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창진 정의당 갑질근절특별위원장

100일은 우리의 삶 속에 꽤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역사 속 단군신화에서는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를 원했을 때 환웅이 쑥과 마늘을 주면서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고 동굴 속에서 기도하라고 했다는 설화가 있고, 아이가 태어나서 100번째 되는 날은 백일잔치를 벌여서 손님을 초대하고 축하를 받기도 한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들은 만난 지 100일을 기념으로 해서 커플반지를 서로 교환하기도 한다. 100일이란 이렇듯 짧은 시간인 듯하지만, 꽤 긴 인내의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드디어 위험들을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시간으로 새롭게 넘어 간다는 의미가 아닌지 모르겠다.

여기, 또 다른 의미의 100일을 버티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천막을 치고 투쟁 중인 아시아나케이오지부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투쟁은 코로나19라는 재난 앞에서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처지가 된 노동자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올 3월 아시아나케이오는 코로나로 인한 항공 수요 감소로 일감이 없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에게 연차휴가를 강제 소진하도록 했다가, 이를 뒤집고 무급 휴직을 요구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기한 무급휴직은 해고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시아나케이오 민주노조 조합원 10명은 끝까지 무기한 무급휴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사측은 이들 중 8명을 5월11일자로 정리해고 했다. 이들 중 6명은 해고에 맞서 이 한여름에 농성을 벌이고 있다.

재난은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재난의 충격을 완화할 능력이 있는 기득권 계층은 위기상황에서도 큰 고통을 겪지 않는다. 스스로를 지킬 방법을 알고 수단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약자들은 빈곤의 덫에 갇히거나 덫 안쪽으로 더욱 깊숙이 미끄러져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된다. 마치 영화 <기생충>에서 쏟아지는 비가 누군가에게는 낭만이었으나, 누군가에는 재앙이었던 것과 같다. 코로나19로 인한 빈곤층 근로소득 감소율은 최상위의 4.5배에 달하며, 그 피해는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미치고 있다.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의 투쟁은 우리 모두의 싸움이기도 하다. 25년간 항공사 승무원 노동자로 근무한 나는 그들의 전쟁 같은 일터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각 항공사는 소위 쉴 틈 없이 항공기를 돌린다. 방금 착륙한 비행기는 승객이 내리기 무섭게 약 1시간 만에 다시 새로운 운항에 돌입한다. 그래서 청소 노동자들에게는 매번 30분의 시간만이 주어진다.

이 전쟁 같은 30분간의 일터를 버텨내는 노동자들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 2018년 7월에도 있었다. 대한항공에서 기내청소 등을 맡아오던 파견업체 이케이맨파워 소속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지급과 남녀차별 임금의 개선을 요구하며 14일간 파업을 진행했다. 회사는 파업을 이유로 350명의 노동자를 2018년 7월 말 집단해고 했다.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이 나에게 함께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솔직히 그때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나도 힘겹게 회사를 상대로 업무상 불이익, 2차 가해, 땅콩회항을 저지른 가해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등을 진행하고 있던 상태였다. 심지어 기존 노조의 역할을 지적했다는 이유로 노조로부터 제명되는 일을 겪으며 어느 곳 한 군데에도 기댈 수 없는 외톨이 신세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의 상황은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고, 나는 이들 노동자들과 함께 대한항공 앞에서 시위를 했다.

내가 이들의 요청에 차마 눈감을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어려울 때 손잡았던 그 노동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땅콩회항 사건 이후 회사에 복귀한 나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과 같은 대접을 받아야 했다. 같은 동료들 그 누구도 나와 가까이 하지 않으려 했고, 강등된 나는 이전과 다른 업무 환경에서 눈총을 받는 처지가 돼 있었다. 기내에 들어서기가 무서웠던 매일매일, 오직 청소노동자들만이 나를 반겨줬고, 꼬박꼬박 사무장님이라는 호칭으로 이전처럼 불러 주었다. 주머니에 꼬깃꼬깃 넣어 두었던 건강 드링크나 캔디를 내 손에 건네주기도 했다. 청소완료 확인을 받는 대장 종이 한쪽을 찢어서 적어줬던 응원 글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전 직원이 응원합니다. 사랑합니다. 수고하세요. E.K 맨파워”

그동안 내가 여유 없다는 핑계로 나보다 힘든 이웃의 손을 제대로 잡아주지 못했던 나를 반성하게 하는 진심어린 쪽지 한 장이었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왜 내가 눈을 감아야 하는지 수많은 이유를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오늘도 수많은 을들이 가혹한 바이러스 속 노동현장에서 매일매일 생존투쟁을 위해 나서고 있다. 내가 눈감은 오늘의 불의가 언제가 나의 현실이 돼 돌아올지도 모른다.

정부는 코로나19 위기라는 이유로 1조7천억원을 아시아나 항공에 지원했다. 정작, 아시아나에서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위협받은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앉게 됐다. 우리 공동체는 과연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가, 누구의 편에 서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위기 속에서 ‘함께 살자’를 정부는 실천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우리가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의 100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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