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열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부당해고를 다투는 사건에서 징계양정 사유는 더러 징계사유로 둔갑하기도 한다.

해고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사용자는 징계위원회뿐 아니라 노동위원회에서조차 다투는 것이 불가능했던 징계 이후의 비위 사실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징계양정 사유로 주장한다. 그러한 비위 사유로 인해 해당 근로자와는 더 이상 근로관계를 계속할 수 있을 만큼 신뢰관계가 없으니 해당 근로자와의 해고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판례가 해고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지 여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쯤 되면 징계양정 사유는 그냥 징계사유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징계양정에 관한 구체적인 제한기준이 없다면 징계양정 사유는 끝없이 확장해 징계위원회 이후에 새로이 징계사유를 추가하는 것과 다름없어진다.

아직 징계양정 기준을 구체적으로 설시한 판례는 없다. 다만 대법원은 “단체협약이나 회사 취업규칙 등의 징계규정에서 근로자에 대한 징계를 징계위원회 의결을 거쳐 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 그 징계처분의 당부는 징계위원회에서 징계양정의 사유로 삼은 사유에 의해 판단해야 하고 징계위원회에서 거론되지 아니한 사유를 포함시켜 징계처분의 당부를 판단할 수 없다”며 징계위원회를 거친 경우 징계위원회 이후의 사유는 징계양정 사유로 포함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6. 6. 15. 선고 2005두8047 판결 참조).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징계양정 제한기준을 완화하는 판결을 반복해서 내놓고 있다. 대법원 2011. 3. 24. 선고 2010다21962 판결은 “징계처분에서 징계사유로 삼지 아니한 비위행위라도 징계 종류 선택의 자료로서 피징계자의 평소 소행과 근무성적, 당해 징계처분 사유 전후에 저지른 비위행위 사실 등은 징계양정을 하면서 참작자료로 삼을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2016. 6. 28. 선고 2015다245152 판결 역시 위 판결을 인용하면서 징계양정 제한이 어디까지인지 구체적으로 설시하지는 않았지만 징계위원회가 개최됐던 사안임에도 그 징계위원회에서 다루지 않았던 해고 이후의 사유를 징계양정에 포함시키며, 그 징계양정에 관한 기준을 상당히 완화시키는 판시를 한 바 있다. 이러한 판례 변화는 징계양정에 아무런 제한도 두지 않으면서 그 시적 범위만을 확장시키고 있어 우려스럽다.

어떤 한계 없이 징계처분 이후의 비위행위를 징계양정에 포함시킬 수 있다면, 앞서 언급했듯 징계위원회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사정이 사실상 징계사유로서 징계의 정당성에 포함되게 된다. 특히 징계위원회는 징계대상자가 출석해 소명함으로써 스스로 방어할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절차다. 그런데 어떤 한계 없이 징계위원회에서 다뤄지지 않은 내용까지 징계양정 사유로 포함되게 되면, 사실상 피징계자는 해당 사유에 대해 징계위원회에서 다퉈 볼 기회도 부여받지 못한 채 방어권을 상실한다.

징계양정 한계를 규정할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징계절차, 근로자의 소명의 기회, 실체적·절차적 방어권이 모두 형해화하고 만다. 적어도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서 징계위원회를 규정하고 있음에도 징계위원회를 거치지 않았거나 소명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 그 징계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을 고려할 때, 징계위원회에서 다루지 않아 소명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내용 역시도 징계양정 사유로 포함해서는 안 된다. 그 사유가 사실상 징계사유와 마찬가지의 기능을 하기에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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