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코로나19로 폭증하는 질병관리본부 전화를 분담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 노동자들은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좁은 공간에서 안전조치가 불충분한 상태로 일을 한다. 고객센터 노조가 원청인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안전보건 조치에 대한 협의를 요청했으나 “우리는 당신들의 사용자가 아니다”는 말만 들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격상하면서 공단 직원들은 재택근무에 들어갔으나, 하청인 고객센터 노동자들에게는 한 주 재택근무 후 정상출근 지침이 내려지기도 했다. 코로나19 관련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이 안전하지 못한 공간에서 차별받으며 일한다. 코로나19 시대의 풍경이다.

코로나19로 만남이 제한되면서 모이지 못하는 것이 개인을 얼마나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알게 됐다. 그런데 ‘함께 살기’에는 이 사회가 지나치게 위계화돼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모두가 힘들어졌다고 생각하겠지만, 누군가는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삶이 위협당한다. 불안이 절망이 돼 자살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 사회를 제대로 지탱하기 위해서라도 ‘함께’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코로나19에 감염되면 누구라도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듯이, 누구라도 위기 상황에서도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마련돼야 한다. 그 기본 바탕을 우리는 ‘공공성’이라고 부른다.

‘모두가 살기 위해’ 선택한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학습지 노동자·방과후 강사·대리운전 기사·문화예술인·영세자영업자 등은 소득이 없어 죽어 간다. 정부가 특별지원을 하지만 복잡한 심사과정 때문에 혜택받는 수는 적고, 일회성 지원으로는 긴 기간을 견디기도 어렵다. 항공사는 고용유지지원금 10%도 내기 싫어서 하청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코로나19를 핑계로 구조조정을 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정부는 기업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려고 많은 재정을 지원하지만 정작 해고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공적 재정을 투여하면서도 여전히 누군가에게 피해를 전가한다면 그 사회는 공공성이 있는 사회가 아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더 많이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의료노동자들은 과도한 업무에 지쳐간다. 물류센터·택배노동자, 배달노동자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감염병이 드세도 요양병원 노동자, 장애인활동지원사 같은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은 멈출 수 없다. 재난이 닥쳤을 때에도 결코 멈출 수 없는 노동자들의 노동이야말로 ‘공적인 것’이다. 그런데 인력은 충분히 확보돼 있는가, 이 노동자들은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가, 이 노동자들의 권리는 충분히 인정되고 있는가, 이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정책에 반영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 사회는 공공성의 기반이 없는 것이다.

위기에 대한 대응 방식에 따라 사회의 모습이 달라진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정부는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 정책을 채택했다. 신자유주의 경쟁 논리가 체화됐고, 노동자들도 각자도생의 상황에 내몰렸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는 비정규직이 늘어났고, 고용구조가 신분이 됐다. 경제는 발전하는데 안정적인 일자리는 사라지고, 기본권 없는 플랫폼 노동이 늘어났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가 닥쳤다. 그런데 정부는 여전히 과거의 정책 방향을 답습한다. ‘그린 뉴딜’을 이야기하는데 그 조차 성장주의, 기업 경쟁력 중심 기조 위에 놓여 있다.

지금의 경제 위기는 자본주의가 이대로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다. 코로나19는 그것을 촉발시킨 계기에 불과하다. 경쟁과 이윤 중심의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기 위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변화가 필요한 시기이지만, 아직 노동자와 시민사회의 역량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세상을 완전히 바꾸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공공성’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최소한의 공공성은 누구라도 보장받는 고용보험 확대, 아플 때 쉴 수 있는 상병수당, 돌봄 같은 사회서비스의 공적 확충, 생명안전업무의 인력 충원 등이다. 그리고 누구라도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공공운수노조가 ‘코로나19, 경제위기 대응을 결의하는 공공운수노조 조합원 총회’를 한다. 이달 14일부터 18일까지 투표를 통해 ‘코로나19 위기, 공공성 강화와 노동자 고용과 생계 보장을 위한 사회적 요구안 및 공동행동’을 채택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내용이 사회적 요구안에 담겨 있다.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기에는 제한적 요구다. 그렇지만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나서서,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세워 가자고 요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총회와 투표가, 이후 공공성을 제도화하기 위한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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