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선 변호사(법률사무소 마중)

필자가 현재 진행하는 사건의 상당수는 근로복지공단이 피고인이다.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방으로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근로복지공단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다. 함께 수행하는 사건 중에는 이런 사건도 있다. 사진은 A씨가 사망직전에 쓴 글(사진)로 추정된다.

공단은 1993년 최초 장해등급 결정 당시 A씨를 “2급5호 신경계통의 기능 또는 정신기능에 뚜렷한 장해가 남아 수시로 개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판정했다. 공단은 1996년 A씨의 재요양 종결시 A씨를 “1급3호 신경계통의 기능 또는 정신기능에 뚜렷한 장해가 남아 항상 개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판정했다. A씨는 정신지체장애 1급도 받았다.

하지만 공단은 최초 장해등급 결정 기준 약 25년5개월 이후, 재요양 종결 기준 약 23년4개월 이후인 지난해 11월19일 통합심사회의 심의를 개최한 결과 장해등급 결정을 취소하고 부당이득을 환수할 예정이므로 의견을 제출하라는 사전통지서를 보냈다. A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한민국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은 장해등급 판단 시점을 치유시로 정하고 있다.(57조, 5조5호·4호)

장해등급을 사후적으로 다시 결정하는 경우를 “재판정”이라 해 산재보험법 59조 및 이로부터 위임받은 시행령을 통해 장해등급 재판정 시점을 “최초 결정을 한 날 기준으로 2년이 지난 날부터 1년 이내”로 정하는 등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공단은 “재결정”이라는 이름으로 법령의 근거 없이, 기간이나 회수·사유의 제한 없이 장해등급을 다시 판단하고 있다.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을 판단하는 이렇다 할 기준 없이 수령했던 돈의 2배까지 환수하고 있다.

대법원은 장해급여지급을 취소하는 것처럼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행정처분을 취소하는 것에 대해 “이미 취득한 국민의 기존 이익과 권리를 박탈하는 별개의 행정처분으로 취소될 행정처분에 하자 또는 취소해야 할 공공의 필요가 있어야 하고, 나아가 행정처분에 하자 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취소해야 할 공익상 필요와 취소로 당사자가 입게 될 기득권과 신뢰 보호 및 법률생활 안정의 침해 등 불이익을 비교·교량한 후 공익상 필요가 당사자가 입을 불이익을 정당화할 만큼 강한 경우에 한해 취소할 수 있는 것(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1두23375 판결 등 참조)”으로 명시하고 있다.

부정수급자를 막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의료기술 발달로, 혹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장해상태가 개선됐다면 그 귀결이 부정수급자로 낙인찍히는 것이 되면 안 된다. 최초 장해결정 시점으로 소급해 부당이득을 환수당하고, 일종의 범죄자로 낙인찍혀서 정든 고향을 떠나고, 심지어 목숨을 끊는 것이라면, 재해근로자의 재활과 사회 복귀를 촉진하고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복지공단이 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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