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나온 연구보고서에 코로나19와 여성의 관계를 ‘위기의 충돌’로 표현하더군요. 코로나19 이전부터 존재했던 불평등한 사회·경제적 위기가 코로나19라는 재난 위기를 통해 촉발되는 현상을 뜻하죠. 기존에 성차별에서 비롯된 불평등이 코로나19가 초래한 위기와 충돌하면서 더 커지고 있어요.”

김원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여성노동자회가 16일 오후 온라인으로 개최한 ‘여성노동 현실 진단과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코로나19 위기는 젠더 편향적 위기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면노동, 새로운 불평등 요소로 등장
주춤했던 고용중단여성 폭증세로 전환


기존 성차별적인 이중노동시장과 헐거운 고용안전망이 코로나19 위기 상황으로 전면화했다는 지적이다. 엄청난 전염력을 지닌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대면노동’은 새로운 불평등 요소로 등장했다. 대표적인 대면노동이 보육·요양서비스·간호 같은 돌봄노동이다. 그리고 돌봄노동의 대부분은 여성노동자가 수행한다. 저임금 돌봄노동에 종사한 노동자는 이제 건강과 안전이냐, 소득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김 부연구위원은 “대면은 돌봄과 환대라는 여성적 노동의 구성요소로 감염병 시대 일자리 위기와 노동안전 위험은 여성노동의 위기나 다름없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공적 돌봄시스템이 중단되면서 사회서비스 영역으로 확대하던 돌봄이 가족의 영역으로 회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코로나19 위기가 확산한 지난 4월 여성 비경제활동인구는 지난해 4월 대비 43만명 증가했는데 경제활동 중단사유 중 육아와 가사가 27만3천명을 차지했다. 7월에도 여성 비경제활동인구는 26만4천명이 늘었는데 이 가운데 21만7천명이 육아와 가사로 경제활동을 중단한 경우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인 올해 1월과 2월만 해도 여성 비경제활동인구는 감소세가 확연했다. 특히 육아와 가사로 비경제활동 상태로 돌아선 여성취업자는 1월 20만2천명, 2월 10만명이 각각 감소했다. 점점 줄던 고용중단여성(경력단절여성)이 코로나19로 급증하고 있다는 의미다.

‘성장’ 아닌 ‘돌봄’ 주도 회복으로 전환해야

그렇다면 정부의 대응은 어땠을까. 김 부연구위원은 “특별고용지원업종에 음식점이나 학교 등 급식시설, 요양시설, 중소 병·의원 같이 여성집중 업종은 포함되지 않는 등 고용유지 정책에서 여성노동자가 배제됐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제시한 한국판 뉴딜 정책에도 여성노동자를 위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부는 디지털 뉴딜을 내걸고 비대면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는데 대면 접촉이 불가피한 돌봄노동을 디지털 돌봄, 돌봄로봇으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독거노인에게 인공지능 말벗 스피커를 제공하고, 어르신·장애인 신체활동과 간호·간병 업무보조 지원을 위한 돌봄로봇을 개발한다는 식이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뉴딜 같은 성장 회복 주도에서 벗어나 돌봄 주도 회복으로 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무급노동, 그림자노동으로 폄훼되고 있는 돌봄노동을 재평가하고 필수노동으로 지정하자는 것이다. 마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가족구조 변화와 여성취업 확대, 고령화로 돌봄 의존성이 높아져 더 이상 여성의 무급 돌봄노동에 무임승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돌봄노동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공적 돌봄 서비스 인프라 투자로 고용을 창출하면서 당면한 돌봄 위기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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