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유하는 그림 그리기 모임 중인 ‘다시는’ 성원들.<명숙 상임활동가>

연일 내리던 비가 주춤했다. 해도 비추고 바람도 분다. 바깥 활동을 하기에 참 좋은 날씨다.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에서 2개월간 해 오던 ‘치유하는 그림 그리기’ 마지막 날이다. 이번에는 서울 남산의 라틴공원에 모여 수채화를 그리기로 했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이고 나무들도 푸르다.

“오, 실력이 늘었는데?”
“이거 이용관님 얼굴 맞아요? 하하.”
“하진 엄마는 벌써 두 장째야? 빠른데! 히히.”
“이현정 동지는 그림을 잘 그려.”

웃음소리가 낮지만 경쾌하다. 조금 늦게 도착한 나는 사람들이 그린 그림을 보고 놀랐다. 실력들이 좋다. 어떤 사람은 지나가다 본 개를 그리고, 어떤 사람은 앞에 있는 나무를 그리고, 어떤 이는 건물을 그렸다. 나는 이들을 그렸다. 오늘은 김태규님의 어머니 신현숙씨와 누나 김도현씨, 고 김동준님의 어머니 강석경씨,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가 함께했다. 원래 그림 그리기 참여 성원인 이한빛 PD의 어머니 김혜영씨는 일 때문에, 고 김용균님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무릎 수술로 참여하지 못했다. 그 외에도 ‘다시는’에 함께하는 김용균재단의 권미정 사무처장, 이현정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이 왔다.

함께 그림 그리기

“용균 엄마는 언제 그렇게 실력이 늘었대? 정말 잘 그리던데.”
“매일 그렸다잖아. 그러니까 늘지.”

최근에 방송된 가수 이상은과 함께 한 콘서트에서 김미숙씨의 그림 실력이 화제가 된 것이다. 그림 그리기를 이끌어 간 선생님은 마법사 이영주씨다. 두 달간의 프로그램을 마치는 날이라 이영주씨는 수채화를 쉽게 그릴 수 있는 펜을 선물로 준비했다. 프로그램으로 하는 그림이 마지막일 뿐, 그림 그리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그는 가족들에게 매일 그림을 그리라고 권유했다. 모임이 없더라도 집에서 사무실에서 그리라고 했다.

이용관 씨는 아들을 보낸 후 상담이나 치유프로그램 등에 많이 참여했다. 아들이 떠난 후 공허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도무지 가눌 수가 없어서다. 가족을 잃은 책임감과 의무로 산업재해 사건에 대응하는 활동을 하고 있으나 부담이 많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이번 그림 그리기는 여러 의미가 있었다.

“한빛 엄마는 그 사건 이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너무 힘들어해요. 그런데 그림 그리기는 좀 가벼우니까 함께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래야 편하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일은 (산재 관련) 활동이 아니라 서로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특히 그림 그리는 나를 보면서 나도 일상을 찾을 수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봤어요. 저는 한빛이가 죽고 활동이 아닌 다른 걸 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나도 일상의 여유라는 것을 가질 수 있구나, 그런 느낌.”

그림에 몰두하면서 마음과 생각이 비워지고 돌아보게 됐다며, 그게 치유의 과정이 아니겠냐고 했다. 무엇보다 다른 치유프로그램들처럼 상처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방식이 아니어서 좋았다고 했다. 치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슬픔과 고통으로 부대끼는 마음을 그림에 붙들어 둬서가 아닐까.

강석경씨는 이용관씨가 그림을 그리다가 울면서 한빛이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고 했던 말이 인상 깊었다고 한다. 그리우면 그립다고 말하고 눈물이 나면 울고, 그래도 부산스럽지 않게 바라봐 줄 사람들이 생긴다는 건 큰 위안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그림을 그리려고 서울로 올라올 때 엄청 행복했어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그림 그리자고 했을 때 무슨 도움이 될까 했는데 아니었어요. 재미가 있기도 하고. 아무래도 제 주변에 있는 것들을 그리다 보니 저를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한번은 소주병을 그렸어요. 동준이가 가고 제가 잠을 못 자요. 병원도 가고 약도 먹고 그랬는데…. 사실 지금도 약이나 술이 없으면 잠을 못 자요. 소주병을 그리다 보니까, 이리 살면 안 되겠구나 싶기도 하고. 동준이를 위해서 내가 더 씩씩하게 활동해야지, 건강해야지 싶기도 하고요. 그런 걸 돌아보고 속사정을 서로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모임이었던 것 같아요. 활동하다 만난 사람들한테는 속내를 편하게 말하기 어렵잖아요.”

응시하며 보듬기

사실 신현숙씨는 그리기 모임에 많이 참여하지 못했다. 아들의 산재 사망과 관련한 재판이 6월 중순에 있었기 때문이다.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다.

“(다시는 가족 중에) 태규가 최근에 세상을 간 거잖아요. 동준이 엄마가 그랬어요. 재판 끝나면 다 끝날 것 같아도 재판이 끝나면 마음이 더 가라앉을 수 있다고. 재판은 끝나도 유족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보이지 않아 힘들 수 있다고. 정말 그렇더라고요. 사장은 항소를 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보이지도 않고.”

지금도 신현숙씨는 산재 사망사건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천불이 난 것처럼 들끓는다. 얼마 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알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혈압이 올랐단다. 의사가 뭘 했냐고 물어서 침대에서 페이스북으로 산재 뉴스를 접한 게 전부라고 했더니, 아마도 그걸 보고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으니 당분간은 뉴스도 보지 마라고 했다고 한다. 강석경씨는 이미 그 몸의 반응을 알기에 신현숙씨에게 천천히 몸을 살피며 하라고 당부하곤 했다. 아픔을 겪어 본 사람들이기에, 때로는 눈물로 들썩이는 어깨를 보고 말없이 토닥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는’ 신입회원 박소영씨도 그림을 그리며 아픔을 이야기하고 함께 울고 웃는 모임이 좋아 가입했다. 박소영씨 남편 고 김일두님은 건설회사에서 현장공사팀장으로 일하다 과로와 직장내 괴롭힘으로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선택을 했다. 딸 하진이와 살아 내야 하는 삶도, 남편의 고통을 미처 알아보지 못해 자책하던 속상함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박소영씨는 가입하던 날, 비빌 언덕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남편의 죽음을 산재로 인정했지만 회사는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고소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다시는’ 활동으로 알게 돼 소송을 할 예정이다. “힘들더라도 죽은 남편이 억울하지 않게, 남편을 다시 만났을 때 떳떳하도록 노력할 수 있어 고맙다”고 했다.

그림 그리기 수업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구름이 끼고 날이 어두워진다. 비가 내리겠구나 싶었는데, 정류장에는 이미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뭇잎들이 비를 막아 주고 있어서 몰랐던 것이다. 어쩌면 ‘다시는’ 가족들은 서로에게 비를 가려 주는 나뭇잎들은 아닐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상을 유지할 힘을 얻고 있는 게 아닐까. 치유란 거창한 프로그램이라기보다 아팠던 사람이 아픈 사람을 응시하는 과정 중에 생기는 게 아닐까. 서로의 고통을 응시하며, 서로를 보듬고 나를 붙들고 다시는 가족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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