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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무슨 필요 있는가 - 메탄올 실명사건 1심 판결문을 받아들며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
▲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

20대와 30대 초반의 나이에 두 눈의 시력을 잃고 평생 앞을 볼 수 없게 된 상황. 그 절망을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까. 돈으로는 안 된다. 피해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인체에 치명적인 메탄올에, 아무런 보호나 교육 없이 무방비로 노출됐다. 일을 시작한 지 불과 수개월 후에 시력을 잃었다. 27세(이○○), 27세(방○○), 28세(이○○), 34세(전○○), 28세(김○○). 사고 당시 나이다.

노동자들은 사건 직후 2016년 관련 업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했고 법원은 4년 만인 지난 21일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피고 업체들은 원고들에게도 과실이 있다며 청구금액 삭감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비정규직이다. 노동자들의 고용관계는 복잡하다. 노동자들은 삼성전자 휴대폰에 들어가는 부품을 제조하는 하청업체의 재하청업체에 인력을 공급하는 업체 소속 파견노동자다. 삼성전자 휴대폰에 들어가는 알루미늄 작은 부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대기업은 ‘간접의 간접의 간접의’ 노동자를 사용한다. 진짜 사장이 누구인지 여부는 흐릿해진 끝에 소멸한다. 그리고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청년들이 두 눈을 잃었다.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법률은 비정규 사업장 앞에서 멈춰 선다.

노동자들을 사용하는 업체와 파견한 업체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안전보건공단이 공시하고 있는 물질안전보건자료에 따르면 메탄올은 생식독성과 심한 눈 손상성·자극성, 특정표적장기 독성(1회 노출시 사람에게 중추신경계·시각장해 발생)의 특징이 있다. 누출시 분진·흄·가스 등을 흡입해선 안 되고, 보호장비를 갖추지 않은 사람은 누출사고 현장에 출입해서는 안 된다. 취급시 전면형 송기마스크, 화학물질 방어용 안경·보안면, 내화학성 장갑을 착용해야 한다. 공정격리·국소배기 등으로 공기수준을 노출기준 이하로 조절해야 하고, 이 물질을 저장하거나 사용하는 설비는 세안설비와 안전 샤워를 설치해야 한다. 산안법은 메탄올을 ‘관리대상 유해물질’로 정하고 있고, 메탄올을 사용하는 사업장은 6개월마다 작업환경측정을 실시한 후 노동자에게 그 결과를 알리고 개선조치를 취해야 하며, 노동자에 대해 12개월마다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해야 한다. 메탄올의 위와 같은 유해성 때문에 산업현장에서는 대체물질인 에탄올을 쓴다. 그러나 이 사건 사업장들은 계속 메탄올을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메탄올 가격이 에탄올에 비해 3분의 1 정도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써서는 안 되는 물질을 돈 때문에 썼다.

노동자들은 모두 ‘CNC 설비’라는 휴대폰 부품을 깎고 다듬는 공정에서 일했고, 메탄올은 그 장비에서 ‘절삭유’로 쓰였다. 노동자들이 취급했던 CNC 설비에는 절삭 공구 주변에 절삭유를 자동으로 분사하는 호스가 있어, 설비 가동 중에는 그 호스를 통해 고농도(99.9%)의 메탄올이 지속적으로 분사됐다. 노동자들은 어떤 교육이나 보호장치도 없이 메탄올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노동자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하루 12시간씩 주 6일 근무하기도 했고 일이 많은 달에는 한 달에 채 하루도 쉬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근무시간 동안 알코올 제거를 위해 에어건을 사용하면서 알코올이 피부와 눈 등에 수시로 튀었고, 알코올 냄새로 인해 사비로 마스크를 장만해 착용하고 일을 하기도 했다. 알코올 냄새로 답답하면 창가로 가서 심호흡을 하고 돌아왔을 뿐이다. 2016년의 대한민국이다.

노동자들은 위와 같은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업무에 관한 설명을 한차례밖에 듣지 못했거나 전혀 듣지 못했고, 작업 공정에서 사용하는 물질이 무엇인지, 그 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지에 관해서는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 근무하는 동안 일반장갑과 일반마스크 등을 지급받기는 했으나 착용 필요성에 대한 설명은 듣지 못했고, 장갑의 경우 끼고 작업을 하더라도 손이 젖는 경우가 많았고, 알코올 냄새와 증기에 계속 노출되면서 마스크를 직접 구입해 착용하는 경우가 잦았다. 작업장에는 적합한 배기시설이 없이 창문을 열어 놓았을 뿐이고, 에어컨을 가동할 때는 창문마저 닫아놓기도 했다.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이 사건이 발견되고 언론과 국회에서 난리가 난 이후에서야 2016년 1월25일부터 이 사건 사업장과 작업공정이 유사한 곳으로 파악된 8곳을, 2월1일부터는 전국의 메틸알코올 취급사업장 3천100여곳을 긴급점검 한다고 발표한다. 그리고 메탄올 급성중독 발생경보와 함께 사업장에 대한 작업중지·보건진단·임시건강진단명령을 내렸고, 국소배기장치 미설치·송기마스크 미지급·작업환경측정·특수건강진단 미실시 등 산안법 위반사항에 대한 엄중한 처리방침을 밝혔다. 꼭 필요한 일들이고 적절한 조치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왜 미리 하지 않았나. 그간 고용노동부의 지도감독 사실은 없다. 충격적인 것은 위 긴급점검 이후에도 추가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위 긴급점검 지침에 의해서 2016년 2월3일 이 사건 한 사업장을 점검한 근로감독관은 사업주가 “지난해 말부터 절삭용제를 에틸알코올로 교체했고 앞으로도 메틸알코올을 취급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한 것만을 믿고 그냥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 피해자도 소송 원고가 됐다. 가해자는 국가다. 더 이어 할 말이 없다.

소송 중간에 판사의 조정지시에 의해 상대 업체들과 금액 정도를 상의하던 시기가 있었다. 변호사들과 식사하던 중 한 노동자가 울부짖으며 말했다. “돈 필요 없어요. 지금 돈이 무슨 필요가 있어요.” 조정은 이뤄지지 않았고 판결은 이 사건의 황당함과 업체들의 책임을 엄히 꾸짖었으며 그 결과 판시된 배상금액은 조정 당시 예상금액보다 높았다. 그러나 우리 변호사들 역시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다. 돈이 무슨 필요가 있기에.

류하경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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