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노조

#. 자정이 갓 넘은 새벽시간. 한 노동자가 헤드랜턴 하나에 의지해 전기철도 빔 위에 올랐다. 전차선 설치·보수 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빔 높이는 10미터가 넘었지만 이 노동자는 추락방지를 위한 안전고리를 걸지 않고 빔 위를 걸어다녔다. 빔 인근에는 안전고리를 걸 수 있는 수평바가 없다.

#. 4.5미터 높이의 삼각(A형)사다리 꼭짓점 위에 직사각형의 철판을 올리고 노동자 두 명이 올라탔다. 전차선에 전기를 공급하는 5.2미터 높이 전차선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서다. 한 사람은 철판 오른편에 서서 작업하고, 다른 한 명은 철판 왼편에 균형을 맞추듯 앉아 보조작업을 한다. 하지만 바퀴 달린 사다리에는 고정 지지대가 없어 자칫 추락할 수 있는 상황. 또 다른 노동자가 사다리를 잡고 있지만 위태롭기만 하다.

건설노조가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한 전차선 설치·보수작업 현장 모습이다. 노동자들은 직접 만든 ‘지네발 사다리’를 타고 5미터 높이 전주에 오르기도 한다. 노조는 “발주처가 제대로 된 장비를 마련하지 않아 노동자들은 이름도 없는 장비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며 “칠흑 같은 어둠에 빔 위를 안전장치도 없이 곡예하듯 넘나들고, 삼각 사다리 위에서 서커스하듯 일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전차선 노동자 14일 울산서 추락사고

전차선 작업 노동자들은 KTX, 새마을호·무궁화호 열차, 지하철 같은 전기철도의 전차선을 교체·보수하는 일을 한다. 폭풍으로 전차선이 끊겼을 때 복구하는 업무도 이들 몫이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국가철도공단(옛 한국철도시설공단) 같은 발주처에서 업무를 수탁한 원청업체와 계약하는 일용직 노동자이지만, 업무지시는 하청업체에서 받는다. 불법인 다단계 하도급 사실을 감추기 위한 사측의 조치다. 전차선에는 2만5천볼트의 전기가 흐른다.

이 같은 노동환경 때문일까. 전철 전차선 보수공사 현장에서는 올해 확인된 사고만 10건이나 된다. 전국에서 일하는 전차선 노동자는 350여명이다. 노조는 “미미한 사고를 빼고 집계한 정도가 이 정도”라고 설명했다. 집계된 10건 중 7건은 추락사고였다. 지난 14일 새벽에도 울산지역 전차선 현장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가 삼각사다리에서 추락해 허리 골절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노조가 한 노동환경 실태조사 결과도 전차선 노동자의 위험을 방증한다. 노조가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 노조 전차선지부(지부장 배정만) 조합원 중 11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63.7%가 일하면서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최근 3년간 다른 이의 사고를 목격했다는 노동자는 무려 83.6%였다. 사고 유형(중복 응답)은 추락 93.6%, 낙하물 충격(자재에 맞음) 60.6%, 끼임 45%, 감전 4.6% 순이었다.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노동환경을 묻는 질문에 노동자들은 “노후된 장비, 불안정한 삼각 사다리” 외에도 “야간작업” 문제를 토로했다. 노조에 따르면 전차선 노동자들은 수리작업을 할 땐 열차가 멈추고 전기공급도 중단된 밤중에 일할 수밖에 없다. 열차 막차가 끊긴 뒤부터 첫차가 오가기 전까지 야간노동을 주로 하는 이유다.
 

최나영 기자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 위험 극대화
발주처·원청이 안전 책임져야”


하지만 안전사고 뒤 산재처리가 이뤄졌다는 비율은 16.5%에 그쳤다. 공상처리를 한다는 답변이 42.4%, 가벼운 부상이어서 스스로 치료한다는 응답이 38.8%였다. 기타가 2.4%였다. 다쳐서 일을 못 하는 동안 급여를 못 받았다는 비율도 55.6%로 절반을 넘었다.

국토교통부·국가철도공단과 최근 면담을 통해 안전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노조는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배정만 지부장은 “다단계 하청구조 속에서 노동자 위험이 극대화하고 있다”며 발주처와 원청에 안전사고 예방조치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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