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오랜만이었다. 갑자기 연락이 와 상담약속을 잡았던 것인데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끄적거리면서도 언제인지 가물가물할 정도이니 내가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사건을 담당했던 것도 오래 전의 일이고, 그를 다시 만난 것도 그랬다. 그는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으로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근처를 지나다 농성천막을 본 기억이 났다. 불법파견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사건과 통상임금 사건에 관해서 그는 물었다. 오래된 기아차 비정규직 투쟁의 인연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간략하게 답변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 사건들을 대리한 변호사들을 찾아가 상담할 것이지 왜 찾아와 내 시간을 빼앗는 거냐고 말하면서 말이다. 기아차 비정규직들이 하청업체들을 상대로 통상임금소송을 제기했고, 원청 기아차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의 결과도 전해 듣고 있었다. 통상임금소송 사건은 하청업체의 경영상태를 이유로 신의칙위반으로 기각됐고,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사건은 현대차 비정규직 사건과 마찬가지로 불법파견이라며 기아차의 근로지 지위가 인정돼 현재 대법원에서 진행 중이라고 듣고 있었다. 최근 내가 맡았던 기아차 정규직의 통상임금소송 사건이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이 났는데, 그 소식을 듣고서 그는 나를 찾아왔던 것이라고 짐작이 됐다. 어차피 하청업체에서 지급받은 금액은 기아차에서 지급받게 될 것에서 공제될 텐데 하청업체를 상대로 해서 기각당할 것 없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기아차를 상대로 청구해 지급받으면 될 일이었다. 현대차와는 달리 기아차의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니 원청 기아차에게서 지급받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이런 내 답변을 듣고서도 그는, 조합원들은 당장 지급받길 바란다고 하청업체로부터 지급받게 될 때 부제소합의 등에 대해 이것저것 추가로 묻고는 느닷없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비판해 줄 것을 내게 주문하는 거였다.

2. 지난 6월30일, 문재인 정부는 ILO(국제노동기구)의 “핵심협약인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 비준을 추진하면서 해당 협약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법률을 개정하기 위하여” 노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바로 이 노조법 개정안을 비판해 달라고 기아차 비정규 노동자 신성원은 내게 주문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주문이었다. 기아차 비정규직 투쟁에 몰두하는 그가 할 것이라고 나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비정규직 파업투쟁으로 손해배상 청구를 당했다며 ILO 협약에 위반하는 정부안이 문제라고 비난했다. 사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나는 문재인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에 불만이 많다. ‘결사의 자유’로 이 나라 노동자의 노조활동 보장을 바라본다면, 현 노조법은 전면적으로 개폐돼야 마땅하다. 이렇게 개폐 운운하고 보니, 일부는 개정하고 일부는 삭제하면 되는 것이라고 여길까봐 그 표현이 마땅치 않다. 차라리 전면적으로 폐지돼야 마땅하다고 바꿔 말하고 싶다.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노동자의 노조활동을 보장한다는 법, 노조법은 결코 노동자에게 노조를 조직해서 활동할 자유, 즉 결사의 자유 내지 단결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 못하다. 자유로서 보장한다면, 자유에 대한 억압을 규제해야 하기 위한 법이어야 한다. 노동자가 자유롭게 노조를 조직해서 사용자를 상대로 교섭과 쟁의 등 활동할 수 있도록 법은 그걸 억압하는 것을 규제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노조법은 이런 노동자의 자유를 규제하기 위해 존재한다. 노동자 중 어떠한 자는 노조에 가입할 수 없고 어떠한 방식으로 노조를 설립해야 하고 어떻게 운영해야 하고 교섭과 쟁의는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노동자의 노조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이 나라에서 노조법은 존재한다. 부칙을 포함한 100여개 조문 중 불과 몇 개의 조문을 제외하고는 노동자의 자유를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나는 노조법을 전면적으로 폐지하든지, 아니면 교섭과 쟁의 등 노조 활동에 대한 민·형사책임을 면제하는 몇 개의 조문만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를 위한 법이라면 자유의 억압을 규제하기 위한 법이어야 하는 것이지, 자유를 제한하고 금지해서 규제하기 위한 법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이런 노동자의 자유에 대한 내 주장과 태도로 보자면, 신성원이 말하지 않아도 나는 문재인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에 불만을 쏟아내야 마땅했다.

