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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즘을 지지한 복음주의교회윤효원 WFIR 컨설턴트
▲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국민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당)의 히틀러는 1933년 1월 정권을 잡았다. 두 달 뒤인 1933년 3월 미국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정권을 잡았다. 독일에서는 민주주의가 사라졌고, 미국에서는 민주주의가 유지됐다. 나치당이 장악한 히틀러 정권은 노동조합을 불법으로 낙인찍고, 독일노동전선(German Labour Front)이라는 노동자단체를 만들었다.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를 등에 업은 루스벨트 정권은 1935년 노동자에게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는 전국노동관계법과 1938년 주 44시간과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는 공정노동기준법을 만들었다.

독일 나치당은 복음주의교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나치당을 후원하고 반대급부로 비호를 받은 독일복음주의교회(German Evangelical Church)라는 기독교 단체는 1933년에 설립돼 소련군의 베를린 점령으로 나치당이 파괴된 1945년까지 5월까지 활동했다. 독일복음주의교회는 1931년 복음주의 장로교 집단의 의회 총선거 승리를 위한 기독교 정당인 독일기독인(German Christians)에 기원을 뒀다. 독일복음주의교회로 전환한 독일기독인은 정치와 종교 사이의 힘 관계를 조정하는 가교 역할을 맡았다.

개신교 교세가 강한 농촌 지역은 예외 없이 의회 선거에서 나치당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개신교 농촌지역에서의 선거 승리를 바탕으로 나치당은 1933년 1월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도시 지역일수록 가톨릭교도가 많을수록 나치당의 득표율은 낮았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을 때 독일에서 개신교도는 4천500만명, 가톨릭교도는 2천200만명이었다.

독일 전역의 개신교 교회가 조직한 일요일 성경학교에서 “히틀러가 하나님의 손에 들리어 권력을 잡았으며, 이는 하나님의 선물이자 기적이다”는 설교가 이뤄졌다. 교회당에 모인 수백만명의 어린이들은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뜻이 나치당의 발전에 있음을 믿는다”고 배웠다. 교회 목사들은 “나치즘은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외쳤다. 개신교는 나치의 비호를 받았고, 유대교는 탄압받았다. 사실 유대교는 탄압을 넘어 박멸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기독교는 유대교보다 위대하며, 유대인은 유물론자”라는 주장이 난무했다. 복음주의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유대인을 몰아내야 한다”는 반유대인 캠페인에 적극 동참했다. “독일인은 세계에서 가장 믿음이 좋은 민족”이라고 목사들은 외쳤다. “하나님에 대한 아이 같은 믿음과 이기심 없는 사랑이야 말로 독일 민족의 정신”이라면서 이를 위해서는 기독교에서 유대교적 요소를 철저히 청산해야 한다는 외침이 교회에서 울려 퍼졌다. “하나의 민족, 한 분인 하나님, 하나의 교회”라는 구호 아래 기독교는 독일인의 종교라는 “기독교의 독일화(Germanisation of Christianity)”가 시도됐다.

독일복음주의교회는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반유대주의에서 영향을 받았다. 루터는 1543년에 쓴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서 “우리가 주님을 위해 유대인 회당과 유대인 학교에 불을 지르면 하나님이 우리를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보실 것이다. 유대인들의 집을 쓸어버리고 부수고, 유대교 서적을 없애며, 랍비의 설교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32년 독일의회 선거에서 독일기독인운동은 “루터가 히틀러를 위한 길을 예비했다”고 찬양했다.

물론 이런 흐름에 반대하는 개신교 종파도 있었다. 나치당과 결탁한 복음주의교회에 대항해 1934년 고백교회(Confessing Church)가 등장했다. 이들은 “교회는 교회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종교가 정치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물론 고백교회 지도자들도 나치당의 탄압과 회유에 굴복해 히틀러의 정책을 지지하기도 했다. 당시 자료를 보면, 개신교 목사 1만6천500명 중에서 7천명이 고백교회를 지지했다. 히틀러 암살 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당한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를 비롯한 극히 일부를 빼고는 고백교회 목사들도 전쟁이 발발하자 독일군의 만행에 침묵하고 동조했다. 본회퍼는 1933년 유대인 박해에 반대하면서 나치즘과 기독교는 같이 갈 수 없다고 선언하며 히틀러 정권과 결탁한 복음주의교회에 대항했다.

나치는 유대교만 증오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2만명의 신도가 있던 여호와의 증인은 ‘하일 히틀러’ 인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나치의 탄압을 받아 해산당했다. 그 신자들은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서 고난을 겼었다. 복음주의교회는 공산주의자와 동성애자도 박멸하려 했다.

한국 개신교는 미국 개신교의 아류다. 한국 개신교의 주류는 미국 복음주의교회의 세례를 받았다. 이들은 우익 정치세력과 연계돼 있으며, 오직 자신들의 종교만이 올바르며 이슬람교 등 다른 종교는 물론이거니와 여호와의 증인 같은 비슷한 기독교 종파까지 사탄의 종교라며 증오한다.

복음주의를 외치는 이들은 노동운동에 적대적이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박멸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들에게 복음과 멸공(滅共)은 동의어다. 한국에서 히틀러의 나치당과 같은 극우정당이 성공한다면, 그런 정당의 행동대와 앞잡이로 복음주의교회 세력이 나설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한국에서 극우 기독교의 정치활동이 어떤 것임을 명확하게 목도하고 있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윤효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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