년 교육개혁안에 따라 2003년까지 특기적성교육 등 방과후 교육활동이 운영됐고, 2005년 명칭을 ‘방과후학교’로 통합해 2006년 전면실시했다. 지난해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방과후강사(교원 제외)는 2018년 기준 12만명에 육박한다. 매년 학교와 계약서를 쓰고 일하는 비정규직이지만 일을 하지 못하게 돼도 실업급여는 받지 못한다. 프리랜서인 탓에 4대 보험에 가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일이 끊겨도 사회 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한 이유다.

김연정(49·가명)씨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김씨도 20여년 전 방과후학교가 특기적성교육 형태로 시작됐을 때부터 이천에 있는 초·중등학교에서 방과후강사로 플루트와 우쿨렐레·오카리나를 가르쳤다.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소도시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음악교육을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한 반에 계이름 모르는 아이들이 5분의 4 정도였는데 한 학기 수업을 끝낼 때는 한두 명을 빼고는 다 알았던 때도 있었어요. 뿌듯했죠.”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처음엔 곧 정상화되리라 생각했다. 교육청에 이미 방과후강사 예산이 책정돼 있어 수업이 잠시 중단되더라도 겨울방학에라도 수업시수가 보장될 것이라 예상했다. 방과후강사는 수업을 듣는 학생 인당 수강료를 받는 강사와 교육청 소속으로 정해진 시간당 수강료를 받는 강사가 있다. 김씨는 시간당 수강료를 주로 받는 강사였다.

한 달, 또 한 달을 기다려도 수업은 재개되지 않았다. 정규직 교사들은 코로나19 이후에도 온라인수업을 하는 방식 등으로 급여가 보전되는데 방과후강사는 대책 없이 버려지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방과후강사노조(위원장 김경희)의 요구로 교육부는 방과후강사들에게 방역·온라인 수업 도우미 같은 대체 일자리를 제공했지만 김씨는 참여하지 않았다.

“차라리 굶고 말지…. 안 했어요. 코로나19 상황에서 ‘너도 정규직 교사처럼 돈 받고 싶으면 임용고시 보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은 문제 있지 않나요. 기본적으로 사람이 살아갈 수 있게끔 하고, 또 사람이 사회적 동물인데 인정을 받고 살 수 있게 해야지요.” 김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김씨는 “안 쓰면서 사는 방법”을 택했다. 100만원 조금 넘는 남편 수입으로는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집안에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고, 들깨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강씨 역시 보험을 해약했다.


원격 방과후수업·돌봄교실 투입·고용보험 가입 제안

방과후강사들은 온라인수업을 대안 중 하나로 제안했다. 노조에 따르면 일부 학교들이 온라인수업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학교가 더 많다. 한씨는 “앙상블 연주팀에 속해 있어서 최근 화상으로 연습을 했다”며 “도움이 안 될 줄 알았는데 ‘1파트의 누가 이걸 해 보라’는 식으로 한 사람씩 연주를 시키니까 서로 더 긴장되고 효과가 좋았다”고 말했다. 한씨는 “한 사람씩 연주를 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음을 소거해 놓고 연습했다”며 “아이들도 기량이 다 다르니까 이런 식으로 선생님들이 시도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학교에서 5년째 방과후강사로 클라리넷과 오카리나·우쿨렐레를 가르친 박은혜(54·가명)씨는 “전공생인 음대 학생들도 휴대폰으로 수업하는데 취미로 배우는 방과후 수업 학생들도 원격 수업을 할 수 있지 않겠냐”며 “교육청·학교장 재량으로 하면 학교장들이 귀찮아서 안 할 가능성이 있으니 교육부가 지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방과후강사는 고용불안이 아이들 교육에도 보탬이 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악기는 특히 길게 보고 꾸준히 배워야 느는데 수업이 끊기면 학생들이 실력을 쌓을 기회를 잃어버린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고용보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경희 위원장은 “그동안 고용보험 가입 필요성을 크게 못 느꼈던 강사들도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고용보험이 절실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강사 1인당 학생 2명씩 20분씩 대면수업을 하는 하거나, 돌봄수업에 방과후강사를 투입하는 비중을 늘리면 좋겠다는 제안도 했다.

정부는 코로나19 여파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특수고용직·프리랜서에게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임시로 다른 일자리를 얻은 강사들은 고용보험에 가입됐다는 이유로 지원받을 수 없다. 김경희 위원장은 “임시로 다른 일자리를 얻지 않은 강사는 그나마 버틸 수 있어서”라며 “형편이 좋지 않아 대체 일자리를 구한 강사들은 오히려 지원금을 받지 못한 상황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노조가 지난달 16일부터 23일까지 방과후강사 1천247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월평균 수입은 지난해 216만원이었지만, 올해 13만원으로 급감했다. 응답자의 97.5%가 방과후강사가 주업이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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