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태악 대법관)가 해직교원 9명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정부가 전교조(위원장 권정오)에 노조 아님을 통보한 것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법외노조 통보처분의 근거가 됐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령 9조2항이 법률 위임 없이 행정처분을 가능하도록 한 것으로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을 침해한다고 봤다. 노조는 7년 만에 법적 지위를 회복하게 됐다.

대법원이 4년7개월 만에 원심 판결을 뒤집었다. 원심은 2016년 1월 “노조법과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등은 교원이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면 노조로 보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노조법 시행령 9조2항은 노조 설립신고 반려 사유가 발생한 경우, 관청이 30일간의 기간을 정해 시정을 요구하고 노조가 이를 따르지 않으면 관청이 노조 아님을 통보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일 오후 노조가 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노조법 시행령 9조2항 사실상 사형선고”

법외노조 논란은 2013년 10월2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직교원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는 노조규약을 시정하라는 명령에 노조가 불응하자 정부는 “노조 아님” 통보를 팩스로 보낸다. 노조는 정부의 통보 직후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과 법외노조취소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효력정지 가처분소송이 세 차례 인용되면서 잠시 노조의 법적 지위를 되찾았지만, 2016년 1월21일 서울고법이 “법외노조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결하면서 4년7개월째 법외노조 다툼을 이어 왔다.

이날 대법원 판결 요지는 간명하다. 시행령에 규정된 법외노조 통보 처분이 갖는 효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만큼 큰데 법률에 근거하지 않아 ‘법률유보 원칙’을 위배했다는 것이다. 법률유보 원칙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경우 반드시 국회 의결을 거친 법률로서 규정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헌법상 노동 3권은 노조를 통해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데 (법외노조를 통보받아) 노조라는 명칭조차 사용할 수 없는 단체가 노동 3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결국 법외노조 통보는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을 본질적으로 제약한다”고 지적했다. 김 대법원장은 “국민의 권리 의무에 대한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사안은 국회가 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조법 시행령 9조2항은 이날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았다. 대법원은“노조법 시행령 9조2항은 1987년 11월 폐지된 노조해산명령제도와 다름없는 제도”라며 “노동위 의결 절차를 두지 않음으로써 행정관청의 자의가 개입될 여지가 더 커졌다”고 꼬집었다. 1997년 노조법 제정으로 사라진 옛 노동조합법 32조는 행정관청이 노동위원회 의결을 거쳐 활동 중인 노조를 해산할 수 있도록 했는데, 해당 제도는 노동자 단결권과 노조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폐지됐다. 그런데 폐지 5개월 만인 1988년 4월 정부가 노동조합법 시행령을 개정해 되살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0년 9월 노조법 시행령 9조2항 삭제를 권고했다.

“부당하게 해직된 조합원 노조 활동할 수 있어”

별개 의견을 낸 김재형 대법관은 “원고(노조)는 교원과 무관한 3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거나, 모든 해직 교원의 조합원 자격을 제한 없이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며 “단지 조합원으로 활동하다가 해직된 교원의 조합원 자격이 유지되도록 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노조법 2조4호 라목이 해직 조합원 자격유지 행위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노조법 2조4호는 노조 정의 규정으로 각목은 노조로 보지 않는 이유를 열거한다. 라목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를 명시했다. 전원합의체 공개변론 당시 라목 해석이 사건 주요 쟁점으로 꼽히기도 했다.

권정오 위원장은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은 34명 해직교사를 즉각 원직복직시켜라”며 “입법부와 노동부는 법외노조의 근거가 된 노조법과 노조법 시행령 9조2항을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신인수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법외노조 통보는 법률에 근거가 없다는 전교조 주장을 대법원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받아들였다”며 “서울고법도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기택·이동원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이 사건 법령(노조법 시행령 9조2항)의 규정은 일의적이고 명확하므로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다”며 “행정관청의 시정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면 행정관청은 그 노동조합에 재량의 여지 없이 법외노조임을 통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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