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욱 공인노무사(노노모 회원)

코로나19 확산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요즘, 임금체불·해고·실업급여·무급휴직 같은 문제보다 더 자주, 더 많이 들어오는 상담이 있다. 바로 직무 스트레스에 관한 상담이다. 내담자들이 주장하는 직무 스트레스 유발 사유는 백이면 백, 직장내 괴롭힘이었다.

지난해 7월16일, ‘직장내 괴롭힘의 금지’와 ‘직장내 괴롭힘 발생시 조치’를 포함한 근로기준법이 시행되면서 큰 이슈가 됐다. 당시에도 이 법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은 있었지만 직장내 괴롭힘은 더 이상‘문화’가 아니라, ‘문제’라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라 평가됐다. 나도 그 평가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나 가까이서 직장내 괴롭힘을 당한 당사자들을 마주해 보니, 직장내 괴롭힘 근절은 경각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 듯했다.

A회사는 임신 중인 노동자에게 화분 같은 무거운 물건을 옮기도록 지시했고, 입덧이 심한데도 도시락 배달을 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사내에서 이 노동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업무를 부여했다. 임신 중인 몸으로 해당 업무를 수행하기가 어려웠던 이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에 근거해 쉬운 업무로의 전환을 요청했다. 하지만 회사는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회사 대표는 회의석상에서 “내가 벌금 받을 테니까 앞으로는 육아휴직도 보내주지 말까”라는 얘기까지 했다고 한다. 결국 이 노동자는 우울증에 걸렸다.

B회사에서 자재검사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는 일을 너무 열심히 한다는 이유로 상사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 자재검사를 너무 열심히 하면, 납품 관련 비리가 발각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노동자가 추측하는 괴롭힘 사유였다. 이 노동자는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더욱 심한 폭언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직장에만 가면 호흡이 가빠질 정도에 이르러,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사직했다.

C회사에서 수십년을 근무한 노동자는 몇 해 전 머리를 다쳐 상당 기간 요양하다가 최근 복직했다. 그러나 머리를 다친 후유증으로 원직에 복직해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회사는 이 노동자가 원직에서 근무할 것을 고집했고, 동료들은 업무수행능력이 부족한 이 노동자를 대놓고 따돌렸다. 결국 이 노동자는 정년퇴직을 1년여 앞두고, 사직을 고민하고 있다.

법을 떼 놓고 보면 모두 분통하고 속이 터질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례들이 근로기준법상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정되려면, 그 사실관계를 입증할 객관적인 자료가 확보돼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잠재적 가해자들의 행위가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1차적으로 판단할 권한은 회사에 있다. 이런 점을 설명하면 피해당사자들은 회사에 직접 신고해야 한다는 점에서부터 지레 겁을 먹고 만다. 그리고는 오히려 괴롭힘이 더 심해질까 우려한다. 물론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이유로 회사가 피해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면 그 행위에 따른 처벌이 따른다. 하지만 피해당사자들은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하기 이전에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2차 피해를 앞서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규모가 작아 공간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분리하기 어려운 회사라면 피해자는 직장내 괴롭힘 신고 이전에 앞으로의 직장 생활에 대한 염려부터 해야 한다. 이 같은 걱정이 앞섰는지 직장내 괴롭힘에 시달려 내담한 누군가는 나에게 “이게 도움이 되나요?”라고 물었고, 나는 도움이 된다고 답하기를 망설였다.

짧은 생각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이 법이 직장내 괴롭힘 피해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을 하루라도 빨리,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려면, 2019년 여름의 핫 이슈(Hot Issue)였던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그저 이슈로 묻혀 지나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하는 것이 노동이다. 직장내 괴롭힘 때문에 건강과 영혼까지 갈아 넣어야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너무 안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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