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승규 공인노무사(반올림 상임활동가)

노동자의 생명·안전과 관련한 이슈가 요새처럼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시기는 드물었던 것 같다. 진정 일하는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이 지켜지려면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까.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같이 진정 책임질 사람에게 적절한 책임이 부여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고, 산업안전보건청 논의처럼 정부의 감독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와 감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누구보다 일터의 위험과 가까이에 있는 노동자들이 안전한 일터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법과 제도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노동자의 권리는 알 권리, 참여할 권리, 거부할 권리로 나눠 볼 수 있다. 간단히 풀어서 설명하자면, 알 권리는 안전보건자료에 접근해 사업장 내 위험을 확인할 권리다. 참여할 권리는 사업장의 의사결정 과정에 들어가 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권리다. 거부할 권리는 심각한 건강 문제가 우려되면 작업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 세 가지 권리 모두 노동자에게 꼭 필요하지만, 여기서는 알 권리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사업장 내 위험도 노동자들이 알아야 대응할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하면 보상이든 예방이든 처벌이든 적절히 요구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니 알 권리는 노동자에게 매우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상 노동자의 알 권리는 그 중요성이 무색해질 정도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앞에서 알 권리는 사업장의 안전보건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현재 법적으로 노동자 개인이 제공 받아서 활용할 수 있는 사업장의 안전보건자료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산업안전보건법은 온갖 안전보건자료를 사업장 내에 비치해 두거나 정부에 제출하라고만 규정했기 때문이다. 기이하게도 노동자가 자료제공을 요구할 권리만 법에서 빠져있다.

이렇게 노동자의 알 권리가 제도적으로 매우 미약하기에, 노동자들은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자구책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그 방법 중 하나로 필자가 속한 반올림이 시도한 것은 회사가 아니라 정부에 자료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정작 그 회사 노동자는 안전보건자료를 못 받지만 정부는 제출 받으므로, 정부 자료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정보공개청구 싸움을 하면서 필자는 알 권리에 대해서 부족한 것은 제도만이 아님을 알게 됐다.

올해 반올림은 법원으로부터 연달아 정보 비공개 판결문을 받았는데, 그 판결문은 알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판결문에 적힌 비공개 사유 중 두 개만 예시로 들어보겠다. 첫째는 안전보건자료는 정부기관이 확인하니 노동자가 알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가령 산재의 경우 산재판정 과정에 있는 근로복지공단·안전보건공단이 안전보건자료에 대해 알면 충분하지, 노동자가 왜 받아서 확인해야 하냐는 것이다. 둘째는 안전보건자료에 대해서 보고 들으면 됐지 자료 자체를 노동자가 알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가령 작업환경측정보고서에 대해서는 작업장에 비치해 두고 집합교육으로 설명하면 충분하지, 노동자가 왜 그 이상 확인하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판결을 통해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법부에게 알 권리는 노동자를 위한 권리가 아니라, 정부의 권리이거나 사업주의 형식적인 의무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안전보건자료를 정부가 볼 수 있게 제출하고 사업장에 비치만 잘해 뒀다면, 노동자들은 그에 대해 실질적으로 알고 활용하지 못하더라도 법원이 보기에 알 권리는 충분했던 것이다.

일터의 안전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지만, 아직 알 권리에 대해서는 제도적으로나 인식적으로나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정말 노동자를 위한 알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변화가 필요하다. 21대 국회가 시작한지 얼마 안 됐지만 안전보건자료에 대한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는 개정안들이 이미 올라오고 있다. 이번 국회에서는 노동자의 알 권리를 제약하는 법은 바로잡고, 노동자의 알 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꼭 이뤄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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