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노동운동가

사진은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의 한 광경이다. 뜨거운 여름, 두 여성이 검은 천으로 온몸을 감쌌다. 가면을 쓰고 종이봉투도 뒤집어썼다. 한 여성은 신발도 벗었다. 티끌만 한 단서도 남기지 않으려는 조치였다. 신분이 노출되면 쫓겨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캠페인을 마친 두 청년의 얼굴은 후텁지근한 열기로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 바로 이들의 이야기다.

대체로 20대 초중반 여성이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1.49시간이다. 법정 노동시간보다 3시간 더 일한다. 그러고서 받는 월 평균 임금은 97만4천200원이다. 시간급으로 계산하면 대략 3천980원이다. 최저임금의 절반도 안 되는 액수다. 올해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8천590원이다. 2009년의 최저임금이 4천원이었다. 그러니까 11년 전보다 못한 임금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황당하기 짝이 없다.

청년유니온 김영민이 전태일재단을 찾아와 머뭇머뭇 이야기를 풀었다. 그들을 청년유니온으로 조직하고 싶다고 했다. 난관이 있다고 했다. 당사자들이 조합비가 부담돼서 가입을 망설인다고 했다. 청년유니온은 시간당 최저임금을 조합비로 책정하니까, 월 8천590원이다. 처지가 딱하다고 조합비 원칙을 깰 수는 없다며 김영민은 난감해 했다. 함께 뭉쳐 처우를 개선하려는 마음은 굴뚝 같은데 1만원도 안 되는 조합비가 부담스러워 선뜻 뭉치지 못하는 청년들. 그들 처지가 안타까워 명치 끝이 뻑뻑하게 아렸다.

▲ 전태일재단


가짜뉴스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청년들,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줄여서 패션어시라 부른다. 패션스타일리스트는 가수·배우·방송인 같은 아티스트의 착장을 맞추는 것이 주 업무다. 의상 대행사를 돌아다니며 의상을 픽업해 조합하고, 아티스트에 맞게끔 수선한다. 촬영 현장에 가서 의상을 입히고 끝나면 대행사에 반납한다. 패션스타일리스트는 팀원을 고용하는데, 이들이 바로 어시스턴트다. 증언에 의하면 어시라는 표현이 인턴이나 보조 또는 문하생이라는 느낌이 강해 허드렛일을 할 것 같지만, 하루라도 없으면 모든 일이 중단될 만큼 중요 업무를 처리한다. 디자이너 브랜드와 스타 마케팅 업체를 연결하고 의상 협찬·관리·스타일링·현장 케어까지 모든 주요 업무를 맡고 있다.

그럼에도 신입 기준 월급은 30만원에서 80만원이다. 근무시간과 휴일은 들쑥날쑥이다. 상당수의 패션어시는 밥값 지원도 없고, 출장비와 새벽 출퇴근시 택시비 지원도 없는 상태로 일한다. 촬영 현장에서 의상과 부자재를 관리하다가 본인이 분실하거나 손상을 입히지 않아도 자비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수시로 인격모독을 당하거나, 강아지 산책과 쇼핑 같은 사적 지시에 시달리기도 한다. 불현듯 전태일 시대 평화시장 시다가 떠올랐다. 염전노예도 떠올랐다. 실제 그 청년들은 자신을 시다나 유령노예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청년유니온과 전태일재단이 함께 방법을 마련했다. 청년유니온은 힘껏 가입시키기로 했다. 당사자에게는 조합비 3천590원을 받기로 했다. 나머지 조합비 5천원은 전태일재단이 지원하기로 했다. 그렇게 1년간 해보기로 했다. 신규 가입자를 위한 리플릿 제작 비용도 재단이 감당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14시간 안팎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배곯는 어린 시다들에게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평화시장에서 창동까지 12킬로미터 넘는 거리를 휘청휘청 걷고 뛰며 퇴근했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정신에 따라, 전태일재단은 해마다 청년·이주노동·사회활동가 지원사업과 장학사업을 한다. 그런데 워낙 가난한 재단이다 보니까 사업마다 분배되는 예산이 무척 적다. 청년활동 지원사업은 400만원이다. 사실 그것조차 당장은 다 전달할 수 없는 형편이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후원금을 모아야 한다.

청년유니온의 패션어시 조직화 프로젝트 비용은 500만원이다. 십시일반을 호소한다. 전태일재단은 늘 그랬듯, 후원하는 기금 모두 그 이름으로 청년유니온에 전달하겠다. 청년유니온과 전태일재단 양쪽을 통해 결과를 공개할 것이다. 6만원이면 말도 안 되는 처지에서 일하는 청년 한 명의 1년 조합비를 지원할 수 있다. 5천원이면 한 달 지원할 수 있다. 저 청년들이 똘똘 뭉쳐 최저임금이라도 받으며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함께 손을 잡자. 우리의 손을 잡은 전태일처럼.

국민은행 807501-04-228635 전태일재단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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