3. 그가 다녀간 직후인 지난 23일, 기아차비정규직지회가 속한 금속노조가 서울 여의도 더불이민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이 ILO 기본협약 정신에 위배된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금속노조는 “해당 사업장의 종사자 아닌 조합원이 사업장 내 노조활동을 제한하는 내용, 기업별 노조 임원 자격을 제한하는 내용, 근로시간면제 제도를 유지한 내용,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연장한 내용, 생산시설을 점거하는 쟁의행위를 금지한 내용이 ‘협약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하고, “실업자·해고자의 노조가입을 허용하는 내용은 특수고용직이나 간접고용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지 않아 부분적으로만 부합한다고 설명했다”고 <매일노동뉴스>는 보도했다(매일노동뉴스 2020. 9. 24.). 국회에서 ILO 기본협약에 부합하게 노조법 개정이 되도록 금속노조는 기자회견을 통해서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을 비판한 것이다. ILO 기본협약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금속노조가 파악하는 개정 사항을 뽑아 비판한 것이다. 산별노조로서 사업장에서 조합활동을 하는 걸 제한하는 개정 내용을 문제라며 입법돼서는 안 된다고 밝힌 것이다. 이렇게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노조의 비판을 읽다 보면,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자, 노조가 바라보는 자유는 한없이 작게 여겨진다. 그것으로는 신성원 같은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까지는 막지 못한다. 사업장에서 산별노조 활동이 보장돼도 주체·목적·절차, 그리고 수단과 방법까지 교섭과 쟁의 등을 규제하고 있는 노조법 규정들이 존재하는 한 노동자의 투쟁은 불법으로 취급돼 손해배상과 처벌을 받게 된다.

4. 이렇게 끄적거렸다고 노조법을 전면적으로 폐지하고서 ILO 기본협약을 비준해야 한다고 내가 주장하고 있다고 당신은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일찍이 나는 결사(단결)의 자유 등 ILO 기본협약을 당장 비준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노조법 개정을 핑계로 내세워서 비준을 미뤄서는 안 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나라의 노조법은 전면적으로 폐지돼야 마땅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제돼야 비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은 노동자의 자유를 알지 못한다. 심지어 노동자, 노조조차도 그렇다. 자유의 억압이 당연한 것으로 태어날 때부터 까마득하게 법에 규정돼 권력이 집행해 왔던 터라 사용자 자본도 권력도 노동자도 모두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자유가 무엇인지 헤아리며 바로 잡고서 비준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비준하지 않겠다는 것에 다름 아님을 알아야 한다. 자유의 비준을 통해 자유의 의의를 탐구해야 할 처지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서 비판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의 자유에 관한 한, 이 나라는 자유를 모르는 결핍의 상태에 있음을 알고서 주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5.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하겠다. 본래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 단결의 자유란 누가 보장해 줘야 할 자유가 아니다. 누가 보장해 줘야 하는 것이라면 그건 자유가 아니다. 노조법 등 국가의 법으로 권력이 노조의 설립과 활동을 보장해 줘야 노동자에게 결사의 자유인 단결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이 대한민국 국민이면 갖는 결사의 자유처럼 그렇게 노동자끼리 단결해서 활동하는 자유란, 법 이전에 보장돼 있는 것이다. 노동운동이 있고 나서 노조법이 있었다. 노조법이 있고 나서 노동운동이 있게 된 것이 결코 아니다.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해서 활동하는 것도 그렇게 하도록 노조법이 보장해서가 아님을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하고 싶다. 그런데도 노조법에 갇혀서 법적 보장을 노조가 주장하고 있다면,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상대해야 하는 권력과 자본이 만만히 취급해도 될 정도로 단결의 힘이 없는 것이 아닌지 자신을 살펴봐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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