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기자
사진은 자주 관습에 기댄다. 노동자의 붉은 머리띠와 노조 조끼, 구호 외치는 팔뚝 같은 것이 그렇다. 머리띠를 질끈 묶는 장면 같은 것은 투쟁 의지를 보여준다고 여겨졌고 흔히 사진으로 담겼다. 오래도록 많은 이들이 그랬으니 관습으로 여길 만했다. 대규모 집회는 물론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머리띠가 빠지지 않았다. 상징이었다. 요즘 머리띠 보기가 어렵다. 마스크와 투명 얼굴 가림막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비정규직 철폐며 단결 투쟁 같은 문구가 선명했던 이마 자리엔 이제 페이스 쉴드라는 제품명이 보인다. 핵심 구호는 입을 가린 마스크에 새겼다. 익숙하던 것들에 기댈 수 없으니 사진기 든 사람들 머릿속도 복잡하다. 온갖 감정을 품은 얼굴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없어 더욱 그렇다. 더욱 세심한 관찰이 필요한 때다. 비대면 시대, 머리띠 질끈 묶고 한데 모여 싸우는 것을 큰 힘으로 삼았던 노조는 새로운 도전 앞에 섰다. 붉은 머리띠 묶는 사람 코앞에 붙어 밀착 취재하던 카메라들도 그렇다. 관습이 무너진 자리에서 발 디딜 곳 찾아 허둥댄다. 실은 누구나가 그렇다. 뉴노멀이니, 언택트니 하는 온갖 새로운 말이 무성한 때, 저기 마스크에 붉은 글씨로 새긴 생존권 사수 저 오랜 구호가 나날이 새롭다. 무너져선 안 될 말이니, 길에서 외치는 사람 주먹이 하늘을 향한다. 새로운 것 찾아 방황하던 카메라가 버릇처럼 달려들어 사진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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